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 예능 마음에 안들죠?

이유있는 예능 보이콧
글 입력 2020.06.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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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 예능 마음에 안들죠?


 

그래. 그렇다. 마음에 안든다. 여자와 남자가 프로그램을 핑계로 만나는 것은 물론이요, 나이 차이며, 직업 차이며,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들끓는 마음을 붙잡고 계속 보려고 노력할 때쯤이면, 여지없이 그들의 ‘생태계’를 흐려놓는 메기까지 등장하고야 만다. 아, 정녕 우리나라 예능의 현주소가 이것이란 말인가. 슬퍼지는 마음으로 시청률을 검색해보고는 더 절망스러워진다. 시청률 1.9%. 아직도 구시대적인 남녀 문법이 통한다는 현실이 비통해지기까지 한다. 마침 그때 도착한 카톡에는 “야, 이번 하트시그널 봤냐? 대박 대박”이라는 메시지가 빛나고 있다.

 


핫시 수정.JPG

 

 

2년쯤 전에, <하트시그널 2>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온라인 세상이건 오프라인 세상이건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번 여자들은 어땠고, 남자들은 어땠다”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인기의 맛을 봐서였을까. 하트시그널은 봄과 함께 시즌 3로 다시 찾아왔다.

 

인터넷은 떠들썩했다. 이번 하트시그널 출연진 중 과거에 논란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출연진을 잘 뽑았어야 했다’라며, ‘이번 핫시(하트시그널)은 못 보겠다’라고 얘기했다. 나는 외려 되묻고 싶었다. “그럼, 출연진 논란이 없었다면, ‘괜찮은’ 프로야?”라고.

 

 

 

나는 안 괜찮아.


 

나는 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늘 불편함을 느꼈다. 비단 하트시그널 뿐만의 일은 아니었다. 비슷한 종류인 <연애의 맛>을 볼 때도, <로맨스 패키지>를 볼 때도 마음 편하게 볼 수 없었다. 직업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모습도, 남녀의 나이 차이도, 직업 차이도,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것 같았다. 한 번씩 ‘아 오늘은 좀 재미있었다. 근데 가만, 이번에는 남자가 좀 아까운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늘 함께 찾아오는 속물적인 내 모습은 나 자신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내 시청목록에서 연애 프로그램은 늘 제외되었다.

 

어쩌면 하트시그널이 내 트리거를 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예능에서 흔히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가 원래 마음에 안 들었는데, 소개팅 프로그램에서는 성별 구분이 확연하게 보이니까. 그래서 더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성비 그래프.JPG

 

 

예능에서 여성 캐릭터는 한정적인 공간만을 차지한다. 프로그램의 메인이 아닌 보조로, 또 보조 출연진의 초대 손님으로 출연할 뿐이다. 실제 언론진흥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예능 및 오락프로그램 출연자 성비는 12~25%대에 머물러 있으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32%대는 ‘보조 출연자의 초대 손님’으로 출연할 뿐이다. 여자 게스트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 역시 전체의 20~30%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여자 게스트들은 수동적인 이미지로 한계가 늘 존재했다. 박미선은 한 인터뷰에서 “예전 여성 개그우먼들은 남편과 시댁을 험담해야지만 화제를 얻는다.”라고 얘기했다. 여성 게스트들의 대표적인 소비 행태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처럼, 예능에서 여성은 주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캐릭터가 아닌, 남자 캐릭터들의 들러리로 한정되어 소비되고 있었다.

 

 

 

숙이점(특이점)의 등장


 

그러던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김숙이다. 김숙은 예능 <최고의 사랑>에서 ‘가모(母)장제’의 탄생과 더불어 여자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쉈다. 그는 “집안일 하는 조신한 남자가 이상형”임을 밝혔다. 또한, 남녀 성별이 바뀐 장면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에게 쾌감과 신선함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 핸드폰에서 김숙의 밈(meme)들이 돌아다녔고, 예능에서 여성도 능동적인 캐릭터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후 <대화의 희열>에서 김중혁 작가는 김숙의 행보를 보고, “숙이점이 온 것 같다. 특이점을 빗댄 말이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신선함으로, 두 번째로는 재미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김숙이 쏘아올린 공은 작았지만, 그 영향력은 컸다.

