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늘 누군가의 땅이었다. 연극 '팜(Farm)'

글 입력 2020.06.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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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나는 늘 누군가의 땅이었다.

팜(Farm)


"나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났어요."

 

 

팜 공연 사진(15).jpg

 

 

 

나는 늘 누군가의 땅이었다.


 

팜 인간인 오렌지, 오렌지의 설정은 SF 영화에서 등장했던 어느 캐릭터보다 안타까움이 진했다. 팜들은 어느 존재들과도 유전적으로 결합이 가능하여 그 몸 안에 키워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장기나 어쩌면 자신의 죽은 개까지 팜의 몸을 빌려 숨을 붙인다.

 

팜인 오렌지는 자신의 몸에 수많은 사람들의 장기들, 또는 팔, 다리를 붙였다 뗐다 하며 그들에게 자신을 희생한다. 팜 인간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가 연구 목적 자체이며, 클라이언트들에게는 희망이며, 동시에 그들은 그들 자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팜 인간 '오렌지'는 그러한 자신의 삶에 어떠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할 뿐이다. 그러한 희생, 이는 그가 유전자 조작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자였던 오렌지의 아버지는 오렌지의 유전자를 조작했다. 그래서 팜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오렌지의 삶은 설계된 삶이다. SF 장르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인권은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연구들의 존재에 우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본 연극에서 느낄 수 있다.

 

오렌지는 암을 선고받으면서도 클라이언트가 한 명뿐이라 다행이라며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웃는다. 설계된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희망이고, 특별한 존재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도구로 사용된다. 우리의 발전된 기술은 희망이 될 수 있으나 그 기술의 이면에 발생될 지나친 도구화에 대한 경계를 멈춰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본 연극은 SF 장르의 옷을 입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기술의 이면 속 오렌지는 부모에게 설계된 자녀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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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에게 설계되었다.


 

왜 팜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없었을까. 팜 인간인 오렌지는 기술의 상징임과 동시에 가족들에 의해 설계된 자녀를 상징한다. 연극 내에서는 유전자 조작이라고 표현되지만, 이러한 유전자 조작은 비유일 뿐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극의 첫 장면은 신체동작으로 이루어지는데, 오렌지는 무대를 걷고 그 오렌지의 주위를 다른 인물들이 맴돈다. 마치 다른 인물들이 오렌지를 도자기 빚듯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은 오렌지의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준비하며 다투는 장면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오렌지가 설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렌지는 그렇게 부모가 이런 모습, 이렇게 행동하고, 이러한 알레르기가 없게 설계되었다.

 

이 과정은 어쩌면 기술로 일어나던 현상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자녀들이 부모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오롯이 지킬 수 없었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거나, 부모가 바라는 궤도에서 이탈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했을지 모른다. 우리의 오렌지는 원하는 방향으로 자랐다.

 

부모에 의해 설계된 오렌지의 모습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있다. 가족이라는 사회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키며 긍정적으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사회 안에서 틀에 맞춰서 성장하기도 한다. 오렌지는 그렇게 성장하여 자신의 욕구를 알지 못한 채 자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렌지가 마담의 치료를 받으며 자신에게 없던 성욕을 찾기 위해 부모와의 관계로 회귀하는 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지 모른다. 오렌지는 계속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맸으니 말이다. 현실에서도 누군가에게 설계되어 자기 자신의 욕구를 알지 못하고 사는 삶.

 

팜 인간 오렌지는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기술의 발전보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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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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