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그림에 휘둘릴 때

조급함
글 입력 2020.08.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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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작품에 많이 휘둘렸습니다. 내가 작품과 펜과 붓을 잡고 휘둘러야 하는데, 캔버스가 저를 잡아먹고, 붓이 저를 조종했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그림이 저를 그렸습니다. 나태해지면 놓게 되는 것이 그림인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 그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3달을 그림을 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리게 된 것이 이 그림입니다. 유화를 참 싫어했었는데, 유화물감으로 그렸고, 속이 답답했는데, 그 감정들의 불꽃놀이를 그려낸 것 같습니다.

 


SAM_4687.JPG

한승민(Han SeungMin)

무제(Untitled)

2019

캔버스에 유화 (Oil on Canvas)

65*53(cm)

Korea

 

 

처음엔 많이 헤맸습니다. 죽은 꽃이 아닌 살아있는 꽃을 그리고 싶었고, 세상에 없을 꽃들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남대문 꽃시장에 가기가 겁나 생화를 얻지 못하고, 다이소에 있는 조화들은 너무 하얗게 질려 보였습니다. 이전부터 꽃은 자주 그려왔기에 어쩌면 외운 데로 그린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화병을 먼저 그렸습니다. 파란색을 이용해서 이전에 그리던 것과는 다르게,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렸습니다. 옆의 레몬은 정석적인 정물화를 참 좋아하는 제 취향이 반영된 듯합니다. 큰 꽃, 작은 꽃을 순서대로 배치하고, 오랜만에 맡는 유화 냄새에 코를 찌푸리며 붓을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과정엔 늘 너무나 많은 조급함이 함께합니다. 특히나 그림을 그리는 나에 대해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에선 더욱더 불안합니다. 그래도 3개월을 쉬며 재충전 되었다고 의욕이란 연료는 가득 찬 상태란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으니 더욱 불안합니다. 이 좋은 연료를 가지고 이상한 그림을 그리게 되면 어쩌지? 이 붓질이, 이 색이 마음에 들까?


그렇게 계속 불안해하지만, 어느 순간을 넘으면 또 주르륵 그리게 됩니다.

 

 

 

세부 사진


 

노란꽃 세부2.jpg

 

노란꽃 세부3.jpg

 

노란꽃 세부1.jpg

 

 

 

뒷면


 

SAM_4691.JPG

이젠 캔버스 앞에 서길 바라며 썻던 글.

싸인 겸해서 캔버스 뒤쪽 틀에 적혀 있다.

 

 

작품을 하면 할수록 내가 그림을 참아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웬만하면 제가 그린 작품을 오래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깃든 기록은 사람을 과거로 빨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만은 즐기고 보자는 생각도 있습니다. 여기저기에 옮기며 두고, 가끔 파스텔을 가져와 잎사귀 하나 쓱 더 긋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제게 의미가 있습니다. 다신 그림을 참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와 확신을 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나의 선생님과 친구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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