 


김숙.JPG

 

 

김숙의 ‘숙크러쉬’는 그 전부터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되었던 ‘페미니즘’을 퍼트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5년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은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었다. 혹자는 부정적으로, 또 혹자는 긍정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사람들은 편을 나눠 싸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페미니즘’이 들어가면 사람들의 화력이 붙는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은 상업화가 되었고, 그와 함께 송은희를 주축으로 한 개그우먼들의 활약이 빛을 받았다. 팟 캐스트에서 활동하던<송은희 김숙의 비밀보장>, 개그우먼 5명이 합심한 ‘셀럽 파이브’, 이영자의 ‘먹장군’이미지와 방송계에서 활약했던 박나래와 장도연의 노력들이 모여 출연진들이 모두 여자로 구성된 예능을 탄생시켰고, 여성 예능인들의 파이를 넓혀갔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


 

10초 안에 남자 예능인을 한 번 생각해보자.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김종민, 조세호, 유병재, 양세찬, 양세형….’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자, 그럼 반대로 여자 예능인을 생각해보자. ‘박나래, 장도연, 이영자, 송은희, 김숙, 김신영….’ 손가락에 꼽히지 않는가? 물론 남자와 여자 예능인들이 비슷하게 생각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이번에는 남자들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을 생각해보자. ‘무한도전, 대탈출, 유퀴즈, 1박2일. 집사부일체….’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예능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여자들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은 어떨까. ‘밥블레스유, 캠핑클럽, 삼시세끼 산촌편….’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프로그램은 10초 안에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작년 예능에서의 여성 캐릭터들은 대활약했다. 여자 아이돌들의 힘을 보여준 <퀸덤>부터, 무해한 예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캠핑클럽>과 <삼시세끼 산촌편>, 그리고 탄탄한 시청 층을 보유한 <밥블레스유>까지. ‘여자 예능’이라서 재미없다가 아닌, ‘여자 예능’이라서 재미있다는 새로운 문법이 세워졌다. 또한, 지난해 MBC 연예 대상을 거머쥔 박나래와 베스트 엔터테인먼트상을 수상한 장도연, 백상 예술 대상에서 TV 예능 상을 받은 송은희 등은 지난해에 여성 예능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밥블유.JPG

 

 

최근 SBS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되었다. 바로 박나래와 장도연이 투톱인 데이트 컨설팅 예능 프로인 <박장데소>이다. 혹자는 두 사람이 단독진행한다는 소식에 호평을 보냈지만, 혹자는 혹평을 보냈다. 또 늘 보던 박나래와 장도연이라며 말이다. 개그우먼들이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니 눈에 많이 튀었나 보다. 하지만 아직 여성 예능은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여성 예능인들이 설 자리는 좁으며, 그들에게 씌워있는 ‘성 역할’이라는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장데소> 역시 ‘연애’를 다뤘다는 점과, 패널들 중 과반수가 남자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이전의 예능 문법 중 평등하지 못한 것은 없어져야 한다. 어디론가 기울어진 문법은 개정되어야 마땅하며,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되는 경우는 없어져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재미’로 채우기 위해 예능 프로를 튼다. 그 재미가 성별에 따라 생산의 퀄리티가 달라진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후천적인 노력으로 발전된다는 말이 더 맞지 아니한가.

 

기울어진 문법들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청 보이콧이 효과적이다. 방송계도 자본주의 체제를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성 문법 중 고쳐야 하는 부분을 수정한 예능 프로를 시청하는 것이다. 그런 프로가 화제를 모을수록 예능 판에 큰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 이런 이유를 바탕으로, 나는 하트시그널을 볼 수 없다. 아니, 보지 않는다. 우리의 예능 문법은 고쳐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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