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展

글 입력 2020.07.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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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인간의 무의식, 저 어딘가로 초대합니다.


 

사람은 참 단순할 정도로 작은 것에 마음이 동한다. 내게 왜 이 전시를 택했냐고 묻는다면 바로 저 문장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무의식'이라는 단어에 일말의 떨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의식의 기저에 깔린 무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물들을 굉장히 선호하고 있었다. 무의식으로의 초대, 짧은 단어들의 연결만으로도 이 전시를 통해 내가 하지 못했던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전시를 관람했다.

 

한가람미술관 곳곳에 걸려있는 형형색색의 포스터 중에서 오직 무채색을 띠고 있던 해당 전시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로테스크한 컨셉을 유지한다. 대체로 기이한 퀘이 형제들의 작품 분위기를 따라 전시장을 세팅한 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중 단연 돋보였던 것은 오디오 도슨트였다.

 

이번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展>은 클래식한 오디오 도슨트와 컨셉셔널한 오디오 도슨트로 이루어졌는데, 내가 선택한 컨셉셔널한 도슨트는 전시회 전반의 느낌을 가이드해주었다. 도슨트는 자신을 집사 Q라 소개하고 전시실을 퀘이 형제의 저택, 즉 도미토리움으로 설정하여 관람객을 이 저택에 초대된 손님으로 맞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전시회의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어주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전시장 초입에서부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카프카의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벌레가 되는 기막힌 스토리 안에서 현실의 문제를 녹여낸 작품으로, 나로서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현실 고찰을 심도 있게 바라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상상력을 아낌없이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화젯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을 높이 샀던 작품이었기에, 초입에 배치된 그 작품은 퀘이 형제의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겠구나 싶은.



3. 블랙드로잉_끝없이 욕망하는 사람들.jpg

Ceux qui dèsirent Sans Fin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 끝없이 욕망하는 사람들

 

 

 

무표정의 사람들을 그려낸 그림 <블랙 드로잉>


 

퀘이 형제의 작업물들은 실로 다채롭다.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드로잉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접했다.  블랙 드로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드로잉은 꽤 심오하다. 인간이 아닌 마리오네트로 전락한 도시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울고 있거나, 표정이 없거나, 회의에 젖은 모습. 1970년대에 제작된 형제의 블랙 드로잉 작품들은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느낀 것들을 오직 종이와 연필로만 그려냈다고 한다. 다분히 절망적이고 암울한 시대상을 연필로 표현했기에 더욱더 거칠고 냉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대적 경험을 통한 사색을 담아낸 작품은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내가 특정 시대를 다룬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동시대에 발표된 예술들을 보며 마음껏 탐구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 시대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퀘이 형제의 블랙 드로잉 작품이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아마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5.악어의 거리 “의상실”.jpg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 악어의 거리 "의상실"

 

 

 

사람보다 더욱 사람같은 퍼핏 애니메이션


 

형제의 퍼핏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인형의 모습이 아니다. 예쁘게 화장을 한 여성도, 아기들이 좋아할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다. 얼굴 없는 인형, 뇌가 없는 인형들은 자칫 보기에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혐오스러운 느낌은 받지 못한 점이 꽤 새롭다. 신체의 일부가 없는데도 심리적인 불쾌함이 피어오르는 대신 이 인형은 왜 이렇게 설정을 해 뒀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피어오르게 할 수 있는, 자극과 지적 호기심의 밸런스를 잘 맞춘 작품들이라고 느꼈다.

 

어렸을 적 '유령 신부'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인물들의 섬세한 뼈마디, 기이하지만 결코 무섭지는 않은 균형감 등 살면서 처음 접해보는 애니메이션이었기에 몇 번이고 돌려봤었던 추억이 있다. 그토록 좋아했던, 그러나 몇 년 동안 잊고 있었던 '유령 신부'의 스토리를 이 전시장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유령 신부'의 작업에 참여했던 김우찬 작가가 퀘이 형제와 퍼핏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였다는 점이다.

 

퍼핏의 뼈대를 제작한 김우찬 작가의 작품은 손가락 관절을 만드는 것에 두 달이 소요됐다고 한다. 섬세하고 정교한 형제의 퍼핏 애니메이션의 뼈대에 이런 노고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작품을 관람할 때 더욱 세심히 관찰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퀘이 형제의 작업물들은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는 예술이라고 정의해 본다.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가 있구나, 이 장면을 이렇게 보여줄 수도 있구나, 라고 감탄하게 되는 참신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지만 작품 안의 메시지는 가히 철학적이다.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작품들은 그저 한 번 보고 지나치기엔 놓치는 것이 너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두 번, 세 번 더 살펴보게 한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전환하는 작업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무의식에 숨겨져있던 감정을 끌어올리는 예술을 선호하는 편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은 언제나 느껴도 새롭기 때문에.

 

전시회를 관람할 때 보통 큰 미술관을 빙빙 돌며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를 기본적으로 생각하는데 퀘이 형제의 작품은 관람하는 자세부터 차별성을 보인다. 커튼을 열고 도미토리움 안에 설치된 작품을 보거나 확대경을 통해 작품을 관람하는 자세는 관객이 주체적으로 이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9.해부실의 남과 여 _위조범.jpg

Rehearsals for Extinct Anatomies "The Inscriber as forger"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  해부실의 남과 여 "위조범"

 

 

무의식은 꿈을 통해 표출된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도미토리움 속 확대경으로 보는 작품들은 어딘가 선명하지만, 고개를 좀만 비틀면 시야가 흐릿해지기 일쑤다. 사실적이지만 흐릿한 작품들의 모습이 어딘가 꿈과 닮아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2. 하인여행의 관.jpg

The Coffin of a Servant's Journey PhotographⓒKeith Paisley / 하인 여행의 관

 

 

확대경을 통한 작품 감상은 엿보는 즐거움으로까지 퍼져 나간다. 관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배덕감이 든다는 생각이 앞섰으나, 나와 퀘이 형제만이 존재하는 도미토리움에서는 배덕감마저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을 들여다보았다. 시작과 끝이 없는 모호한 영상은 함부로 해석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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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심연의 정원은 포토존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동시에 퀘이 형제가 설치한 정원에 나도 퍼핏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퍼핏은 말만 하지 않을 뿐 사람의 행동을 똑같이 재현하지 않나. 게다가 퍼핏 애니메이션이 무성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도 사람일 수도 있고, 나도 살아숨쉬는 인형에 불과하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전시회가 어쩌면 인간인 내가 전시된 퍼핏을 감상하기 위해 도미토리움에 방문을 했는데, 알고 보면 인간도 살아 숨쉬기만 하는 퍼핏일 수도 있겠다는 주관적 해석을 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 전시가 수동적인 인간을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나름의 견해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예술이 아닌 숨긴 메시지를 능동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시. 퀘이 형제의 작품들은 이런 점에서 수동적인 내가 적극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건 아닐까 싶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展

2020. 06. 27 ~ 2020. 10. 04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 7전시실

 

 

 

이보현.jpg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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