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바리움,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영화]

글 입력 2020.08.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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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영화 <비바리움>과 관련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다양한 문화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중인데, 좋은 기회로 영화와 전시를 특히 많이 보러 다닌다. 가장 최근엔 <비바리움>이라는 영화를 봤다. 내용이 어렵고 기분을 이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하여 처음엔 꺼려졌지만, 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어 접하게 되었다. 연출이 추상적이고 배경지식 하나 없이 봐서 그런지, 해석이 다양하게 될 여지가 정말 많다고 생각하였다. 이 리뷰 또한 상세한 뒷배경 없이 나의 생각과 함께 진행해 보려 한다.

 

 

 

<비바리움>의 첫인상


 

이 영화의 의도를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바로 떠오른 키워드는, <멋진 신세계>와 <1984>였다. 이 두 키워드는 각각 올더스 헉슬리와 조지 오웰의 소설 제목이다. 내가 학생일 때에 필수적으로 읽어야 했던, 하지만 의무적으로 읽은 것치곤 매우 좋아한 소설들이기도 하다. 둘의 공통점은 사회 속의 억압 당한 개인, 독자가 보기에는 철저한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비바리움>의 인물들은 위 소설들의 주인공들과 닮아 있다. 그들은 감시당하는 체제 속의 존재들이다. 비바리움이라고 인터넷에 치면 '[명사] 테라리엄(밀폐된 유리그릇) 속에 소동물을 함께 넣어 감상하는 원예 활동. 소동물로는 도마뱀, 개구리 등이 있다.'라는 결과가 나온다. 처음 이 단어를 몰랐지만, 뜻을 찾아본 후 영화를 설명하는 최적의 비유라고 생각하였다.

 

영화의 주인공인 젊은 커플, 톰과 젬마는 우연히 집을 보러 간 '욘더'라는 마을에 갇혀 노예처럼 아이를 양육한다. 이 커플은 마치 테라리엄 속의 소동물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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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움>의, 도움을 요청하는 톰과 젬마

 

 

유리그릇 속의 도마뱀은 절대 자의로 세상 밖을 나갈 수 없다. 위의 장면인 '욘더'라는 넓은 마을에서 그들은 계속 운전을 하여도, 집을 불태워 봐도 탈출하지 못하였다. 아기를 키우면 탈출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강제적인 양육을 해야 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톰과 젬마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아이는 괴상하게 목소리로 커플을 따라 하고, 관음 하며, 괴성을 지른다.

 

섬뜩하고 사랑할 수 없는 아이, 톰에게 묘하게 적대적인 아이를 톰은 죽이려 하였었다. 젬마는 말렸었고, 그들은 아이가 성인이 된 후 그것을 후회한다. 그렇게, 그들은 마을 '욘더'의 다음 중개인으로 성장한, 성인이 된 아이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이라고 해서 톰과 젬마는 그를 죽일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반항 없이 키우든, 중간에 아이를 살인하려 하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의 선택지인 죽음뿐이었다. 이는 <1984>의 마지막에 총살 당한 윈스턴 스미스, 그리고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성을 지키려다 자살한 존의 모습과 닮아 있다. 각 작품 속의 인물들은 결국 거대 사회에 굴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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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젬마, 그리고 그들이 양육해야 할 아이

 

 

이야기의 전개는 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직감을 하였다. 이들은 아무리 노력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냥 그렇다. 그것이 '욘더'로 들어온 이상 그것은 그들의 숙명이 되었다. 사회가 지정한 가족에서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라는 역할을 노예처럼 수행하고, 죽어야 했다.

 

소설 <1984>와 <멋진 신세계>에서도 주인공에게는 희망이 없다. 여기서 희망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개인은 사회를 완전히 이길 수도, 파악할 수도 없다.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사회 체제 앞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바리움>의 끝인상


 

꿈도 희망도 없어 보이는, 디스토피아적 작품은 굉장히 오랜만에 접한다. 그리고, 오랜만인 만큼 낯설다. 영화를 본 후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지?'라고 생각하며 당황을 하였다. 하지만 비바리움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고 <1984>와 <멋진 신세계>라는 너무 오랜만에 꺼내보는 키워드가 떠올랐을 때,  이 영화의 끝인상이 결정되었다. 이 작품은 나에게 있어서 당황스러운 동시에 꽤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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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욘더'의 풍경

 

 

위 그림을 보시길 바란다. <비바리움>의 한 장면이다. 장면 자체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닮아 있다(실제로 마그리트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의 장면은 마그리트의 작품처럼 굉장히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내용에서는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질감을 하나의 영화라는 매체로 풀어낸 것 자체가 꽤 드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1984>와 <멋진 신세계>가 영상으로 구현된다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배경을 지니고 있을까? 소설의 사실적인 배경 묘사를 읽었을 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끔 감상하며 그저 멍을 때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작품들이 있다. 작품이 어려워서, 충격적이어서, 시각적으로 매력이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묘하게 끌려들어 가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비바리움>이다.

 

영화 전체가 예쁜 악몽 같은데, 누구에겐 아름다워 보이고 누구에겐 오로지 악몽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도 추측해 본다. 그리고 마냥 비현실적인 배경과 내용에 매몰되어 있다가, 이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 모습의 비유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 또한 오싹한 체험이 될 것이다. 무엇이든 간에, 꽤 독특하고 생각해 보고 토론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궁금증이 생기시고, 전례 없는 신선한 작품을 보길 원하신다면 추천한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 배경은 참 예쁘지만 스릴러이고 적나라한 디스토피아적 감성 때문에 누구에겐 완전한 악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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