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내 옆의, 그 건너편의 은희에게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이야기
글 입력 2020.06.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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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내 옆의, 그 건너편의 은희에게_영화<벌새> 리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고 하지만, 나는 언제고 다시 떠올리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기억들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영화 <벌새>를 마주할 때, 나를 옭아매던 그 기억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영화는 대치동에 사는 중학생 은희(박시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빽빽한 복도식 아파트를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되는데, 세상에 은희와 같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벌새가 얼마나 일반적인 이야기인지 영화의 첫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칙칙하고 빛바랜 듯한 톤을 유지함으로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90년대 중반이라는 사실을 끝날 때까지 잊지 않게 한다. 

 

은희는 아파트 상가에서 방앗간을 하시는 부모님의 막내딸이다. 가족들에게 윽박지르고 밥상 앞에서 설교하는 아빠(정인기)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하는 건지 의심이 가게 행동하는 엄마(이승연). 아빠의 행동은 의문을 남기고 엄마의 눈빛 하나에도 상처받는다. 언니 수희(박수연)는 아빠가 잠든 사이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고,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고등학생이다. 오빠 대훈(손상연)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에 부모님의 열렬한 지지를 받지만, 은희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우리 집 같은 콩가루가 있을까?” 하지만 이 가족은 늘 다함께 모여 식사한다. 뿐만 아니라 방앗간 일이 바쁠 때면 온 가족이 가업에 달라붙어 일을 돕는다.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수희가 무사하다는 걸 깨달은 후, 울음을 터뜨리는 대훈의 뒷모습은 이 가족의 뿌리깊이 자리 잡은 애증을 보여준다.

 

은희는 동네 작은 한문학원을 단짝 지숙(박서윤)과 함께 다닌다. 한문학원에 새로 온 선생님 영지 (김새벽)를 만나고 그에게 많은 위로를 받는다. 어느덧 영지를 의지하게 된 은희, 갑작스럽게 영지가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영지로부터 소포로 선물을 받게 된다. 소포 포장지에 적힌 주소를 보고 찾아간 영지의 집에선 영지가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두 시간 십오 분정도 되는 러닝타임이 길다고 느껴질 법도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 없는 씬에 단 한 테이크도 허락하지 않는다. 각 장면들과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기억하고 아는 만큼 많은 것이 보이는 영화다. 설령 그 원인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은희의 일탈들이 수많은 억압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걸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은희였다. 영화 속 은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한번쯤은 겪었던 생활 속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자란다. 귀 밑의 혹에 대해 그 어떤 말도 직접 해주지 않는 의사. 혹이 어디로 갔냐는 질문에 그런 것이 왜 궁금하냐는 간호사. 우리는 자기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늘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어른들의 선택 속에 침묵하도록 배워왔다. 

 

본인이 겪었던 차별과 희생을 딸에게도 강요하는 엄마. 우리는 그렇게 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착하게, 바르게, 배려하게 강요되며 자라왔다. 오빠에게 ‘맞았음’에도 ‘싸웠음’으로 치부되면서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한 내게도 잘못이 있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오빠와의 관계 속에서 진짜 가해자는 오빠가 아니라 부모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기를 때렸음에도 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의기양양한 남자형제를 바라보며 쓸쓸히 밥알을 삼켜왔다.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여자아이들의 가정폭력. 상상만으로 복수하는 은희를 무기력하다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은희 역을 밭은 배우 박시후는 원래 은희와 같은 성격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대사와 행동들에 확신을 가지고 임한다.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할 때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미묘하게 티가 나기 마련인데, <벌새>속 은희는 말과 행동에 전혀 망설임이 없다. 귀 밑의 혹을 만지는 장면에서 혹의 정체에 대해 고민할 때,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도 망설임이 없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배우 박시후가 은희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흡수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특별하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의 과거이자 모두의 주변인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지 못했던 장면이 없다. 내 이야기였고 내 친구의 이야기였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은희와 같은 삶을 살았지만 영지 같은 선생님은 만나지 못했다는 것. 은희와 같은 고민을 했지만 영지 같은 답을 주는 어른을 만나진 못했다는 것에서 영지는 이 영화에 특별함을 안겨주는 인물이다. 영지는 은희만 가르치고 위로했던 것이 아니다. 영지의 대사들은 관객들의 현재를 넘어 상처받고 쓸쓸했던 과거까지 와 닿아 위로한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 문장을 소개하면서부터 영지는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선생님이 되었다. 자신이 싫어진 적 있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고 대답하는 영지. 어쩌면 그들이 자신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손가락을 움직이지 말라고 외치는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였을까? 


벌새라는 영화가 주목받는 것이 몹시 기쁘다. 여성감독, 여성주연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은희를 바라보며 과거의 나를 마주하듯 마음이 아팠던 이 순간을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만 유독 아픈 시간을 보냈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아프고 힘들었다고. 혼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고 나와 같은 수많은 관객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괴로웠고 혼자였던 중학교 시절. 나는 아직도 그 시기를 떠올리는 것이 두려웠다. 침대 밑에 숨겨놓은 상자처럼 존재마저 지워버린 채 억지로 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은희와 자꾸 겹쳐 보이는 내 어린 시절은 지금의 나에게 위로해달라고 손 내미는 듯 했다. 과거의 나를 안아주고 품어주고 용서할 수 있는 건 현재의 나뿐이다. 벌새는 절대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했던 나의 과거를 용납하게 했다. 


벌새는 전진, 후진, 공중체공이 전부 가능한 유일한 새이다. 벌새의 나는 기술은 아직 인간이 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이 은희, 곧 벌새였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깨달은 여성들이 자신을 믿으며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영지의 말처럼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박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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