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피아니스트의 탄생, '프란츠 리스트'

19세기 유럽을 제패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섬세한 초상
글 입력 2020.07.2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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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리스트-피아니스트의 탄생>

지은이 우라히사 도시히코 옮긴이 김소영

도서 사양 128×188mm | 무선 | 292쪽 | 14,000원

ISBN 978-89-315-8951-103670

 

 

예술은 언제나 선언적이다. 하나의 예술적 사건은 새로운 예술 개념의 등장을 알린다. 현상이 먼저 존재하고 난 뒤에 사후적으로 사조나 흐름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예술의 탄생 이전, 예술가의 등장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 개념어가 있다면 그것을 처음 선보인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그 시작을 알 수 있다.

 

작가 우라히사 도시히코가 집중한 음악가는 ‘프란츠 리스트’다. 리스트 하면 <사랑의 꿈> 같은 낭만적인 작품과 초절기교와 같은 엄청난 테크닉을 연상케 한다.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된 경향이 많다. 그러다 보니 베토벤, 모차르트 같이 이미 절대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음악가들에 비해 리스트 자체에 대한 조명은 부족한 편이다.

 

물론 <프란츠 리스트>는 일본 작가의 시선에 의해 서술된 ‘프란츠 리스트’에 대한 내용이지만, 특정 음악가나 사조에 대한 접근이 쉬운 것은 우리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프란츠 리스트>는 리스트의 삶의 궤적을 통해 19세기 음악사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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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리스트(독일어: Franz Liszt, 문화어: 리스트 페렌쯔, 1811년 10월 22일 ~ 1886년 7월 31일)은 헝가리 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헝가리식 이름은 리스트 페렌츠(헝가리어: Liszt Ferenc)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었고, 파리에 가서는 훌륭한 연주가로 인정받아 '피아노의 왕'이라 불리었으며, 이 별칭은 오늘날까지도 리스트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뛰어난 기교로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지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추앙받고 있다. 낭만시대 음악에 큰 공헌을 했다.



 

피아니스트의 등장,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는 리스트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길라잡이다. 음악사에서 리스트는 여러 부분으로 해석된다. 어린 시절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점, 여인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는 점, 쇼팽과 바그너 같은 음악가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등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변혁을 일으킨 것은 ‘피아니스트’ 개념의 탄생이다.

 

‘피아니스트’라는 단어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을 의미한다. 리스트 등장 이전에는 무대 중앙에 홀로 우두커니 놓여있는 피아노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되는 게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트는 무대 위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피아노만 남겼다. 현대의 피아노 리사이틀 현장을 구축한 것이다. 그는 1839년 3월 9일 로마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전까지 피아노만으로 연주회를 연다는 발상은 그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 유명한 쇼팽조차 평생 단 한 번도 솔로 콘서트를 연 적이 없다. 그 당시 콘서트는 공연 하나에 피아노도 있고 가곡도 있으며 실내악도 있는, 이른바 혼합형 콘서트였다.

 

리스트는 1839년 6월 4일 벨조이오소 대공비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고단한 음악적 독백의 발명을 나는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툼에 지쳐 일반적인 프로그램을 짜지 못하고, 이어지는 연주회를 저 혼자서만 하기로 했습니다. 청중을 향해 마치 루이 14세가 된 마음으로 힘차게 “내가 바로 음악회다.”라고 외치려 합니다.’

 

- 138쪽, ‘피아노의 독백, 리사이틀의 발명’ 중에서

 

 

리스트는 자신의 연주회를 ‘발명’이라 한다. 이 점에서 리스트의 연주회는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닌, 도전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듬해 런던에서 열린 연주회 광고에는 ‘리스트의 피아노포르테 리사이트(recital)’이란 문구가 등장했다. 음악과 무관한 낭송이란 개념을 음악의 역사 속에 가져 온 것이다.

 

그는 도전했고, 청중들은 환호했다. 귀족에서 브루주아로 넘어가던 시기, 살롱에서 극장으로 옮겨가던 시기, 그런 19세기에 등장한 리스트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서 서술되는 당시의 인기가 이리도 큰데, 19세기 당시 리스트란 존재는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는 당시 음악계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자 동시에 한걸음 더 내다 보는 선구자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리스트는 피아노의 절대자가 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동에서 전설이 되기까지



 

