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그 그림'이 품고 있는 뒷이야기

#17 에드바르 뭉크, <절규>
글 입력 2020.08.0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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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절규(The Scream)>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붉게 물든 노을 아래 해골과 같은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인물의 이미지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들 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화를 소개하는 매체에 단골로 출연하는 이 그림이 실제로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유명한 그림이니까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의 미술관에 있지 않을까? 아니다. <절규>는 뭉크의 고향이자 그가 생의 대부분을 보낸 노르웨이에 있다.

 

 

[크기변환]Edvard_Munch_-_The_Scream,_1910_(Munch_Museum).jpg

에드바르 뭉크, <절규>, 1910년. 뭉크뮤지엄

 

 

하지만 이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절규>는 사실 네 가지 버전으로 존재하며, 그 중 세 점만 현재 노르웨이에 있기 때문이다.

 

1893년 판자에 템페라와 크레용으로 그린 첫 번째 그림은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같은 해 파스텔로 그린 것과 1910년 템페라와 유화로 그린 것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 뮤지엄에 있다. 그리고 남은 한 점은 1895년 판자에 파스텔로 그려진 것으로, 네 점 중 유일하게 개인 컬렉터의 소장품이다. 지금은 다른 이의 품에 들어갔지만, 본래 노르웨이의 대표 선박 기업인 프레드 올센(Fred.Olsen&Co.) 가(家)가 소장하고 있던 이 작품에는 드라마틱한 사연이 얽혀있다.

 

*

 

프레드 올센의 창립자 페테르 올센의 손자인 토마스 올센(Thomas Fredrik Olsen, 1897-1969)은 뭉크로부터 <절규>를 직접 구입했다. 토마스 올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그가 어떤 컬렉터였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뭉크의 작품을 30점 이상 소장한 주요 후원자였으며, 그 이전에 뭉크와 한 동네에 같이 살던 이웃이자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크기변환]토마스 올센.jpg

토마스 올센 

 

 

뭉크는 1910년 노르웨이 비츠텐(Hvitsten) 지역에 집을 구입해 살았는데, 그때 이웃에 살고 있던 토마스 올센 부부와 교류하게 된다. 당시 40대였던 뭉크는 그 무렵 각국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화가였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 전시를 열었고, 1908년에는 노르웨이로부터 왕실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을 정도로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토마스 올센과 아내 헨리에트 올센은 “예술가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주기 위해” 뭉크의 작품을 여러 점 구입하며 그에게 든든한 날개를 달아주었다. 또 그에 대한 답례로 뭉크는 헨리에트 올센의 초상을 그려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노르웨이가 나치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그의 작품도 위기를 맞게 된다. 나치는 뭉크의 미술에 ‘퇴폐 미술’이라는 딱지를 붙여 작품 수십 점을 압수하려 했다. 이때 토마스 올센은 작품을 잘 지켜달라는 뭉크의 부탁을 받고 그 중 72점을 동네 헛간에 숨겼다. 이 중에 <절규>와 <아픈 아이(The Sick Child)>와 같은 대표작이 포함되어있었는데, 작품들은 1945년 노르웨이가 독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안전하게 빛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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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

 

 

뭉크도, 토마스 올센도 세상을 떠나고 작품만이 가문에 잘 전해 내려오고 있었지만, 2012년 뭉크의 <절규>는 또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토마스 올센의 아들이자 프레드 올센 기업의 경영자인 페테르 올센이 이 작품을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유명한 작품이 경매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화제였던 이 사건은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던 1억 1992만 2500달러에 낙찰되면서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페테르 올센은 작품 판매 수익금으로 아버지와 뭉크가 이웃으로 지내던 비츠텐에 새 박물관과 호텔 등을 지을 예정이라 밝혔다.

 

*

 

이제, <절규>의 또 다른 두 가지 버전을 소장하고 있는 오슬로의 뭉크 뮤지엄으로 가보자. 뭉크는 노르웨이에게 아주 특별한 화가다. 단순히 노르웨이 출신의 위대한 화가라서가 아니라, 수만 점이 넘는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노르웨이에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뭉크 개인의 불운한 삶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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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자화상>, 1895년.

