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바이러스 섞인 기침, 세계 시민의 성장통 - 도서 '세계시민주의 전통'

글 입력 2020.08.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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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섞인 기침, 세계 시민의 성장통


 

한국사회는 국제사회가 가리키는 다문화 통합사회의 이상과 차이를 보인다. 국가적 지원과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다문화'는 특수한 예외로써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한국이 오랜 시간 동안 단일민족 문화를 유지해온 것과 관련되어 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국가와 시민의식의 성장을 이끄는 힘으로써 작용해오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거나 혐오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조선족', '외노자'와 같은 단어와 사용되는 맥락이 배타적 민족주의의 실제 사례로 꼽힐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2018년 제주 난민 사태가 가장 큰 인상을 남겼다. 특히 '난민을 얼마나 받는가'가의 논의보다 '위험한 난민을 왜 우리가 받아야 하는가'라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부분에서 그랬다. 두번째 논의는 근본적으로 배타적 민족주의에 의한 것이었다. 위험으로 규정된 난민들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머물 땅과 최소한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우리가 경계하는 테러리스트들은 그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다. 난민 문제는 국내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2018년 즈음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최근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보여준 '우리'의 민낯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처음 퍼지기 시작할 때, 다양한 '저들'이 혐오와 경멸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보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어 갔다는 것이다. 처음에 각 국가의 국민들은 끝없이 '우리'와 '저들'을 나누며 차별과 혐오를 반복했지만, 기술발달로 인해 빠르게 전염되어 '모두의 병'이 된 순간부터는 전례없는 협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사람들간 이루어진 원조부터, 국가적 협조까지, 인류는 다양한 상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은 현대사회의 연결성을 다시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인류는 전염병의 유행부터 그에 따른 대처를 지켜본 모든 국가와 국가의 시민은 더이상 온전히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떠오른 초국가적 공동체가 나아갈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를 고민해야할 때다. 세계는 한때 연결성을 부정하고, '저들'의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국가적 자부심과 위대함으로 포장하면서 국가간 경계를 더욱 견고히 하려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비극을 하나의 성장통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책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세계화 시대에 요구되는 현대사회의 시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책은 키케로, 스토아 학파, 그로티우스, 애덤스미스로 이어지는 세계시민주의 전통 철학의 역사를 소개하고 오늘날 세계가 마주한 문제들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기술한다. 책의 마지막 장인 7장은 이런 시대적 물음에 저자가 도달한 대답인 역량접근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지지하는 역량접근은 인간중심적 접근인 세계시민주의를 발전시킨 것으로, 도덕적 추론 능력을 중시하는 세계시민주의 전통을 넘어 비인간 생물의 존엄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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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의 시민이오


 

책은 '개같은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일화로 시작한다. 디오게네스는 출신지가 어디냐의 질문을 받고 자신을 세계의 시민이라는 뜻의 "코스모폴리테스"고 대답했다. 그는 그리스인 남성이면서도 혈통, 출신도시, 사회계급, 심지어 자유인이라는 태생적 신분이나 성별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는다. 그는 남자와 여자,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 노예와 자유인을 포함한 모든 이와 공유하는 특성으로 자신을 이야기 한다. 이 모든 이와 공유하는 특성,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평등한 가치가 세계시민주의 철학의 핵심이다.

 

역시 재밌는 다른 일화가 철학의 방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하루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시장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다가와 그를 내려다보고 서서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시오"라고 말했다. 디오게네스는 "해나 가리지 말고 비켜"라고 말했다. 이는 신분이나 왕으로서의 지위같은 거짓된 자격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한 벌거벗은 상태 그대로 빛날 수 있는, 그 그림자만 없으면 힘차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이런 그림은 현대 인권 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외부의 조력없이 완전하고 온전하고 아름답다.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괜찮은 생계비, 시민권, 보건을 요구하지 않은 이유가 이러한 맥락에 있다. 하지만 열악한 삶의 조건은 설령 존엄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더라도 모욕적이며, 인간의 내면의 삶은 여러가지 측면에서의 통제력을 벗어난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토아 학파의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가치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

 

키케로 스토아적 철학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위계와 경계가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인종, 학살,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범죄를 금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해 엄격한 정의의 의무를 부과하였다. 키케로가 주창한 정의의 의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데, 첫째는 정의가 부당행위를 통해 촉발된 경우가 아니라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며, 두번째는 공통의 것을 공통으로, 개인의 것을 개인이 쓸 것을 요구한다. 키케로는 불의를 막는 데 실패하는 것 조차도 일종의 불의라고 보았으며, 적을 대할 때도 존중과 정직함을 간직할 것을 요구하였다.

