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추함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 툴루즈 로트렉 展

글 입력 2020.07.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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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을 좋아하고 그만큼 문화예술에 영향도 많이 받는 사람이지만, 사실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아는 화가라고는 반 고흐, 피카소, 모네, 프리다 칼로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뿐이며 미술 전시회를 간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를 알기 전까지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툴루즈 로트렉전은 이런 그림 문외한도 재밌게 즐겼을뿐더러 잊고 있었던 그림의 매력까지 떠올리게 한 전시였다. 소설이든 영화든 사진이든 모든 예술이 창작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그림만큼 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예술은 없을 것이다.

 

로트렉의 뮤즈는 물랑루즈의 댄서나 유곽의 매춘부 등 고고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선입견으로 무장한 시선에서는 추하기만 했을 그들이 로트렉의 붓끝에서는 무려 예술작품으로 탄생했다. 남들과 똑같이 보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 자신 있게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고 말하는 사람, 전시 입구에서 느낀 로트렉의 첫인상은 다음 그림으로 가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앵콜전_포스터_최종.jpg

 

 

전시는 연필 드로잉, 물랑루즈, 말 등 로트렉 그림의 핵심 키워드로 일곱 개의 섹션을 구성했다. 시대순으로 구성하지 않고 주제별로 묶어서 그런지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은 여러 주제에 부합해 반복되어 전시되었다.

 

만약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혼자서 관람했다면 그 반복에 지루함을 느꼈을 테지만 운 좋게 듣게 된 도슨트의 설명 덕분에 로트렉의 예술 세계를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핍


 

설명과 함께 그림을 관람하며 가장 격렬하게 느낀 감정은 ‘결핍’이었다.

 

귀족 가문의 자제인 로트렉은 근친혼의 영향으로 결함이 있는 상태로 태어나 약한 관절을 지니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낙마 사고는 그의 성장을 멈추었다. 그를 외롭게 만든 건 150cm 남짓의 키가 아니라 아버지의 냉대였다.

 

당시 귀족 남성에게 승마는 매우 중요한 취미였는데 로트렉의 아버지는 로트렉이 이를 해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차갑게 버렸다. 로트렉이 사망하자 그의 아버지가 더 이상 그의 소식을 듣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했다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나도 모르게 탄식이 절로 나왔다.

 

 

Le Jockey.jpg

 

 

전시회에는 다양한 그림이 있었는데 내게는 말 그림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감상자가 말에 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말의 뒷모습 그림과 정신 병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상태가 정상임을 입증하고자 그린 서커스를 묘사하며 그린 말 그림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얼마나 말에 타고 싶었을까. 도슨트 설명이 이어지는 내내 말의 등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예술가의 삶이 대부분 기구하지만, 명망 높은 귀족 가문에서 소외된 로트렉의 삶은 이상하게 마음이 더 쓰였다. 고통은 비교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을 아름다움 사이에 섞인 추한 불순물로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시선이 화려하고 고고한 것에서 벗어나 일상적이고 천대받는 것으로 향한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표현



Salon de la rue des Moulins.jpg

 

 

로트렉의 표현에 미화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왜 자신의 얼굴을 추하게 그렸냐는 모델의 항의에 나는 있는 그대로 그렸을 뿐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로트렉 특유의 그림체가 개성적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있는 그대로 그려서 오히려 더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화해서 그리든 부정적으로 그리든 결과물은 천지차이겠지만, 실제 모습을 왜곡한다는 점은 같다. 로트렉의 그림을 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진정한 애정이 깃든 시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명한 가수부터 성병 검사를 기다리는 매춘부에 이르기까지 만약 내가 현실에서 봤으면 전혀 다르게 봤을 사람들이 로트렉의 붓 앞에서는 공평했다.

 

로트렉 전시를 보기 며칠 전 퓰리처상 사진전을 관람했다. 과연 퓰리처상의 명예에 걸맞게 전시를 보는 것만으로 1940년부터 2020년까지의 현대사를 모두 체험한 기분이었다. 전쟁, 자연재해, 테러, 인종 차별 등 고통스러운 사진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꿋꿋이 모든 사진을 설명까지 꼼꼼히 읽으며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있는 그대로의 참혹함을 사진으로써 널리 알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사진작가들의 열정 덕분이었다.

 

물론 로트렉의 그림에서 세상을 발전시키겠다는 거창한 이상 같은 건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대상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더 빛나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에서 앞서 본 사진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추함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과 정신 쇠약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짧고 기구한 삶은 뛰어난 예술가를 더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하는데, 나는 보통 그런 삶에 연민을 느낀다. 로트렉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도별로 그의 삶을 정리한 연대기가 있었는데 한 벽면에 다 찰 만큼 짧은 그 생애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로트렉은 정말 많은 그림을 그렸다. 유명 화가의 전시회에서 광고 포스터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몇십 장이나 제작되었다니. 로트렉은 그림의 가치를 결정짓는 건 희소성이라는 나의 낡은 선입견을 비웃으며 용도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모든 그림을 그렸다.

 

보통 광고라고 하면 제품의 좋은 점을 극대화하는 게 일반적일 텐데 로트렉의 광고 포스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체인 광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게 싸이클 선수의 허벅지 근육이라니. (광고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정해진 시선을 거부하는 것,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 광고 포스터에서조차 참 로트렉다웠다.

 

대상의 정면이 아니라 이면을 보는 것, 어쩌면 로트렉이 세상에 원했던 것이 아닐까. 귀족 가문의 자제, 선천적인 결함, 작은 키. 이는 모두 그를 정면으로 봤을 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로트렉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러한 면모도 알아봐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추함에서 아름다움을 본다고 말했다. 그가 본 아름다움은 그림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그리는 그의 손끝이기도 할 것이다.

 

 

*

 

툴루즈 로트렉展 - 앵콜전시

- Henri de Toulouse-Lautrec -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제1,2전시실

 

기간

2020년 6월 6일(토) ~ 9월 13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일반 : 15,000원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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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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