 

 

그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죽음과 함께 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고, 열네 살 때에는 누나를 결핵으로 잃고, 그 역시 몸이 약해 평생 고생하며 살았다. 거기에 서른 즈음에는 아버지까지 자살하는 큰 아픔을 겪는다. 일찍이 어머니와 누나를 먼저 떠나보내며 결핍된 모성애를 다른 여인과의 사랑에서 찾으려 했지만 그들마저도 번번이 뭉크를 실연의 아픔으로 몰아넣었다. 1944년 세상을 떠날 때에 그는 독신이었고, 독일과의 전쟁으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장례마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자식 없이 생을 마감한 뭉크는 자신의 남은 작품들을 모두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2만 8천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집안에 있던 편지, 붓, 팔레트 하나까지 모두 시에 기증한 것이다. 이 엄청난 유산을 보관할 뭉크 뮤지엄을 짓기 위해 미술관 건축 설계 공모까지 열리게 되었다. 또한, 시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심의 끝에 당시 덜 개발된 지역이었던 토옌(Tøyen)에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이후 뭉크의 또 다른 친구이자 컬렉터였던 롤프 스터너센(Rolf Stenersen)**이 소유하고 있던 뭉크의 작품들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면서, 뭉크 뮤지엄의 컬렉션은 더욱 풍성해졌다.

 

*뭉크 뮤지엄은 2020년 가을 비요르비카(Bjørvika) 지역으로 옮겨 새 둥지를 틀 예정이다. 이곳에서 스터너센이 기증한 뭉크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스터너센은 노르웨이의 사업가이자 작가, 그리고 컬렉터였다. 1920년대부터 뭉크와 친구로 지내며 그에게 재정적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뭉크뿐 아니라 다른 노르웨이 예술가들, 파블로 피카소, 파울 클레, 아스거 욘과 같은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여 유럽 모더니즘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컬렉션을 만들었다. 작가로서 그는 뭉크의 사후 그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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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뮤지엄 (2019년)

 

 

시민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뭉크의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은 관객친화적인 형태로 지어졌다. 실제로 작년 5월 오슬로의 뭉크 뮤지엄을 방문했는데,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여타의 유럽 미술관들과는 달리 소박하지만 관람하기에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이었다.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걸작들이 수십 점씩 늘어서 있는데도 방탄유리나 부담스러운 경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뭉크의 작품은 몇 번 도난사고를 겪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는 뭉크 뮤지엄에 있는 <절규>와 <마돈나>가 대낮에 강도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2년 만에 작품을 되찾기는 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뭉크 뮤지엄 측은 그제서야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어찌되었든 나를 가로막는 북적이는 인파나 철통 경비 없이 <절규>를 바라볼 수 있었던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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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5년, 개인 소장

 

 

‘두 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 해가 지고 있었고 –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 우울한 조짐을 느끼며 – 나는 멈춰 섰다 / 여전히, 죽을 만큼 힘들었다 – 검푸른 / 피오르와 도시 위로 불타는 혓바닥과 피가 내려오고 있었다 / 내 친구들은 앞으로 가고 – 나는 뒤에 남았다 / - 불안에 몸을 떨며 –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한 절규를 느꼈다 – EM(에드바르 뭉크)’

 

 

이 시는 페테르 올센이 소장하고 있던 <절규>의 프레임에 뭉크의 손글씨로 쓰여 있다. “평생을 이 작품과 함께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힘과 에너지는 더욱 강렬해졌다”는 페테르 올센의 말은 <절규>의 뒷이야기와 함께 작품 자체가 가진 영향력을 더욱 신비롭게 부각시킨다.

 

대중매체에서 수없이 패러디된 것을 보며 무뎌진 충격을 잠시 뒤로 하고, 마치 작품을 처음 보는 것처럼 감각의 날을 세워 작품을 들여다본다. ‘해골바가지’가 아닌, 절규하는 한 인간의 절망이 그림을 뚫고 고스란히 전해져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그리고 그 너머에 불운한 삶 내내 무던히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자식처럼 아꼈던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고, 아름다운 석양이 ‘핏빛’으로 보일만큼 끔찍한 절망 속에 살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삶 속에서 그는 예술가로서 인정도 받았고, 좋은 컬렉터 친구들을 만났으며, 자신의 고향에 작품들을 잘 남길 수 있었다. 불운과 행운이 교차한 삶을 살았던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그래서 <절규> 앞에서 웃거나 울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채현진.jpg

 

 

참고 자료

 

2019년 5월 뭉크 뮤지엄 기획전 《EXIT!》에 전시된 자료

(책) 요세프 파울 호딘, 『에드바르 뭉크: 절망에서 피어난 매혹의 화가』, 시공아트, 2010

“[미술] 죽음을 기억하라”, 조성관, 주간조선, 2013-04-08

“Munch's 'The Scream' sells for $119m... becoming the most expensive artwork ever auctioned”, Emily Anne Epstein, This is Money News, 2012-05-03

“Much Ado About Munch”, The Norweigian American, 2012-03-01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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