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하고도 낯선 피노키오의 초상 - 예술의전당 My Dear 피노키오전

글 입력 2020.07.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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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 서사를 온전히 기억하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수많은 이야기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양한 콘텐츠로 이야기를 이어온 피노키오. 최근 작은 아이와 그의 이야기를 가까이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술의전당에서 피노키오를 다양한 예술적 시야로 읽어볼 수 있는 전시 My Dear 피노키오전을 기획한 것이다.

 

지난 6월 26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My Dear 피노키오전이 진행되는 중이다. 건방지게도 피노키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전시에 큰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니 나무 아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정보가 없다. 더욱이 앤서니 브라운을 비롯해 피노키오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전시라니. 동심에 푹 젖어볼 수 있는 전시, 그리고 그 전시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완성한 하나의 아뜰리에 같을 거란 기대감에 표를 예매했다.

 

 

 

피노키오에 숨은 서사와 상징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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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도슨트를 잘 듣는 편이 아니지만, 입장하자마자 운좋게 도슨트 타이밍을 잡아 설명을 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시간이 애매했다면 피노키오를 이미 알고 있다고 자만했기에 도슨트를 듣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듣다 보니 기본적인 서사와 배경조차 낯설더라. 도슨트는 30분 내외로 길지 않은데, 전반적인 흐름과 작가별 설명을 개괄적으로 들을 수 있어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도슨트 설명을 통해 피노키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다. 머릿속 어렴풋이 떠오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내 피노키오의 마지막이었던지라, 생각보다 잔혹하고 디테일한 설정에 놀랐다.

 

동화에는 다양한 설정과 해석이 담겨 있었으며 때로는 다양하게 변주되기도 했다. 초기에는 전개 도중에 피노키오가 목이 조여 죽임을 당했는데, 해피엔딩을 원했던 대중의 요구에 의해 파란 요정을 등장시켜 그를 살렸다는 것 역시 새롭게 알았다. 또한 피노키오는 귀여운 장난꾸러기가 아니라 아주 거침없는 악동이었으며, 이러한 피노키오를 말리려다가 제페토가 아동 폭행 혐의로 잡혀간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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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작가별로 구성돼 피노키오의 다양한 재해석을 살펴볼 수 있다. 디즈니만 생각하다가 다양한 작품을 접하니 눈이 트였다. 피노키오는 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작품을 읽어가다보니 그럴 만 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것, 그리고 나무 조각이 생명을 얻어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은 지금 떠올려봐도 신선하다. 판타지 같은 모험과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작은 나무 아이에 대한 동정심이 얽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전시는 회화뿐 아니라 중간중간 무성영화나 애니메이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연동화 등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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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몰랐던 피노키오의 숨은 이야기들, 그리고 작가들이 새롭게 해석한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시간. 그렇게 새롭게 마주한 피노키오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잔혹동화에 가까웠다. 애초에 피노키오의 설정도 곱씹어보면 좀 크리피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감하거나 절망적이기도 한 내용을 천진난만하게 담아낸 스토리는 아티스트들에 손에 의해 새롭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시각화됐다. 누군가는 피노키오가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귀뚜라미에게 망치를 던져 죽이는 장면을 그려내고, 또 누군가는 서민의 삶에 피노키오를 사실적으로 녹여 벨 에포크 시대의 힘겨운 이면을 묘사하기도 했다. 어떤 작가는 피노키오를 여자 아이로 설정함으로써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성별에 대한 인식 전환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보다 보니 피노키오가 왜 사람이 되어야만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너무 인간적이어서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착한 일을 하고 바르고 성실하게 지내야 사람이 된다는 교훈이라니.

 

 

 

22명의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피노키오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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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아 작가>

 

예술가의 영감은 작품을 거쳐 관람자에게로 전달된다. 전시는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부터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등 다채로운 라인업으로 끊임없이 상상 속 세계로 관람자들을 인도했다.

 

아티스트들의 표현 기법이 각기 달라 시각적으로 풍성했을 뿐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 스토리를 읽어나가는 시야도 다양해 인상깊었던 작품이 굉장히 많았다. 먼저 한국적 색채를 독특하게 표현한 민경아 작가의 작품은 전통 문화 요소인 탈과 피노키오의 상징성을 결부해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다.

 

표정과 감정을 감춰낼 수 있는 탈의 속성과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져 무언가를 숨길 수 없는 피노키오 코의 속성을 결합한 것이다. 위트 있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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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카이미 작가>

 

루카 카이미 작가의 작품은 서늘하면서도 감성적인 묘사가 두드러졌다.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모티프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피노키오를 대입해 내용을 전개했다. 캐릭터를 바다 생물로 바꿔, 기다란 나무 조각을 코에 달고 있던 피노키오는 나무 대신 뿔을 단 일각돌고래가 되었다.

 

배경이 바다가 되었기 때문인지 전반전인 톤이 차분하고 깊이 있다. 어떻게 보면 다소 음울한 기운까지 감돈다. 하지만 드넓은 바다 앞에 둥글둥글한 몸체를 한 다양한 캐릭터를 보면 차가운 수온을 생각하더래도 마음만은 이상하게 포근하고 따스해짐을 느낀다. 전체적인 비주얼도 흥미로웠지만 캐릭터 디자인이 개성 있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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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산나 작가>

 

제일 좋았던 알렉산드로 산나 작가의 피노키오. 아이들의 생명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먹먹한 고민이 담긴 작품이었다. 빛과 색이 번지듯 신비롭게 표현된 수채화로 환상적인 느낌을 높였다.

 

내용과 표현 방식은 아찔할 정도로 깔끔하다. 그의 그림책에는 글이 없었다. 하지만 담백한 선과 컬러만으로 그 무엇보다 풍부한 스토리텔링과 감성을 드러낸다. 어느날 번개를 맞아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가 피노키오와 유사한 서사를 거치며 세상을 여행하고, 한 곳에 정착해 하나의 나무가 되어 자라난다는 간결한 내용을 담았다.

 

사실 이건 피노키오의 프리퀄 스토리다. 놀랍게도 그 이후에 그 나무가 베어져 피노키오로 탄생해 원작과 이어진다는 설정을 녹여냈다고. 가슴 따듯한 상상력에 감탄했다. 간결한 선과 아름답게 번지는 컬러가 마음에 감동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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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수 작가>

 

전시 말미에 있었던 염정수 작가의 작품. 직관적으로 피노키오를 묘사한 작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의 나무 몸과 인간의 몸을 대비해서 상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인간 실존의 문제가 묵직하게 와닿았다. 인간을 구성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피노키오가 갈망했던 인간은,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삶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해체되는 인간 형태의 점토 오브제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상기시켰다. 시간에 따라 서서히 죽음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떠올리다 보면, 피노키오와 인간의 차이는 아주 미미하게 줄어들고 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진다. 결국 흐트러져 없어져 자연과 하나가 될 뿐인 인간은 나무 조각과 무엇이 다른지.

 

하지만 물이 마르고 자연스럽게 갈라져가는 점토의 형태가 무서우면서도, 고요하고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이들을 위한 전시라고 생각했지만 어른들에게 더 좋을 것 같았던 피노키오전. 어릴적에는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느껴짐에 놀라게 된 시간이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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