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순간에 맞는 기록 [사람]

글 입력 2020.07.0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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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네 나이는 돌아오지 않아.

그 나이의 감성을 꼭 적어놓으렴.

  

 

어렸을 때부터 현재 나이의 감성을 소중히 하라는 말이 항상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기록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이라는 것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절대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나이만의 감성이 가장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말했고 그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매일 일기를 쓰진 않았지만 중요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어떤 종이에든 기록하려고 했다.

 

 

 

그 나이의, 그 순간만의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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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쓰던 일기장이 있었다. 매일 쓰던 일기는 아니었기에 일기장 안의 시간 간격은 일정하지 않았고 몇 년 정도의 공백이 있다. 결론이 없더라도 사유하고 공상하는 것이 멋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꼭 특별한 순간만 기록하려고 했다.

 

여행을 가거나 공연, 전시 등 문화를 즐길 때마다 이 일기장에 당시의 감정이나 생각을 적었다. 혹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감정이 들었을 때, 생각을 모두 적으려고 할 때 일부러 우울함에 빠져있으려고도 했다.

 

매 문화 콘텐츠마다 감명 깊게 보지 않았는데 매번 그렇게 쓰려고 하니 힘들기도 했다. 중간에 포기한 흔적도 있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굳이 그렇게 드라마틱한 순간만 내 인생을 만들고 있던 것은 아닌데.

 

당시 내 고민이나 우울함을 엿볼 수 있었지만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볼 수 없었다. 특별한 순간에만, 내가 힘들 때만 일기를 적었다 보니 삶은 기승전결 중 항상 승/전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 폭풍 같은 하루만 보냈던 건가 싶을 정도로. 사실 그랬던 날보다 안 그랬던 날이 더 많았을 텐데 말이다.

 

예전에는 일기는 무조건 손글씨로, 연필의 사각사각한 소리와 함께 노트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나이만의 감정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순간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때만의 감성은 더는 가질 수 없기에 아름답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매번 새로운 것만 쓴 것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별일 없는 하루도 아름다운데 항상 특별함에만 매달렸었다.

 

 

 

일상 그 자체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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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기록 정리를 참 잘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기장, 어렸을 적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엄마의 삶은 한 박스에 잘 담겨있다. 시대는 달랐지만, 특유의 나이가 보여주는 감성은 세대 불문 똑같았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엄마만의 생각,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공감하고 배울 수 있었다. 이 나이 때의 엄마는 이것을 고민하고 이렇게 헤쳐나갔구나.

 

엄마 또한 매일 일기를 쓴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정한 주기 동안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조차 적었다. 고민만 적은 것이 아니라 전 과정을 적었다. 그 일기장이 몇십 년의 세월을 걸쳐 위로되기도 했다. 엄마의 일기장은 아름다운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상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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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기를 쓰는 시간과 형식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언제나 새벽, 무조건 아날로그 감성.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순간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아날로그 대신 디지털을 쓰기로 했다. 이제는 생각나는 대로 핸드폰 메모장에 일기를 쓴다. 물론 감성은 손글씨가 더욱 담겨있다. 같은 고민이더라도 손글씨에는 내 인생이 묻어있다. 그러나 이제 어떤 감성이든 매일의 내가, 꼭 특별한 순간만을 생각하고 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

 

 

 

영상, 숨결 하나하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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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다 더 순간을 남기고 싶을 때 결국 남는 것은 영상이기도 했다.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 내 눈은 어디로 따라갔는지 잘 보여주는 것은 영상이었다. 일상에서 친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그때 모두의 표정은 어땠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현장성이 주는 위로가 영상에 담겨있었다.

 

아날로그적인 기록만이 가장 남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기록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엔 특별한 나이, 특별한 순간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일상 그 자체를 아름답다고 여긴다.

 

어떤 것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하는 것이, 작게라도 남기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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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현재 내가 쓰는 방식으로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는 어떻게 인생을 적어나가고 있을까?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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