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강렬한 시작의 순간, 흔들리더라도 끝내 마주하겠다고 -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글 입력 2020.07.2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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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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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총아 혹은 논란의 감독, 자비에 돌란이 신작 <마티아스와 막심>(2019)으로 돌아왔다. 이름만 익히 들었을 뿐 그의 영화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힙스터’들이 좋아한다는 타이틀과, 그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 때문에 한껏 가자미눈을 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마티아스와 막심>은 그 모든 선입견들을 밟아버렸다.


오랜 친구였던 두 친구 마티아스(가브리엘 달메이다 프레이타스)와 막심(자비에 돌란)이 우연찮게 키스를 한 이후 겪게 되는 12일 간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루는 이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은 어느 것 하나 벅차오르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굳건하다고 믿어왔던 마티아스와 막심의 관계에 가해진 하나의 균열. 이후 무엇인지 그들 스스로도 정의내릴 수 없는 감정의 포화 상태가 자비에 돌란 특유의 감각적 이미지과 만나자, 긴장인지 흥분인지 모를 고양된 상태에서 한동안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작열하는 햇살 아래 조금은 들떠 있고 언제든 끓어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여름, 도저히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답고도 강렬한 영화다.

 

 

시놉시스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마티아스와 막심은 내기에서 져서 친구 동생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예기치 못한 키스신을 찍게 되는 둘. 이후 둘 사이는 어쩐지 서먹하기만 하다. 마티아스는 혼란스럽다. 자꾸 막심이 생각나고, 스스로가 낯설다. 둘은 서로의 눈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데, 이 와중에 막심은 하필 호주에 2년 간 떠나있기로 한 상황이다. 막심이 호주로의 출국을 앞둔 12일 동안, 이 두 친구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펼쳐진다.

 

 

 

1. 서사 이전에 오는 감각적 장면들


 

2017년 <보그> 인터뷰에서 “먼저 감각한 뒤 사유한다”라고 말한 바 있는 자비에 돌란답게, <마티아스와 막심> 앞에 선 관객들은 상세한 서사에 앞서 감각적 장면들을 먼저 만나게 된다.

 

영화는 구체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어져 나가지 않는다. 마티아스와 막심의 첫 키스와 그 후 둘 사이에 있었던 직접적인 사건들을 우리는 직접적으로 보지 못한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장면들에서 갑작스럽게 스크린은 블랙 아웃된다. 마티아스와 막심 간의 서사는 그렇게 몇몇 중요한 장면들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초반까지는 순전히 우리의 추측에 맡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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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전개시켜나가는 것은 12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펼쳐지는 마티아스와 막심의 ‘감정’의 흐름이다. 자비에 돌란은 음악과 강렬한 색채의 이미지를 활용한 감각적 장면들로 그 감정들을 탁월하게 잡아낸다. 적절히 조화된 음악과 색채는 생각의 영역 이전에 감정의 영역을 먼저 건드린다. 상세한 설명을 통해 둘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를 이해한다기 보다, 우리는 감각적 이미지들을 통해 마티아스와 막심의 감정에 푹 잠겨 있게 되는 것이다.

 

흔들리는 화면, 어둑하지만 강렬한 색채, 영화 속 모든 소리들을 삼켜버리는 묵직한 피아노 소리 등은 다른 이야기 없이 그 이미지 만으로 감정을 벅차오르게 한다. 마티아스와 같이 이미 한껏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조금은 들뜬 채 이제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마티아스와 막심의 예기치 않은 첫키스 직후의 장면들은 단연 압권이다. 키스의 순간과 직후의 장면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오갔는지 우린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에 마티아스는 숙소를 빠져 나와 호수를 미친듯이 헤엄치기 시작한다.

 

무서울 정도로 검푸른 호수를 헤엄치는 마티아스가 멀리서 비춰지는데, 이때 그토록 넓은 호수에 비해 한없이 작은 마티아스의 몸은 곧 삼켜질 것만 같이 연약하고 불안해보인다. 그의 거친 숨소리와 필사적으로 물을 차내며 생긴 거품들, 그것들을 뒤덮는 음악이 고조되며 마티아스가 겪는 혼란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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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모르는 새 지나치게 멀리 가버려 호수의 반대편을 찍고 겨우 돌아온 마티아스. 대체 수영을 얼마나 오래 한 것이냐며, 미친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친구들 앞에서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를 쳐다보는 막심의 얼굴 역시 어딘가 이상하다. 전날 둘 사이에 큰 일이 벌어진 것이, 그래서 이 두 친구의 오랜 세계에 큰 균열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2. 마티아스의 감정과 막심의 감정이 만나며,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감정의 표현에 치우친 감각적 장면들의 무분별한 이어붙이기일 뿐이냐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의 중반까지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막심과의 키스 이후 혼란을 느끼는 마티아스의 나날들이다. 초반 마티아스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파편적으로 보여주다가, 중반부을 기점으로 영화는 막심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시작한다.


