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맛을 먹는 사람들 -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도서]

인간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글 입력 2020.07.2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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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가 다른 책


 

<레몬청 만드는 법>과 <핑거라임>은 각각의 책 같지만 사실은 서로 앞뒤로 이루어진 하나의 책이다. 글을 쓴 작가와 그림을 그린 작가 또한 앞뒤로 같다. 다른 것은 <레몬청 만드는 법>에서는 레몬을 소재로 다룬 이야기이며, <핑거라임>에서는 핑거라임을 소재로 다룬 이야기란 것이다.

 

<레몬청 만드는 법>도 그렇고 <핑거라임>도 그렇고 소설의 내용을 짧다. 더구나 영어 번역본도 같이 들어있어 소설의 길이가 더 짧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 속에서도 늘 그렇듯 생각할 거리는 존재한다. 10장도 채 되지 않은 이 글 또한 하나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화자는 그저 지켜볼 뿐


 

소설 속에 나오는 화자들은 그저 대상을 지켜보기만 한다. <레몬청 만드는 법>에서는 화자가 태국 식당 자스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은 손님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화자는 아르바이트에 익숙해지면서 매번 오는 손님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그들이 주문하기도 전에 먼저 '이거 맞으시죠?'라고 묻기도 하면서 점점 아르바이트에 적응해 나간다. 아르바이트에 익숙해져가면서 손님들의 얼굴도 익혀가던 화자. 그런 화자에게도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 늘 바질치킨볶음밥을 시키던 한 커플이다.

 

화자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오래 메뉴판을 살피던 커플을 기억한다. 그리고 언제는 같이 오고, 남자 혼자 와서 먹기도 하고, 여자 혼자 와서 2인분을 포장해가기도 하는 모습을 기억한다. 화자는 자주 오는 그들에게 여담을 건네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카운터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어느 순간 한 달 가량 여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도, 남자 혼자 일주일에 두세 번 와서 2인분을 포장해가기만 할때도 화자는 무슨 일 있냐는 인사치레 같은 말을 건네지 않는다. 오랜만에 본 여자가 다리를 절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자 혼자 와서 아주 오랜 시간 홀로 앉아 레몬청 열세 잔을 마실 때도, 그저 물을 데워주기만 할 뿐이다.

 

<핑거라임> 속 화자도 마찬가지다. <핑거라임> 속 화자는 상담사로 등장한다. 애초에 화자는 들어주는 사람, 이란 인물로 나온 것이다. 화자는 오는 사람들에게 핑거라임 요법 시술을 할 뿐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불필요한 시술, 치료는 하지 않는다. 그저 정해진 양의 핑거라임을 주입할 뿐이다.

 

 

성분 중에서 신맛을 내는 시트르산의 양을 백 배, 쓴 맛을 내는 헤스페리딘의 양을 오십 배 강화한 개량종 핑거라임을 사용한다. 핑거라임 과즙을 맛본 의뢰인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입을 다문 채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 <핑거라임>, p.51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잊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귀마개를 꽂으며 생활하는 사람,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사람.

 

지금의 고통을 이기고자 핑거라임을 찾는 사람들을 보며 화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인간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삶의 방식이 자신을 괴롭게 한다고 해도 그걸 바꾸는 게 반드시 옳은 길일까?"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화자라서 그런 걸까. 마치 소설 밖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 같다.

 

 

 

신맛을 먹는 사람들


 

어쩌면 레몬과 라임은 사람들의 감정일 수도 있다. 먼저 레몬을 얇게 썰고 유리병 속에 레몬 조각을 한층 깔고, 설탕을 얇게 덮고, 다시 레몬 조각과 설탕을 얇게 덮는 방식을 반복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게 레몬청인 것처럼.

 

어쩌면 사람들은 신맛의 고통과 그것을 완화해 줄 설탕을 반복해 겪으며 쌓아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어딘가에 놓아버리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자신만의 유리병 속에 그것을 계속 간직해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핑거라임을 먹으며 고통을 고통으로 덮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엔 고통을 잊는 방법이 수두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고통이 넘치기 때문에,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많아진 것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늘 고통과 함께 살아가기에 그것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상하게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고통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괴롭다.

 

괴로움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고 그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고통을 덮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그게 무한 반복되니 벗어날 수 없다. 어떻게 고통을 대해야 우리는 괜찮아질 수 있을까, 의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죽는 날까지도, 그 이후에도 계속 신맛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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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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