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범죄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도서]

글 입력 2020.06.2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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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출간된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필자가 처음 읽어 본 스페인 소설이었다. 약 1년 전 읽었던 이 책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n번방 사건이 가시화된 직후였다. 이 책의 주인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인공 파스쿠알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뒤 결국 사형을 선고받아 교수형을 앞둔 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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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까밀로 호세 셀라의 첫 작품으로 내전이 발생할 무렵의 황폐해진 스페인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다호스 지방 알멘드랄레호의 변두리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불행하고 야만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인물이다. 밀수꾼이었던 파스쿠알의 아버지는 파스쿠알과 그의 어머니에게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그의 어머니는 글을 모르는 술주정뱅이이며, 자식의 사고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는 비정한 인물이다. 이렇듯 불행한 가정에서 천한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 파스쿠알이 범죄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내용이 소설의 주를 이룬다.

 

 

 

본능과 환경


 

이 책은 파스쿠알이라는 인물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다. 첫 번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가정환경 때문에 그가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악한 아버지와 악한 어머니, 자신을 도발하는 아내의 정부 등 그는 자신이 폭력을 저지를 수밖에 없게 굴었던 이들을 떠올린다. 그는 정말로 선하게 살고 싶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작가 역시 작품 안에서 파스쿠알을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악의로 가득 찬 인물로만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의 아내였던 롤라가 말에 차인 노파를 보고 웃었을 때, 그는 다른 이의 불행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 원고를 쓰고 있는 말년의 파스쿠알은 자신의 죄악을 진심으로 참회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작품 전체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파스쿠알의 일종의 자기변호이기는 하지만, 파스쿠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선택한 표현이나 방식은 흉악한 범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선하게 살 수 있었던 파스쿠알을 폭력적으로 만든 것이 오로지 그의 가정환경, 나아가서는 황폐해진 스페인 사회임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 쓰인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파스쿠알이 어느 정도 악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분명히 한다. 2장에서 그는 자신의 부모가 무지하고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며, 자신은 불행하게도 부모의 악하고 비이성적인 특징을 모두 물려받았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작품은 파스쿠알이 잔혹하게 그의 어머니와 아내의 정부를 죽이게 된 것은 그가 처했던 주변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내면에 가지고 있던 본능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야만적이고 악으로 찬 환경에 던져진 파스쿠알이 결과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은 그가 처한 환경, 또는 그의 타고난 본성 중 한 가지 요인 때문이 아니다. 본능과 환경이라는 두 요소가 모두 필연적으로 그를 범죄자로 만든 것이고, 그 자신이 내재한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한 것은 사회가 그를 통제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의 탓인가


 

파스쿠알은 책에서 여러 번 말한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자신을 악함 앞에 내던진 사회라고 말이다. 파스쿠알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야만적인 사회의 도발에 저항할 수 있는 고귀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뿐이다. 연쇄적인 살인 행위는 그가 교도소에 계속 수감되어 있었다면 멈추었을 것이다. 파스쿠알은 무지한 부모에게서 태어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폭력을 멈출 만한 장치가 없는 야만적 사회에 던져지기로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를 범죄로 이끈 것은 폭력을 용인하는 주변 환경이었다.

 

책에는 교도소에서 파스쿠알의 최후를 지켜본 전속 사제와 치안대 이등병의 편지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파스쿠알은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천박하게 죽었다. 결국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파스쿠알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저지른 일에 대한 형벌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속되게 죽었다는 것은 인간 내면에 끝까지 변화할 수 없는 본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파스쿠알이 보여주는 비이성, 폭력성은 인류가 벗어날 수 없는 보편이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파스쿠알이 대단한 범죄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나, 범죄의 결과를 보고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또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파스쿠알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저자는 파스쿠알의 인생을 통해 범죄란 인간 내면에 보편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비이성과 폭력성의 결과이며, 이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가 야만이라고 비판하는듯하다.


 

 

마무리


 

책의 첫 부분에 파스쿠알의 원고를 발견한 옮긴 이의 글이 나온다. 그는 파스쿠알의 행위와 그의 최후가 본보기로 삼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원고를 공개한다고 밝힌다. 저자는 독자들이 파스쿠알의 삶을 보고 이를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표면적으로 이는 그의 범죄행위 그 자체를 두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파스쿠알의 가족과 그의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는 파스쿠알의 범죄가 그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임을 강조하고 있다. 무지한 부모에게서 악에 취약하게 태어난 것도, 두 번이나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모범수로 사회에 다시 나오게 된 것도 그의 탓이 아니다. 그는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파스쿠알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에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굴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저자가 말하는 ‘반면교사로 삼아 하지 말아야 할 모습’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범죄자를 양산하는 것은 폭력과 야만을 부추기고 묵인하는 사회이고,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이란 그런 사회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악에 물드는 내면을 되돌아보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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