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한 신의 존재를 빌려 말하는 세상살이의 의미 - 연극 라스트 세션

글 입력 2020.08.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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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신의 존재를 빌려 말하는
세상살이의 의미
연극 라스트 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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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이며 오는 날 비와 바이러스를 뚫고 오랜만에 연극을 봤습니다. 걸어서 갈만한 거리인데도 대학로에 갈 일을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YES24 Stage라는 극장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한 건물에서 3편의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니 가슴이 뜁니다.

 

세 군데 무대에서 배우들은 최선의 연기를 할 테고 관객들은 열심히 무대를 바라보며 감동과 박수를 보내고 있겠지. 세 편의 공연을 위해 무대 뒤, 극장 안팎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들의 노고와 무대를 위해 흘렸을 땀과 시간들이 한꺼번에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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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건물의 전경

 

 

극장은 3관이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 QR코드를 찍으려는데 핸드폰이 말을 듣지 않아 결국 2층으로 올라가 수기 문진표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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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문진표 사진

 

 

입구에는 책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프로이트 이외에 모르는 작가들의 책도 꽤 있었습니다. 연극을 보고 난 후에야 그 책들이 왜 전시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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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날 하는 극과 배우들이 벽에 크게 걸려있다.

주변엔 원작을 비롯한 극에서 언급된

다양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극장 안에 들어서니 단차가 있는 객석과 깊이 있는 무대, 사방 벽의 벽돌(무늬인지 진짜 벽돌인지) 때문인지 고전적인 느낌이 났습니다. 제가 앉은 좌석은 11열이라 무대 전체와 객석까지 보여 시선이 막히는 데가 없어 좋았습니다.

 

안내하는 분이 관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여러 번 알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스크가 콧대 밑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고, 공연 중에도 제지할 수 있다고, 우산은 앞 좌석에 방해되지 않도록 눕혀 두라고 하는 꼼꼼한 안내를 들으며 모두가 무사히 공연이 이루어지도록 애쓰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무대는 프로이트의 서재로 꾸며졌는데 책상과 침대, 책꽂이, 골동품들과 책, 4개의 일인용 의자(소파) 등으로 꾸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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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이면 살 수 있는 프로그램 북에 실린 무대의 모습

실제 프로이트의 서재와 최대한 비슷하게 꾸며졌다고 한다.


 

히틀러의 광란을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이사 온 프로이트가 1939년 2차대전 발발 즈음 죽기 3주 전 젊은 작가 C.S.루이스를 만나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는 게 중심 내용입니다. 실제로는 만난 적 없지만 두 대가가 만났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눴을지를 가상한 무척 흥미로운 설정이었습니다. 예수와 붓다, 마호메트가 만났다면 같은 가정처럼 말입니다. 신의 존재라는 주제는 사실 너무 오래되고 답이 없는 것이라 어쩌면 뻔한 얘기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없다는 식의.


그러나 이 연극은 대가들의 논쟁을 빌어 신의 유무보다는 인간들 상호 간의 사랑과 협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전쟁은 벌어졌고, 인간은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당장 서로서로를 돕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구강암으로 고통받는 프로이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장 곁에 있는 루이스뿐입니다. 극의 중심은 사실상 프로이트에게 있습니다.

 

무신론자인 저는 모두가 찾고 원하고,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는 하나님은 결국 사랑과 비슷한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극 중 하나님은 어디에나 있다란 루이스의 대사 또한  사랑과 합치되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무의식의 작용을 믿는 프로이트가 기독교로 회심한 당대의 젊은 작가에게 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다가 극심한 육체적 고통 앞에 도움을 청하는 대목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느껴집니다.

 

신이란 우주를 만들고, 자연과 사람을 빚어낸 전지전능함으로써가 아닌 인간들의 친절, 사랑, 정 등이 그저 익숙한 신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것이 아닐까.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남명렬(3)(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2)(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대사 외우시느라 고생하셨을 듯한 남명렬, 이상윤 배우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에 비해 루이스의 캐릭터가 덜 와 닿았습니다. 특히 루이스의 회심 동기나 변화된 모습은 사전지식도 없고, 극에서도 명확히 되지 않아 더욱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남명렬, 이상윤 두 배우의 연기는 2인극의 집중도 면에서 평균 이상은 되어 보였지만 대사 전달은 아쉬웠습니다. 남명렬 배우의 발음은 구강암을 앓고 있다는 설정으로 이해했는데 이상윤 배우의 경우는 발성 때문인지 전달력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와 프로그램 북을 보니 연극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극본 자체에서도 루이스의 비중이 덜한데 연기와 연출로 캐릭터를 더 살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대를 활용한 연출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일단 골동품들과 책장, 프로이트의 책상 위는 객석으로부터 거리가 멀어 주목을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골동품들이나 책상 위의 모습은 극의 이해도를 높여주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었는데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영상이나 조명 등의 방법으로 극 안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이트가 딸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대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극의 마지막에서야 무대 왼쪽 벽면을 화면 삼아 자막으로 보여주는데 극의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더욱 생기있는 연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영국 거리의 모습이라든가 국왕과 총리의 모습, 프로이트의 강아지 요피 등은 얼마든지 사진 자료를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에서 나누는 유머나 수수께끼는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자극 같은 극 중 극으로 재현해주었다면 재밌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요컨대 두 배우의 연기와 대사로만으로는 재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입 안에 있는 보철물을 루이스가 빼내 주는 장면은 객석에 등을 보인 채 연기해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서로 의자를 바꿔 앉는 장면, 환자용 침대에 앉거나 눕는 두 사람의 모습은 꽤 의미 있는 장면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연출이 다소 밋밋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전쟁 배경의 폭격 때문에 두 사람이 당황하는 대목 역시 같습니다.

 

음악을 대하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태도가 다른 것으로 표현되는데 연출상 크게 주목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로이트의 대사가 매우 공감되고 흥미롭습니다. 1시간 30분을 2명이 말로만 내리 진행되는 연극인만큼 중간 중간에 유머를 넣어 재미와 관객들로 하여금 쉴 시간을 자주 줍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죽기 전의 마지막 토론, 도발적인 토론을 하는 극인 만큼, 더 깊이 있고, 많이 불편하더라도 더 진지한 극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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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과 인사 후 남명렬 배우가 이상윤 배우께 악수를 청했다.

 

 

연극이 끝난 후 비 그친 대학로를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신의 문제는 곧 인간의 문제입니다. 바이러스와 비와 억울한 죽음들과 불의와 고통들은 살아 숨 쉬고 있는 인간들에겐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고... 인간이 이루어놓은 예술들을 보고 듣고 감상하는 건 단순히 재미만을 주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의지의 발현일 수 있습니다. 불편한 질문들을 던져주는 예술작품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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