‘어느 날 아침에 한 남자가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사내아이를 데리고 나를 찾아와 아이의 연주를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아이는 창백하고 허약했다. 연주할 때는 손의 움직임에 이끌려 의자 위를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왔다 갔다 돌아다니기에 혹여나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을지 가슴을 졸였다. 그의 연주는 완전히 변칙적이며 부정확했다. 운지법도 엉망이어서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건반 위에 손을 내동댕이치는 듯했다. 그런데도 나는 하늘이 그에게 선사한 재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화성에 대한 지식 하나 없이도 천부적인 센스로 자신의 연주를 완벽하게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 30쪽, ‘단 한 명의 스승, 체르니와의 첫 만남’ 중에서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알린 리스트. 비움의 미학을 통해 새로운 개념어를 만들어 낸 그의 도전정신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 아니기에, 그의 발명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리스트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 아담의 영향이 컸다. 일찍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어린 리스트를 데리고 연주 여행을 다니며 그의 실력을 세간에 알렸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리스트는 잠시 신동의 길을 벗어나 절차탁마의 시간을 가진다. 부친을 여읜 시기, 리스트는 철학, 문학 등 고전 도서를 섭렵하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 것이다.

 

그렇게 리스트는 성공과 고난을 연달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갔다. 개인적으로는 시련의 시기가 있었기에 리스트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음악가로서 테크닉만 갖춘 게 아닌, 지적 지평을 넓혀 나가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갖춰나갔기 때문이다.

 

책 속의 다른 부분에서 리스트의 성장 원동력을 사랑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리스트 이전에 개인의 가치관 정립이 우선했기에 뭇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아닐까 싶다. 신동의 시기를 거친 리스트는 스물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대규모 유럽 투어를 하면서 피아니스트로 거듭난다.

 

그러나 더 흥미로웠던 부분은 말년의 리스트다. 피아니스트로서 받은 영광을 뒤로 한 채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걷는다. 스캔들의 대명사, 세기의 음악가와 같은 수식어에서 벗어나 리스트는 수정처럼 맑은 눈빛을 간직한 채 성직자가 되었다. 어째서 불세출의 피아니스트가 성직자가 된 것일까.

 

 

‘살아 있는 모든 귀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평안히 잠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예술이자 목적입니다.’

 

리스트는 1865년 4월 로마에서 삭발식을 하고, 같은 해 7월에 신품 성사를 거쳐 성직자가 되었다. 아직 살아 계셨던 그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정신적인 자살’이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리스트는 왜 성직자의 길을 걷고자 했을까?

 

그것은 그의 예술에서도 필연적인 일이었다. 음악이 종교나 다름없던 그에게 예술적 세계관이나 예술에 대한 헌신 역시 모두 종교적 정신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 259~260쪽, ‘리스트, 성직자가 되다’ 중에서


 

리스트의 선택은 곧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동일하다. 변혁의 19세기를 산 리스트에게는 언제나 ‘천재는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라는 정언명령과도 같은 신념이 있었다. 그는 이를 지키기 위해 광범위한 연주활동, 자선, 교육활동을 해왔다. 그는 삶의 방향성에 맞춰 예술을 행해왔다.

 

그런 그의 삶에서 성직자라는 말로는 결코 낮설지 않은 결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로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평생에 걸쳐 보였던 로맨스에 대비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신념 속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그의 삶을 따라간다면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리스트는 그리 먼 시간의 인물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인물이니 말이다. 그는 20세기로 향하는 문을 연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연구나 정보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프란츠 리스트>를 통해서 리스트라는 인물의 삶과 신념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기교와 특유의 탁월함으로 대변되는 그의 작품세계가 조금은 더 인간적이고 진솔하게 느껴질 것이다. 서문에 등장하는 ‘예술의 사명은 고뇌로 가득 찬 현실을 드높은 하늘로 승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리스트의 말을 곱씹으며 그의 예술 세계 속으로 빠져보는 건 어떨까.

 

 


작가 소개


 

우라히사 도시히코浦久俊彦

 

1961년 출생. 음악 프로듀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세에 파리로 유학을 떠나 파리에서 음악학, 철학 등을 공부했다. 파리를 거점으로 작곡, 음악 연구 활동을 하다가 2007년에 미쓰이스미토모 해상 시라카와 홀의 임원 겸 디렉터로 취임했다. 일반재단법인 유럽-일본예술재단Euro-Japan Foundation of Arts의 대표이사, 다이칸야마 미래음악학교 교장, 살라만카 홀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138억 년의 음악사138億年の音楽史』, 『악마라 불린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悪魔と呼ばれたヴァイオリニスト―パガニーニ伝』등의 저서를 통해 대중에게 음악의 깊이를 알리는 활동에도 활발하게 임하고 있다.

 

 

옮긴이_김소영

 

다양한 일본 서적을 우리나라 독자에게 전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더 많은 책을 소개하고자 힘쓰고 있다. 현재 엔터스코리아에서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처음으로 시작하는 천체관측』, 『재밌어서 밤새 읽는 유전자 이야기』, 『컨디션만 관리했을 뿐인데』, 『슬기로운 수학 생활』, 『심리학 용어 도감』, 『논리 머리 만들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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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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