감정의 파편들이 모이면서 하나의 서사가 완결되는 짜릿한 지점이다. 띄엄띄엄 마티아스의 혼란스러운 감정만 보다가,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저 추측밖에 할 수 없던 한정된 시점에서 중반부에 들어막심의 감정이 밀어닥치기 시작하면서 모든 퍼즐이 끼워맞춰지게 된다.


예기치 못했던 키스 이후, 마티아스는 막심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그를 마주하는 것을 껄끄러워한다. 막심이 호주로 떠나기까지 채 2주도 남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를 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어머니와 여자친구의 성화에 못이겨 막심 환송 파티에 떠밀리듯 가게 되지만, 괜히 심술을 부려 분위기를 망쳐 놓는다. 그러나 막심을 볼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 쫓겨나듯 뛰쳐나온 파티에서 마티아스는 한참을 서성이다 제발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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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막심을 좇다 거실 TV 앞에 앉은 그를 발견하고 옆에 멀찍이 떨어져 앉는 마티아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혼자 한참을 웃는다. 그런 그를 보고 애써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막심 역시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온다. 어색하게, 그러나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 둘의 장면에서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했던 둘 사이의 감정과 서사를 만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등장하는 마티아스와 막심의 키스신. 20년이라는 시간을 뒤로 하고, 당장 주체할 수 없던 감정에 집중한 채 둘은 이번에는 강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키스를 한다.

 

포화 상태에 있었던 둘의 감정이 드디어 터지게 된다. 파편적으로 암시되었던 마티아스와 막심의 감정이 관객에게 드디어 밀어닥치게 되며, 둘 사이에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끔 한다. 혼란스러워 하던 마티아스의 감정만을 지켜보던 우리는, 막심 역시 마티아스 못지 않게 이 감정의 정체가 갑작스럽고 낯설어 못지 않게 괴로워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야기를 비로소 완성시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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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스는 막심의 얼굴에 있는 커다란 흉터에 입을 맞춘다. 그것은 20년 간 누구보다 잘 알고 지낸 친구로서 둘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막심의 오랜 상처에 대한 것이자,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막심에게 모질게 대한 마티아스 자신이 가한 상처에 대한 입맞춤이다. 긴 서사보다, 감정의 흐름을 차근차근 오려 붙여 마침내 마지막 퍼즐을 맞춰내는 순간 또렷한 영상을 만들어내게끔 하는 뛰어난 전달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을 키스신이었다. 단순한 욕망의 분출의 장면이 아닌, 오랜 세월과 감정이 맞닿는 순간이자 관객이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마침내 짜맞추게 되는 폭발적 장면이다.

 

 


3. 영화의 끝, 이야기의 시작: 정의내릴 수 없는 이 감정을 마주하겠다고


 

‘나’ 못지않게 ‘너’ 역시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둘. 이제 이 낯선 감정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막심은 마티아스에게 주말을 같이 보내자고, 우리는 이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티아스는 여전히 남성이자 오랜 친구였던 막심에게 끌림을 느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막심을 피한다. 막심은 기다리고, 마티아스는 피하는 상황이 한참을 반복되다, 공항으로 길을 나서는 막심의 앞에 마티아스가 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둘 사이에 있었던 감정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마티아스와 막심의 옆에 서서 나란한 시선으로 그들을 볼 뿐이다. 다만 그 둘은 자신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감정을 직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오랜 친구에게 순간적으로 느낀 성적인 끌림에 불과했을 지도 모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일 사랑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 사이에 벌어진 이 12일 간의 감정의 소용돌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된 이야기를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둘 사이에 있었던 키스처럼, 숨겨져 있었던 둘 사이의 수많은 기억들이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숨겨질 수 없다.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막심은 말한다. 일단 나는 너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이 감정을 이해하고 싶다고. 그러한 막심 앞에 선 마티아스, 이제 둘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차례다. 열린 결말이 가진 모호함이 이보다 벅차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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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문구가 "어떤 우정은 사랑보다 강렬하다"라는 점이 참 안타깝다. 마티아스와 막심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사랑보다 강렬한 우정’ 정도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정이라고 생각해왔던 관계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균열이 가해진 시점의 이야기이다. 그 균열은 톡 치는 순간 와장창 무너져 내리며 사랑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금이 간 쪽들을 새롭게 메우며 원래의 우정을 굳건히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느 쪽이 될지는 스크린이 올라가고난 후의 마티아스와 막심 만이 알 뿐이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유난히 맑았던 밤에, 그들이 펼쳐 나갈 새로운 세상이 그리고 이 여름이 나는 너무도 기대가 되어서 한참을 서성거리다 집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홍종선의 배우탐구] 그는 여전히 천재다, 자비에 돌란', <데일리안>,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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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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