[Opinion] 미디어라는 냉소 [영화]

미카엘 하네케의 <해피엔드>
글 입력 2020.08.2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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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에서 ‘어른을 관찰하는 아이’라는 구도는 종종 고발로 이어지곤 한다. 아이의 순수함과 솔직함은 무기와도 같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해피 엔드>에서도 그렇다.

 

이 영화는 부유한 중산층 가정이 우아한 외면 뒤로 감추고 있는 솔직한 감정과 본능을 고발한다. 그리고 그것을 고발하는 주체는 소녀 에브 로랑(팡틴 아흐뒤엥)이다. 그러나 이 고발의 시선은 한없이 냉소적이고 냉철한데, 그건 영화가 미디어 이미지를 통해 에브의 시선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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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에브가 휴대폰, 또는 패드로 촬영하고 있는 화면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세로로 길쭉한 화면에는 주로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가 이를 닦는 모습, 재혼한 아빠 토마스(마티유 카소비츠)의 아들, 그러니까 에브의 동생이 된 갓난아기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그리고 영상에는 그 장면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듯한 말풍선이 달린다. ‘우리 엄마는 약을 먹어’ ‘동생이 생겨서 좋아’ 같은 내용의.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빠와 아빠의 아내 아나이스(로라 베린덴), 고모 앤(이자벨 위페르), 그리고 할아버지 조르주(장-루이 트린티냥)가 사는 집에서 지내게 된 에브는 말수가 적다. 교류 없이 지내던 친척들과 갑자기 한 식구가 되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에브의 행동은 묘하게 적극적이고 대범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울며 보채는 갓난아기 동생을 달래준다든지, 아빠의 노트북을 엿본다든지. 그리고 자신이 ‘본’ 장면들을 촬영하고, 어딘가에 업로드한다. 이때 에브가 촬영하는 장면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촬영되고 있는 화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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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에브에게 부여한 설정들은 어딘가 징그러운 구석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녀’라는 설정인데 이 영화는 사회가 일반적으로 소녀에게 기대하는 천진함과 충돌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식으로 관객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에브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건 어쩌면 에브가 한없이 무해해 보이는 소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소녀를 그다지 경계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튼 에브가 알고 있는 것은 이렇다. 아빠와 이혼하고 우울증을 앓던 엄마는 자살을 시도했으며 아빠는 전처보다 어린 아내를 만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나 종종 다른 여자와 채팅으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다. 성공한 기업가인 고모와 고모의 아들은 사이가 좋지 않고 그건 아마도 고모의 아들이 방탕하게 살기 때문이다. 가끔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할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으며 이젠 자기가 죽을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내용이 <해피 엔드>가 보여주는 ‘로랑 가’의 전부다. 영화 밖에 있는 우리는 딱 에브가 보는 만큼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에브의 위치는 관찰자이고, 조금 과장하자면 영화 전체가 에브의 시선으로 관찰한 로랑 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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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는 아이가 한없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영상’이라는 매체 때문이다. 그 영상도 분명 에브의 시선이지만 그 시선에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니까 ‘동심’이 없다.

 

아이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모습을 보며 역겨움, 공포, 슬픔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약을 삼키는 엄마, 낯선 이름의 여자에게 성적인 욕망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아빠, 휠체어를 바다로 밀어달라고 부탁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렇다. 그런데 에브는, 정확히는 에브가 촬영한 영상은 ‘이해’라는 단어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모습을 보며 역겨움, 공포, 슬픔을 느낀다’는 문장은 에브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린 나이의 에브에게는 분명히 트라우마가 될 장면들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에브가 감정이 결여된 로봇처럼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에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 눈물은 엄마나 아빠에 대한 배신감이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 불안감이 에브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에브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서 영상을 찍는 걸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라는 눈을 거치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브는 불청객의 등장으로 엉망이 된 고모의 약혼 발표 자리를 빠져나와 조르주의 휠체어를 바다를 향해 밀어준다. 결국 조르주는 죽지 못하지만 로랑 가에서 조르주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에브 뿐이다. 자신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수락할 수 있는 것은 에브가 변명할 필요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는 휠체어를 바라보는 에브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음 장면이 물에 반쯤 잠긴 휠체어와 조르주의 뒷모습이 촬영된 길쭉한 화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촬영된 화면은 감독이 취하는 냉철한 태도와 맞물린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조르주와 에브는 속마음을 터놓으며 가까운 사이가 되는 듯한다. 로랑 가에서 가장 어린 에브가 가장 늙은 조르주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조르주의 휠체어가 촬영된 영상은 어떤 연대의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역설적이게도 <해피엔드>의 엔딩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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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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