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의 디아스포라, 패딩턴

<패딩턴> (Paddington)
글 입력 2020.06.2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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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페루의 작은 숲에 말하는 꼬마 곰이 살고 있다. 삼촌과 숙모와 함께 살던 꼬마 곰은 지진으로 삼촌과 집을 잃고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난다. ‘목에 푯말을 걸고 지하철역에 있으면 자신을 돌봐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만 믿고 무작정 런던으로 향한 꼬마 곰에게, 사람들은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이 작은 곰은 밖이 어둑해질 때까지, "PLEASE LOOK AFTER THIS BEAR. THANK YOU"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우두커니 서 있다. 다행히 브라운 가족이 꼬마 곰을 발견하고, ‘패딩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그를 집으로 데려간다. 패딩턴은 브라운 가족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가족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호시탐탐 패딩턴을 노리는 박제사 밀리센트와 맞선다. 결국 패딩턴은 브라운가(家)와 한 가족이 된다. 그로부터 3년 후, 패딩턴은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로 골동품 가게의 팝업북을 사기 위해 차곡차곡 돈을 모은다. 하지만 골동품 가게에서 피닉스가 팝업북을 훔치고, 패딩턴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패딩턴은 누명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감방 동료들과 탈옥을 감행하고, 브라운 가족과 패딩턴은 진짜 범인을 밝혀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패딩턴은 루시 숙모와 재회해 함께 런던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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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런던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패딩턴은 이방인이자 마이너리티(minority)다. ‘곰’인 ‘패딩턴’이 런던이라는 주류 세계에 편입되는 방식은 ‘언어’다. 그를 수식하는 ‘말하는 곰’의 전제는 ‘곰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패딩턴은 ‘우리(주류)’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우리의 언어로 말하는 존재다. 패딩턴은 루시와 패스투조 밑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영어(언어)와 런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다. 루시와 패스투조 또한 런던 탐험가에 의해 ‘언어’, 혹은 ‘문명’을 습득한다. <패딩턴>에서 곰들은 언어에 포획되는 존재이자 이름 지어지는 존재다. 탐험가는 머나먼 페루의 숲에서 만난 곰들에게 ‘루시’와 ‘패스투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언어를 전해준다. 패딩턴은 삼촌과 숙모에게 자연스럽게 주류 언어를 배우고, 메리에게 ‘패딩턴’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경계선 밖의 존재는 언어를 통해 세계에 편입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은 아니다. 낯선 풍경 속에서 패딩턴이 치는 사고와 실수, 모든 행동들은 그가 ‘곰’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밀리센트는 희귀한 존재인 패딩턴을 박제시키려 하고, 커리는 패딩턴을 혐오한다. 심지어 헨리 또한 처음에는 패딩턴을 위험요소로 간주한다. 패딩턴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기도 한다. 이방인으로 간주되는 그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주류언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수자의 언어와 목소리는 통용되지 않는다. 마이너리티가 무언가를 말할 때, 주류적 가치에 선 이들은 낯선 언어의 출현에 놀랄 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소수자들이 지배언어로 말하길 요구한다. <패딩턴>에서 “What your name? Do bears even have names?”라고 묻는 헨리에게 패딩턴은 곰의 언어로 답한다. 하지만 헨리는 ‘곰’ 언어라는 낯선 언어의 출현에 놀랄 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숙하게 말을 흉내 내보지만 이는 왜곡되어 무례한 표현이 될 뿐이다. 이후 패딩턴은 자신의 이름은 발음하기 힘들 거라고 말하며, ‘패딩턴’이라는 이름을 기꺼이 받는다.

 

패딩턴이 ‘곰’이라는 존재로 표현되고, 동시에 런던에서 누군가의 숭배(박제대상) 혹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것, 패딩턴이 처하는 온갖 부조리한 상황들은 현실과 맞닿아있다. 주류의 기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소수자들은 쉽게 대상화되고, 배제되고 차별받는다. 존재하면서도 비非존재자처럼 타자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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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패딩턴>은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 없는 세상을 동화적으로 예찬한다. 패딩턴이 만들어가는 가능성은 놀랍다. 머나먼 페루에서부터, 런던까지 패딩턴과 함께하는 마말레이드는 화합을 만드는 행복이자 변화의 매개다. <패딩턴1>은 패딩턴을 포함한 브라운 가족이 다 함께 마말레이드 요리를 하며 마무리된다. <패딩턴2>에서는 교도소 주방장 너클스가 마말레이드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식당에서 너클스의 폭정 아래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던 이들이 목소리를 낸다. 음식이 다채로워지고 교도소 전체가 변한다.

 

이방인 패딩턴이 자신만의 것으로 기존의 세계에 내는 균열은 긍정적인 변화를 선물한다. 마치 ‘마법’처럼 말이다. 이방인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가져온 것,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근원적인 가치, 이는 숨기거나 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회색의 칙칙한 죄수복만 모아둔 세탁기에 잘못 들어간 한 짝의 빨간 양말을 보고 패딩턴은 말한다. "Oh, it's only one red sock. What's the worst that can happen?" 실수로 들어간 빨간 양말은 죄수복을 핑크빛으로 물들인다. 핑크 죄수복을 입은 수감자들은 처음에는 패딩턴을 험악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결국 그들은 변화한다. 교도소에는 꽃이 만개하고, 수감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울리고, 벽에는 “PRISON SWEET PRISON"이라는 현수막이 걸린다. 빨간 양말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최고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회색빛 죄수복 더미에 ‘잘못’ 들어간 것 같은 빨간 양말은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미세한 빨간빛은 회색빛과 섞여 새로운 분홍빛을 만들어낸다. 패딩턴이 가지고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고유한 것’은 교도소에, 브라운 가(家)에, 런던에, 미세한 균열과 소음을 낸다. 기존의 주류 세계 안에서 약동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닮은 구석 하나 없지만, 패딩턴은 그 자체로 런던의 브라운 가족과 ‘한 가족’이 된다. 패딩턴은 이에 대해 겉모습은 다르지만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긍정한다. “Although I don't look like anyone else, I really do feel at home. I will never be like other people, but that's alright. Because I am a bear. A bear called Paddington." <패딩턴>은 이처럼 머나먼 페루를 떠나 온 꼬마 곰 자체를 인정한다. 패딩턴을 바라보는 런던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런던을 바라보는 패딩턴의 시선을 조명한다.

 

낯선 세계에서 패딩턴은 조금은 서툴고 미숙하지만 ‘곰’ 혹은 ‘자신’만이 가진 것들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곰’인 ‘자신’을 내보이며 살아간다. 영화는 이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아끼지 않는다. 패딩턴처럼 자신의 의지로, 혹은 강제로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사람들, 그리고 희망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이 땅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 낯선 땅에서 홀로 길을 잃어 불안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주류의 기준에서 벗어난 소수자들, 다양한 형태의 모든 디아스포라(Diaspora)가 이 세상에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자신을 외부인, 이방인처럼 느낄 때가 있다. 이 영화는 세상 모든 디아스포라를 위한 마법 같은 선물이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꿈꾼다. '패딩턴'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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