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적 언어로 풀어낸 문학 - 전망 좋은 방 [영화]

E.M.포스터와 제임스 아이보리의 만남
글 입력 2020.07.3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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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면 유명한 오페라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h! mio babbino caro)가 흘러나온다. 오페라에서 로레타는 아버지 쟈니 스키키에게 리누치오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얼핏 달콤한 사랑의 아리아 같지만 사실 결혼시켜주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겠다는 애교(?) 섞인 위협이 들어가 있다.

 

영화 <전망 좋은 방>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첫 만남부터 두 남녀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시대 상황으로서는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마음껏 표출해서는 안되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사촌 샬롯(매기 스미스)은 루시(헬레나 본햄 카터)가 조지(줄리안 샌즈)를 만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루시의 마음이 영화 첫 장면부터 감미로운 오페라의 음악으로 나타난 셈이다.

 

 


1. 문학 영화의 거장 ‘제임스 아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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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본가인 제임스 아이보리 연출의 <전망 좋은 방>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영국 작가 E.M. 포스터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소설 원작을 영화로 연출하는 데에 아주 뛰어난 감독으로 손꼽힌다. <전망 좋은 방>, <모리스>, <하워즈 엔드>, <남아있는 나날> 그리고 가장 최근 작이자 각본으로 참여한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영화화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서사가 탄탄한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일이 비교적 쉬운 작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변영주 영화감독은 한 방송에서 ‘단편소설 한편도 영화로 옮기면 3시간 분량’이라고 언급한 바가 있다. 소설에서 길게 풀어 쓰인 표현들을 영화적 언어로 옮기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임스 아이보리가 영화화한 소설들은 꽤 길다. 하지만 이 뛰어난 감독은 작품의 메시지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 빼야 할 부분과 강조해야 할 부분을 놓치지 않고 영화에 전부 담아낸다. 그 와중에도 문학적인 흐름과 분위기도 정말 우아하게 풀어낸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한 권의 소설을 영상으로 ‘읽는’ 기분이 들 정도다.

 

 

 

2. 전망 좋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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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망 좋은 방>은 그 자체만으로 문학, 미술, 음악이 합쳐진 종합세트다. 루시가 하얀 드레스 차림으로 양산을 쓰고 걸어갈 때면 모네의 <양산 쓴 여인>이 생각날 정도로 한 폭의 그림 같다. 또 열정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보수적인 영국의 사회적 압박으로 억눌린 루시의 마음은 그녀가 취미로 하는 피아노 연주로 표출된다.

 

루시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며 극 상황에 몰입해 보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격정적인 베토벤을 치는 그녀를 보면서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베토벤을 연주할 땐 그렇게 열정적인 그녀가 조용한 생활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소? 언젠가는 음악과 생활이 어우러질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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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E.M. 포스터는 낭만적인 열정과 인습의 충돌, 영국 사회의 계급 간의 충돌을 주로 모티프로 다룬다. 이 작품에서는 중세적인 가치관을 가진 보수 세대와 근대로 넘어가는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드러난다.

 

그 중간 지점에 있던 루시는 피렌체라는 낯선 도시가 주는 낭만적인 힘에 취해 억눌렸던 무언가가 꿈틀거림을 발견하곤 혼란스러워한다. 조지의 아버지 에머슨씨는 루시에 대해 ‘그녀는 중세적인 사람이 아니다’라며 제일 먼저 그 변화를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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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중세적 가치관은 사실상 피렌체 광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살인을 당한 그 사내는 ‘대리 살인’을 당했음을 의미하며 그 일 이후, 조지는 자신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말한다. 이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 ‘나’라는 주체성을 찾아가는 근대적 인간의 자유연애 사상이 젊은 두 남녀에게 찾아왔음을 의미한다.

 

*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정교하게 담고 메시지가 주는 작품성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감상한 로맨스 영화였다. 문장과 언어가 만들어낸 고유의 아름다움, 즉 문학이 가진 힘을 훌륭히 영화화 해낸 작품인지라 뻔한 스토리였음에도 새로운 시각으로 감상하고 소화할 수 있었다. E.M. 포스터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제임스 아이보리가 만든 포스터의 작품들을 앞으로 더 찾아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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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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