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일기] 운동일지(1) : 운동? 그 피켓 들고… 그거?

호헌철폐, 독재타도!
글 입력 2020.08.1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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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한다, 나는 못 하지만 직접 나서줘서 고맙다.” 올해 코로나19 등록금 반환 운동을 기획했고 참여했다. 그때마다 주변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말은 ‘응원한다’와 ‘고맙다’였다. 지지의 말들이 힘이 되는 한편, 왜 같은 당사자인 우리는 함께 운동할 수 없는가, 라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내가 하는 것들은 대단한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리고 누구보다 당사자인 당신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문제들이다.

 

우리는 언제 불합리함을 느낄까? 권리를 박탈당할 때,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배제 당할 때… 그러나 이 불만과 문제의식은 행동으로 곧바로 이어지기 어렵다. 일상의 여유가 없어서, 내 관심사가 아니라서, 당사자성을 못 느껴서, 해본 적이 없어서, 문제들의 원인이 내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 때문에, 등의 이유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게 한다. 게다가 ‘운동’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이러하다. 붉은 조끼와 머리띠, 과격한 구호, 폭력성, ‘대의’ 중심, 피켓.

 

나도 그랬다. 사회가 나에게 말해왔듯,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내 노력이고 내 열정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노오력’하면 부당한 일 따위는 내 앞길에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그러나 불안함과 두려움의 해답처럼 보였던 그 말들은 결국 다시 내 숨을 옥죄었다. 그 끝은 자책과 죄책감뿐이었다. “너네 수능 성적이 앞으로의 인생을 바꿀 거야.”, ‘‘떨어졌다고? 니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학교에서 12년 동안 나는 그 말을 무엇보다 떠받들었다. 성적 상위권의 학생들만 사용 가능한 독서실 옆을 지나다니며 그곳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남들 다 가니까 가는’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나은 ‘간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의 ‘간판’에 대한 자조적인 말들. 내가 왜 이렇게 비싼 등록금을 내는지 몰랐고, 아무리 벌어도 벌어지지 않는 등록금을 겨우 마련해 등록한 뒤에도, 나는 수강신청이라는 시스템에 가로막혀 내가 듣고 싶은 수업조차 들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그 불합리들은 나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왜? 왜? 왜 안 되지? 왜? 왜? 왜?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에는 현장실습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기관에서 진행하는 현장실습을 전공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거다. 그렇지만 그 기관 섭외는 오로지 학과 내에서 ‘권위’라는 것을 가진 자들만이 가능하다. 나는 학생 등록금이 학교 운영의 60~8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왜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기관을 선택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느냐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규정에 어긋나요. 학생 의견은 반영 못 해요. 학과가 결정하는 거예요.” “안 된다니까요. 그래서 학생, 무슨 과라고요?” 등의 말이었다.

 

대학에서 2014년까지만 해도 절대평가였던 과목들은 정부 지침에 따라 상대평가로 바뀌었고, 그것은 오로지 기업의 입맛에 따른 결과였다. 차등으로 매겨지는 등록금은 근거가 부실했다. 아니 애초에 근거 자체가 없었다. 과를 계열별로 나누고, ‘그들은 특수성을 가지니 1.2배, 1.3배의 차이를 둬야 한다’가 차등등록금의 시작이었으니까. 학교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예술계열의 기자재 사용 등의 이유는 2020년도 1학기에 그 모순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지금이 전환의 기회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 나에게 미친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자면, 어렴풋하게 느꼈던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가 조금씩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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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해서 내 노력에 붙어버리는 물음표를 떼어냈다. 글쎄, 이게 다 노력이 부족한 내가 (아직도) (여전히) 기득권이 되지 못한 탓일까? 왜 계속해서 본인들이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학생들에게, 개인에게 전가하는 거지?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말로 계속해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지운다. 내가 있는 이 환경에 대해 나 스스로가 관심 가지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K대학 총장 송씨. 그 ‘럭키가이’는 문화예술계 디나이리스트(*블랙리스트가 더 익숙한 용어임에도, 인종차별적 맥락을 담고 있기에 디나이리스트라 칭하겠다.) 주도자는 버젓이 예술대학 총장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전히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떼어낼 생각을 안 한다. 나는 물음표를 그에게 붙였다. 왜? 왜? 왜 정부는 약속했던 문화예술계 핵심 정책 디나이리스트 청산 공약을 지키지 않을까? 누군가의 삶을 검열하고 잘라내고 뜯어내었던 이들은 왜 다시 예술 대학의 자리에 앉았을까?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일까?

 

부담스럽다. 앞에 서는 것이 무섭다. 불만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노력한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생각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하고 보듬고 힘이 된다. 나는 내가 느끼는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을 똑바로 마주하고 들여다본다. 그것에 대해 목소리 내고 대안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힘이 되는 것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물음표에 대한 이유들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함께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직접 현장에서 행동할 수도 있고,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 낼 수도 있다. 지지하는 단체에 후원으로 함께 할 수 있고,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열악한 사진전’을 열고 그 사진들로 사진집을 만들어서 국회와 정부에 발송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인터뷰를 했다. 소송인단을 만들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분노의 행진을 함께 했고 각종 포럼을 열었다.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게 된 지 이제 겨우 6개월 남짓 한 시간이 지났다. 내가 붙인 물음표는 확신이 생겼다.

 

여전히 학교는 등록금 반환 소송을 취하하라 강요하고 겁주고 질타한다. 지금의 구조가 우리에게 가하는 폭력은 그렇다. 자신의 무서움을 표출하는 방식으로서의 검열로 우리를 마구 때린다. 찢어버리고 잘라내버리고 뜯어낸다. 미디어에서는 “구조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니가 기득권이 되어서 그 구조를 바꿔!” 따위를 대사를 읊어대고, 감동적인 노래와 함께 일명 ‘개과천선’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흔히 대학생은 잠시 스쳐가는 시간일 뿐이니, 지금을 참고 견디면 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활동을 하면 할수록 모든 운동은 결국 이어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립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청소년 권리와도 이어지고, 노동자 권리와도 이어진다. 결국에 대학의 기업화와 자본주의 논리 속의 착취 구조는 다른 모습으로 개인을 계속해서 쥐어짠다. 이 구조와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 할 수 있을까? 당사자인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이것에 당사자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당사자란 말인가?

 

이 구조가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한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 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깎아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로 넓혀가고 싶다. 누군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는 보편적인 것이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나는 당신과 연결되고 싶다. 우리는 운동을 기획하고 웃고 울고 떠드는 시간 동안 그러한 연결됨을 느낀다. ‘운동’은 살아가려는 태도다. 우리를 계속해서 죽이고 잘라내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태도 그 자체다. 어느 책에서 봤던 구절처럼, 우리는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이대로 세상이 망해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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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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