 

정의의 의무는 전적으로 보편하며, 예외없이 엄격하게 부과된다. 하지만 키케로는 또다른 의무인 물질적 원조의 의무는 앞서 제시한 조건과 완전히 다른 조건을 도입하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게 제시한다. 그는 가장 가까운 관게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 것이 인간적 연대에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이런 연대는 개인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물질적 원조만을 정당화한다. 후에 이어진 오늘날의 다섯가지 세계의 문제들에서, 키케로의 대답은 모호하지만 충분한 대답이 된다. 기쁨의 원천이 되는 힘인 애착과 인간성 존엄의 중간을 찾으라는 키케로의 주장은 결함이 있어도 자정가능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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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주의는 두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첫째, 정의와 물질적 원조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동료시민들을 우위에 두어야 하며, 어느정도까지 그리해야 하는가? 둘째, 물질적 재분배에 대한 키케로의 대답은 불충분했다. 키케로는 적극적 정의와 소극적 정의를 나누어 구분했는데, 물질적 원조의 경우 폭행이나 공격이 아니기 때문에 소극적 정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굶주림과 가난이 한 명이상의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부당행위로부터 야기된 게 아니라고 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두 정의를 나누는 것은 알 수 없다.

 

근대 사상가인 그로티우스는 이를 발전시켜 국제관계를 무도덕적으로 보는 관념에 대항하고 국제 사회를 엄격한 도덕률에 따라 다스려지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티우스의 주장은 국가주권이 인간 자율성의 근본적 표현이라는 데 시작해, 도덕적 정치적 정의의 근본적인 개인을 드러낸다. 이는 다원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로 이어지나 동시에 만민법에 의해 도덕적 권리를 위해 간섭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티우스의 논의는 국가의 합법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명백한 오류보다는 모호한 정답이 더 올바른 방향이기에 그로티우스의 논의는 지속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애덤스미스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마지막 세계시민주의 사상가이다. 그는 평범한 거리의 짐꾼과 철학가의 차이가 본성이 아닌 습관, 관습, 교육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직업의 중요성과 그것이 인간의 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다른 삶의 조건은 허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의 가치를 상호존중과 상호성을 통해 타인에게 의사를 표현하게 하는 신성하고 침해 불가능한 것으로 두었다.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을 수용한 애덤 스미스는 대중에 알려진대로 '합리성으로만 움직이는 인간'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적 안배를 인간의 존엄성의 표현으로 끌어올렸다.

 

 

 

고귀하지만 결함이 있는 이상


 

여기까지가 책이 기술하는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의 대략적인 요약이다. 핵심적인 내용만 축약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각 철학자가 가진 사상적 결함과 그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였다. 책은 각각의 사상적 전통이 가진 의의와 한계를 조명한 후 현대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드러내고 세계시민주의를 하나로 묶은 역량접근으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굳이 이런 문장들을 불필요하게 집어넣는 것은 글쓴이로써의 변명보다는 독자의 안타까움에 의한 것이다. 좋은 철학책을 받아 읽을 때마다 곤란한 점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이미 너무 길어져버렸지만, 내가 제시한 설명은 저자가 제시한 광활한 연결성과 흐름을 전달하지 못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결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세계적 유행으로 인해 개인의 행동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개인은 통제된 행동 범위 내에서 더 큰 세계의 연결성을 고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명의 시민이 가진 힘은 작지만 거대하다. 시대적 고민을 마주한 상황에서 고민과 행동은 더이상 지체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 <세계시민주의 전통>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고민에 빠졌었다. 단순히 책이 제시하는 도덕적 이상의 혼란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연의 뽑기의 승리자였던 나는 별달리 뛰어난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아왔다. 알량한 도덕적 이상에 빠진 나에게 디오게네스의 일화들은 하나의 종교에 가까웠다.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자유로운 디오게네스는 그 일화를 포함해 고귀하다. 하지만 저 편에서는 존엄성을 고민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이 책이 그토록 불편하고 마음에 쓰였던 것은, 내 안에도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도덕적 위선이 다소 역겹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도덕적 이상을 꿈꾸고, 기부도 해왔지만 그 이상의 노력과 인지를 하지 않았다. 그런 방식으로 내 삶의 반경이 좁아지고, 세계를 향한 창문도 좁아지고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도덕적 이상에 심취한 사람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의 마음 뿐이다. 스미스의 말대로, 우리는 분리되고 초연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시민으로, 거대한 자연적 연방의 일원이 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은 내가 갑작스럽게 어떤 사회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둑에 들어간 디오게네스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느끼는 삶의 애착과 도덕적 이상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던 키케로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다짐한다. 세계 시민주의가 가지는 모호한 정답을 따라,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열의를 다한 진보를 지속해나갈 것이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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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주의 전통

고귀하지만 결함이 있는 이상

 

 

저자

마사C.누스바움

 

쪽수

348p

 

가격

18,000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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