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각성시키는 것 [사람]

무해한 각성제
글 입력 2020.06.2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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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느낀 것이, 지나간 고통은 그 깊이에 상관없이 지나가게 되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새롭게 찾아온 것이 역대 최고의 고통인 것처럼 괴로워한다. 그것이 설령 정반대의 고통일지라도.

 

올해가 시작되고 몇 달을 불면증으로 앓았고, 증상이 잠깐 수그러들게 된 것도 한 달도 채 안됐다. 그렇게 잠의 부족에 무릎을 꿇던 내가 이제는 잠의 과잉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잠을 푹 잤으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며 간절히 빌던 게 엊그제인데 빌던 손가락이 머쓱할 정도로 배은망덕하다.

 

해가 갈수록 인생이란 그저 모든 것에 중용을 찾아가는 연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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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취하면 현실감각을 잊어버리게 돼서 문제다. 캘린더에 해야 할 일이 빽빽이 적혀있는데 눈을 감은 채로 무시해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데 흘러간다고 또 멍하니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게 바로 21세기 사회 아니겠는가. 자연스럽게 잠을 깨우는 것은 진작 포기했고, 매일 잠에서 구출해내고 있다.

 

다소 메모장스러운 글이 될까 걱정되면서도 궁금하니까, 과연 무엇이 나를 각성시키는지에 대해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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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의 아이스 커피. 이번 글을 쓰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번 주 기고문의 소재를 아직 생각하지 못했는데 벌써 마감일이 다가왔다. 메모장, 일기장, 블로그, 독서 기록문에 이어 이전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글감리스트를 보더라도 수확이 없었다. 그나마 끌리는 것들도 기껏해야 반 페이지 분량의 몫들이었다. 소재가 부족할 땐 아트인사이트 글들을 읽고 정하기도 해 몇십 페이지를 읽었건만, 그 상태 그대로 2시간이 흘러가던 와중이었다.

 

차디찬 커피를 반 넘게 모두 들이부었다. 글자 그대로 완벽한 ‘각성 상태’에 이르렀다. 카페인의 대명사인 커피를 마시고 잠에서 깬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하루에 커피를 두세 잔 마시는 게 익숙해진 요즘, 잠에서 번뜩 깨는 느낌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카페 한 편에 자리를 차지했는데도 몸은 여전히 수면상태였다. 오히려 커피를 반 넘게 마신 그때 절정으로 졸렸다. 어쩔 때는 쉽게 카페인에 해롱해롱 되면서 마실수록 졸음이 쏟아지는 건 또 뭘까. 그래서 나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건 단순히 커피 한잔이 아니다. 운 좋은 어느 순간에 마시는 아이스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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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불안. 외부적으로 나를 깨우는 데 힘쓰는 것이 흔하디 흔한 커피라면, 내부적 수단 또한 존재한다. 마음속 깊이 내재한 암흑을 살짝 건드려준다. 여기서 힘의 세기가 중요한데, 매번 조절이 힘들어 아주 잠깐이라도 암흑덩어리에 삼켜지고 나온다.

 

아무튼 그 암흑 덩어리에 무엇이 있길래 번쩍 정신을 차리게 하는가 궁금하기도 하겠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었다. 존립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생존하여 자립함’의 뜻이 나오는데, 불면과 단짝이었던 몇달 전 두 단계에 대한 불안이 가득 찼으니 효과는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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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다른 병명으로 아파 약을 달고 살던 2월과 3월, 하필이면 유행하던 코로나 바이러스와 시기가 겹쳤고 매일 증상을 검색하며 살았다. 복용하던 약의 부작용으로 피부습진까지 생기며 떨어진 면역력을 증명받을 때, 지금 당장, 이 현재를 생존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과로 미뤄둔 운동도 조금씩 다시, 다 떨어진 영양제도 다시,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 놓았던 습관들과 함께 자각했다. 온통 나를 괴롭혔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지금의 내가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다행히도 지금 나는 건강을 꽤 회복해 이렇게 지나간 이야기를 담고, 다가오는 미래를 다시금 대비해간다. ‘그냥’이라는 단순한 이유로선 정형화된 스텝을 밟아가는데 설득되지 못하는 내 성향상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크게 참고할 것도, 기죽을 것도 없다만 자신만의 하나뿐인 야망이 게으른 몸뚱어리를 끌고 가지 못할 때가 있다.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는 걸 알기에 늘어지는 편이지만, 조금이라도 그 상태를 재빨리 빠져나와야 할 때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상 그럴 ‘때’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저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럴 땐 어느 정도의 비교를 통해 열망을 되찾아본다.

 

가끔은 다양한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과의 근황 토크이기도 했고, 가끔은 SNS이기도, 또 가끔은 내 지인인 유투버이기도 했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열심히 사는 것만 같을 때, 불안의 깊이가 너무 깊지만 않다면 게으름의 수중 속에서 쭈글쭈글 된 채로 꺼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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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라는 메시지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는 나날이다. 눈은 떴지만 몸은 여전히 침대에, 몸을 일으켜 장소를 옮길 때조차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연스러움을 가장 추구하는 편인데,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조치가 필요해진 요즘이다.


*

 

메모장과 같은 글이 남겨질까 염려했던 초반과 달리 일기장처럼 남아버린 글 같다. 게다가 ‘잠’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서인지, 의식과 무의식을 무한대로 넘나드는 흐름이라 생소하면서도 혼란스럽다. ‘그래서 대체 뭘 말하고 싶다고?’ 잠에 빠지게 되면 현실과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런 무자비한 글을 쓰게 된다.

 

이 글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외면하고 싶지만, 출력 버튼은 또 이를 각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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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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