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영혼을 구원해주려고? -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영화]

영혼과 관계
글 입력 2020.07.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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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로이 알렉산드리아.jpg

 

 

영혼을 믿는가?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나 자신의 모든 기억과 경험, 행복과 상처, 인격의 고귀함과 저 아래의 추악함까지 모두 다 아우르는 것을 영혼이 아니라면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들은 너무 솔직하다. 그래서 유약하다. 제아무리 그 위로 켜켜이 가식을 쌓아보아도 영혼의 상처는 가릴 수가 없다. 피가 철철 흘러나와 온 몸을 적시던 굳은 살이 배겨 거칠게 튀어나오던 말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영혼의 결합을 말한다. 가까워질 때마다 서로의 영혼은 서로를 감싼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붙은 것을 떨어트리려면 찢을 수 밖에 없듯이 관계의 균열은 두 영혼을 거칠게 찢어놓고 만다. 가장 경악스럽고 야만적인 사실은 이런 일들이 단 한쪽의 동의만으로도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 부분만큼은 원시사회나 현대의 우아하고 발전된 사회나 동일하다.

 

슬프게도 이러한 상처는 또 다른 영혼에 의해서만 치료된다. 쓴맛은 단맛으로, 뜨거움은 차가움으로 대처하듯 영혼의 찢겨짐은 결국 새로운 결합에 의해서만 구원된다. 영혼의 구원이라, 그것에는 엄청난 깨달음과 벅찬 감동 따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또 확실히 일어난다.

 

 

[크기변환]오디어스 나무.jpg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이런 구원에 대한 영화이다. 1920년대 할리우드의 한 병원에서 꼬마 알렉산드리아와 부상을 입은 스턴트맨 로이는 우연히 만나게 된다.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 없던 로이에게 알렉산드리아는 매일 찾아오고 로이는 신비로운 환상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을 가진다. 가혹한 노동행위로 인해 동생을 잃은 노예, 아내를 뺏긴 인도인 등 모든 인물들은 독재자 오디어스를 향한 적개심을 품고 복수를 위해 함께 길을 떠난다.

 

영화를 조금 보다 보면 자연스레 환상세계 속 인물들이 모두 로이의 자아라는 걸 알게 된다. 할리우드의 스턴트맨으로 일하던 로이는 액션 신을 촬영하던 도중 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게 된다. 설상가상 그의 여자친구는 영화 속 남주인공과 바람이 나 헤어지게 되면서 로이의 모든 것이 망가진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렌지 나무에서 떨어져 부러진 팔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몸과 마음의 괴로움에 잠을 이루지도 깨어있지도 못하던 로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의심 없이 모르핀을 훔쳐오게 시키려는 의도로 알렉산드리아에게 환상세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모르핀을 가져다 주어야 다음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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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에게 삶의 의지 따위란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열정이라고는 단 하나, 죽음을 향한 의지였다. 그는 죽음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더 두려웠고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는 삶을 밑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실패하면서도 계속 나아갔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알렉산드리아에게 부탁한 모르핀을 한꺼번에 털어 넣음으로써 영원한 휴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죽음에게조차 거부당한 채로 깨어나게 되고 발작에 가까운 분노를 보인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본 알렉산드리아는 그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모르핀을 가져다 주기 위해 선반에 올라가다가 또다시 떨어져 크게 다치고 만다.

 

 

[크기변환]로이.jpg

 

 

의식을 되찾은 알렉산드리아 앞에는 로이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부탁에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비참했다. 한 차례 죽음을 결심했던 로이의 마음처럼 인물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주인공은 독재자 오디어스에게 반격하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며 복수를 포기한다. 어떠한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로이는 알렉산드리아가 그를 잡아주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오래된 이야기로 시작한 환상세계가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것은 어린 알렉산드리아조차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스러져가는 주인공의 의지와 삶을 말한다는 건 결국 그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복수든 뭐든 이제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 조차 지쳤다고. 상대 없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알렉산드리아는 말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니, 제발 주인공을 살려달라고. 홀로 구름 위에서 태어나 구름 위에서 떠나는 삶이 아니라면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만의 것인 사람은 없다. 내 이야기는 친구의 이야기가 되고 또 가족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에 들어선 순간 우리들은 모두 연결되어 영혼으로 이어진다.

 

결국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의 영혼을 구원해낸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벌떡 일어나 결국 독재자 오디어스에게 복수한다. 홀로 남겨져 끝났다고 여기던 그에게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다고 외쳤다. 구원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도 모르게 스며들 듯 느리고 또 꾸준하다.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구원하겠다는 오만함도 없다.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존재한다.

 

구원은 특별하지 않다. 조금 딱딱하게 바라보면 알렌산드리아는 상담자 그리고 로이는 내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내담자의 내면을 이끌어내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만들며 유대관계, 즉 라포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는 상담실 안에서의 이야기이다. 나포 따위를 모르고도 둘은 진정으로 연결되었고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주었다. 로이가 썩어있기를 바라며 잡은 동아줄이 정말 희망의 동아줄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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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뛰어난 영상미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 실제로 어떤 장면에서도 CG를 쓰지 않고 전세계 각지에서 촬영했다고 하니 감독의 영상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완성도를 알만하다. 그러나 영상미에 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나조차 그들과 연결되어 함께 슬펐고 함께 치료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입장에서 한번, 로이의 입장에서 한번, 그리고 나의 시각에서 또 한번. 과연 나도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ㅡ어쩐지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고 또 주변 이들에게 새삼스레 고마워졌다.

 

찢어진 관계도 언젠가는 구원처럼 황홀하던 때가 있었음을 떠올리면 조금은 슬픈 기분이 든다. 하지만 또다시 영혼의 구원이 다가옴을 알기에 인생은 계속되는 것 아닐까. 영화 속에서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건네던 어딘지 아름답게 느껴지던 대사를 소개하며 마무리해본다.


 

Are you trying to save my soul?

내 영혼을 구원해주려고?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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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톨렌
    • <피가 철철 흘러나와 온 몸을 적시던 굳은 살이 배겨 거칠게 튀어나오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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