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6. 술의 기쁨과 슬픔

주정뱅이와 애주가 사이
글 입력 2020.08.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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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6. 술의 기쁨과 슬픔


 

난 술을 좋아한다.

 

술의 종류나 맛의 차이를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소주 맥주, 와인, 칵테일 등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닭발에 소주, 소 곱창에 소맥, 숙성회에 청하, 파전에 동동주.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메뉴를 정하고 그와 찰떡궁합인 술을 곁들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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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알코올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자물쇠로 꼭 잠가 두었던 마음의 빗장이 헐거워진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마음들 – 혹여나 상처 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 그저 괜히 쑥스러운 마음 – 때문에 꾹꾹 눌러 두었던 말들이 마구 새어 나온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에게 애틋하고도 고마운 마음들이 가득 차오른다.

 

어떤 이들은 술을 마셔야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적당한 취기가 만들어주는 용기가 좋다. 취기를 빌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이 아주 소중하다.

 

어릴 적에는 내가 성인이 되어서 술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밤늦게 퇴근한 아빠의 입에서 나는 술 냄새가 죽도록 싫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씩은 술을 좋아하는 내 모습에 조금은 징그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지금은 적당히 즐기는 선에서 마실 수 있지만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를 되돌아보면 영 유쾌하지는 않다.

 

*

 

긴 수험 생활을 마치고 입학한 학교는 정말 즐거우면서도 모든 게 낯설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들로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 내가 스스로 나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안했기에, 이 모든 걸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기에 당장의 즐거움을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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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모임에 참석하고 뒤풀이나 회식에서 절대 빼지 않고 항상 끝까지 남아있었다. 해가 떠 있을 때 집에 들어간 날이 손에 꼽앗다. 매일같이 여러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워낙 정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탓에 그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고 이런 생활을 꽤나 오래 유지했다.

 

그러다 조금 추웠던 11월의 어느 날에, 동아리 모임이 끝난 후 다들 바빴던 탓에 뒤풀이가 취소됐던 날이 있었다. 아쉽게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 들어가 고구마 라떼 한 잔을 시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따뜻함도 달달함도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날 끝까지 진정되지 않던 심장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와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와 함게 술을 마셔준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불안에 떨다니 정말 절망스러웠다. 그 날 깨달았다. 나는 술이 좋고 사람들이 좋았던 게 아니라 세상과 마주하는 게 무서워서 술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후로는 아주 작정한 사람처럼 괴로울 때마다 술을 찾았다. 술을 마시지 않고 침대에 누우면 안 좋은 생각들이 계속 찾아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주 많이 취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들 수 있으니 그게 차라리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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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내 인생은 여러모로 아주 엉망이었고 그게 참 부끄러웠다. 삶을 재건할 의지나 용기 같은 것은 들지 않았고 그저 이런 나의 모습을 주변인들에게 정당화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자주 휩싸였다. 그때의 나와 술자리를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술을 마시는 친구와 함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걸 이제야 느낀다.

 

하루는 동생이 나에게 알코올 의존증이 아니냐며 이야기를 꺼냈다.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겠지만,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면 아마 알코올 의존증이 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알코올 의존증이라고 인정하는 게 두려웠다. 그 땐 술마저 없으면 도망칠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왜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고, 그저 술을 먹는 내 행위만을 비난하는 동생이 당시에는 조금 원망스러웠다.

 

아마 동생은 술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 변화할 힘이 없으니 단기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호리건곤[壺裏乾坤]이라는 말이 있다. 호리병 속의 천지라는 뜻으로 늘 술에 취하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당시 술을 마시던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당시의 나는 취해 있거나 취하고 싶어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

 

그렇게 2년 정도를 보내다 보니 일상에 알맞는 적당한 기분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아주 들뜨거나 아주 가라앉거나. 술로 고통을 해결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심화시켜버린 꼴이랄까. 술을 찾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술에 취해 나를 다치게 하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소리 죽여 우는 날이 잦아지면서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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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보다 조금 자란 지금은 괴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술에 손을 대는 일을 현저히 줄이려 하고 있다. 대신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화가 날 때는 글을 쓰고, 슬플 땐 소설을 읽는다. 우울할 때는 시를 읽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에는 차라리 그냥 그런 상태로 있는다.

 

이것들은 술이 주는 일시적인 쾌락을 이길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나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알코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며 술에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천천히 내 생활은 나아졌다.

 

물론 아직도 슬프고 힘든 밤이 찾아오면 술이 떠오르고, 가끔은 그런 이유로 술을 마셔 후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괴롭지만은 않다. 술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영원한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과 술잔 속 감정의 파도들을 나누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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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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