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I.로 알아보는 인간의 본성 [영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오류들에 관하여
글 입력 2020.07.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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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

영화의 줄거리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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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I.를 감상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최근 방송을 통해 보았던 이세돌 바둑기사의 알파고 대국 후일담이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어 많은 육지가 물에 잠기고 로봇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한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세돌 기사가 자신의 대국을 복기하며 남긴 ‘저는 알파고의 베타버전에 승리를 얻었을 뿐, 후에 나온 알파고는 중국의 기사 커제를 이기고 바둑의 경우의 수에선 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없다고 느끼고 바둑계를 은퇴했습니다.’라는 말에서 이미 21세기에 로봇은 인간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완벽의 경지까지 닿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계와 다음 과제가 없다는 것은 곧 완벽을 의미하는데, 세상의 어떤 인간이 자신을 ‘완벽한 존재’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싶어 아찔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로 인해 이세돌 9단이 바둑계를 은퇴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자신의 패배일 뿐, 인류의 패배가 아니다.’라고 위로했던 9단의 말과는 달리 꽤 큰 무력감을 마주했으리라 여겼습니다. 기계에 의해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결론지어진 분야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세돌 9단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바둑판 앞의 삶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에게 있어 바둑을 누군가가 계속 배워나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여기게 한 것이었을까요? 또, 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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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인간 엄마 모니카에게 사랑받는 아들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아이 로봇으로, 알파고가 대국을 이기고자 했듯이 오로지 모니카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하며 사랑받는 ‘완벽한 아들’이 되고자 합니다. 그는 무조건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일은 피하고, ‘좋다.’고 표현한 모든 것을 데이터베이스에 쌓으며 학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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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종종 모니카가 아끼는 향수 한 통을 전부 몸에 부어 바르는 등의 어색하고 기이한 행동들을 보이고, 그 모습을 이질적으로 느낀 모니카는 데이비드에게 로봇 곰 인형 테디(모니카는 아들의 물건이라며 소중히 상자에 간직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아들 마틴이 싫증 나서 내버린 지 오래였던 인형)를 주며 ‘너와 대화가 잘 통할 거야.’라는 모호한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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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냉동인간 상태로 보존되어 있던 친아들 마틴이 집으로 돌아오며 데이비드에게 있어 따라잡아야 하는 ‘무언가’를 가진 존재로 인식됩니다. 마틴의 모든 행동을 무리해서 따라하던 데이비드는 시금치를 먹다가 하드웨어가 고장 나게 되고, 기계 부품의 모습을 드러내고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서 가족들의 마음에서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그 이후 마틴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에 휘말린 데이비드가 마틴을 위험에 빠뜨린 사건으로 인해 데이비드는 결국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숲속에 버려집니다. 그 암담한 상황에서도 데이비드는 여전히 시스템이 준 목표를 달성하고자 합니다. 엄마가 읽어준 동화책 속 나무 인형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푸른 요정을 만나면 자신도 마틴을 ‘진짜’로 존재하게 하는 ‘무언가’를 통해 사람이 되어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데이비드는 놀라울 정도로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 '기계처럼' 매진하는데, 이것이 그를 만들고 수많은 'David' 로봇 모델을 복제했던 하비 박사에게는 최초의 ‘사람 같은’ 로봇의 발견이자 ‘처음으로 명령 없이 사랑에 의해 생긴 자아 의지로 꿈을 가진 로봇’의 등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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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부분은 데이비드의 조력자인 조에서 하비 박사가 언급한 ‘자아 의지’를 미리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는 상대와의 완벽한 잠자리를 통해 인간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된 로봇으로, 모든 사고와 행동의 메커니즘이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맨해튼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는 ‘I am, I was.’라는 대사를 남기며 자신의 존재를 데이비드가 기억해주길 바라고, 자신 스스로가 최선을 다했음을 증언합니다. 조가 누명을 쓰지 않고자 스스로 인식 명찰을 떼어 존재를 지운 로봇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는 분명 로봇으로 설계된 조의 시스템에 불필요한 최초의 오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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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에서 기계가 인간의 자아와 같은 목표를 가지는 모습이 엿보였다면, 데이비드에게는 더 나아가 시련과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드러납니다. 2천 년의 시간이 지나 인간이 모두 멸종했을 때, 데이비드는 신인류의 형태를 띤 존재를 통해 자신의 소원을 이룹니다.

 

조가 찾아 헤매던 푸른 요정은 허상의 형상으로 사실 폐 놀이공원의 낡은 조형물에 불과했고, 자신이 그토록 재회하고 싶어 하던 엄마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음에도 데이비드에게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남아있었습니다. 시스템상으로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목표였음에도 여전히 이루고 싶어 하는 오류가 생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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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는 고집처럼 단 하루라도 좋으니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소원하며, 바라던 하루 동안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기억했던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가득 해주며 처음으로 생일을 맞이함과 동시에 영원한 잠에 빠짐으로써 꿈을 이룹니다.

 

*

 

기계는 크게 인간의 정신의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와 육체의 역할을 하는 하드웨어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정해진 임무 완수의 목표를 위해 시스템 체계를 갖고 설계된 메커니즘에 따라서만 움직입니다.

 

이 메커니즘에서 벗어난 모든 경우는 명백한 오류로 인식하며 반복하지 않도록 학습합니다. 공통으로 사람에게도 각각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역할을 하는 정신과 육체가 있지만, 마음이라는 제3의 기능은 계속해서 우리 안의 오류를 만들어 냅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공감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고도 그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보다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칭합니다.

 

이 수많은 변수로 이루어진 오류가 데이비드를 인간적으로 느끼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목표 달성과 동시에 수행의 의미를 상실한 알파고와 같은 보통의 기계엔 없고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 깊숙이에 있는 자아 의지와 꿈을 만들어 낸 원동력.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감정은 모두 이 예측할 수 없는 오류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심이나, 철학, 신념, 자아의식이 될 수도 있으며, 데이비드처럼 자아에 의한 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로 단언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이 복합적이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오류’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데이비드가 푸른 요정을 찾아 받고 싶어 했던 '무언가'는 오류에 의해 데이비드 안에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시스템으로 설계된 로봇인 데이비드에게서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는 이유는 그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오류는 다양한 것들을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기적이고 부족한 면모가 있다가도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하게 해주는 힘, 불가능해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목표에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하게 하는 힘. 이세돌 기사가 이미 기계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었다고 평가된 분야를 또 다른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었던 힘. 결국, 완벽한 아들이 되겠다는 목표도, 푸른 요정을 만나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도 이루지 못한 데이비드가 누구보다 행복하고 편안하게 영원한 꿈에 빠질 수 있게 했던 힘. 기계는 피해가고자 하는 오류를 굳이, 또 기꺼이 삶에 끌어당기고자 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것. 아마 기계의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이 재미있는 ‘오류’들이 바로 인간 본성일 것입니다.

 

영화에서 데이비드를 만든 인물로 등장하는 하비 교수는 “인간의 약점 중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희망을 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시스템을 가진 것은 분명한 인간만의 오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르며 데이비드와 같이 노력을 통해 영원히 이룰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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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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