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굿걸, 편견을 넘고 성장하는 여자들 [TV]

글 입력 2020.06.1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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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이하 굿걸)는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한 엠넷의 서바이벌 예능이다. 6월 14일 기준 5화까지 방영되었다.

 

‘누가 방송국을 털었냐’라는 굿걸의 슬로건은 드라마 <굿 걸스>를 떠오르게 한다. 착하고 얌전하게만 보이던 주부들이 마트를 털고 갱들과 손을 잡은 그 드라마 말이다.

 

굿걸은 그 ‘닉값’을 톡톡히 하며 착하고 얌전하기만을 요구받던 여성 가수와 래퍼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하지도, 헐뜯지도 않는다. 서로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가 그들을 더욱 성장하게 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3회에 등장한 슬릭과 효연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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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릭은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고 소개된다. 래퍼 치타가 ‘슬릭이 EBS가 아니라 엠넷에…?’라고 한 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시청자 대다수와 출연진에게 자신들의 언어와는 다른 말들을 하는 슬릭은 어렵게도, 생소하게도 느껴졌을 것이고 더욱이 연예계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이기에 그 선입견이 컸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보여주는 첫 무대에서 슬릭은 ‘Here I go’를 부르며 페미니스트 래퍼로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담히 외쳤다. 무대가 끝난 뒤 사람들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슬릭의 무대는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와는 다르다는 인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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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유닛 멤버로 선택받지 못했던 슬릭은 효연과 팀을 꾸리게 되었다. 효연이 무대를 걱정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왔고, 이에 시청자들까지도 슬릭과 효연이 잘 어울릴까, 하는 의심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 속에는 ‘페미니스트’ 래퍼와 기성 아이돌 가수 간의 괴리에서 비롯된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편견’이 있었을 것이다.

 

곡 선정과 연습 과정에서 이러한 편견과 걱정을 넘어서고 슬릭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밤이 깊도록, 아침이 밝도록 안무 연습을 했고 자신과는 다른 장르더라도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서로 잘 어우러지기 위해 한발 양보하기도, 한 발 더 나서 노력하기도 한 아름다운 준비과정이었다.

 

엠넷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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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ekend의 ‘Blinding Lights’의 리듬에 맞춰 어우러지는 둘의 목소리와 중독성 있는 안무는 그야말로 1등 감이었다. 효연과 슬릭의 유닛 무대는 소녀시대 내에서 댄스로 주목받았던 효연이 가진 상상 이상의 음색, 슬릭의 노래와 춤으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들은 굿걸 출연진들의 만장일치로 유닛 경연 1위를 거머쥐었다. 무대의 구성과 완성도는 물론, 그 협업의 과정이 모두의 인정을 받은 모양이다.

 

CLC 예은은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시작해 이런 무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1등을 주었다고 말했다. 치타는 ‘슬릭의 재발견’을 할 수 있던 무대라고, 윤훼이는 ‘내가 못하는 부분까지도 다른 사람을 통해 성장하고 시도해보고 도전해볼 수 있는 무대’였다고 평했다.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편견의 실체를 마주하고 인정하고, 성장한 순간이었다.

 

특히 효연의 사과가 너무나 감명 깊었다. 슬릭에게 편견이 있었고, 트러블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만을 좇기 마련인데, 효연은 ‘자신이 그랬다’라고 말했다. 음악적 색깔의 차이, 살아온 궤적과 이야기하는 언어의 차이, 꾸밈의 차이……. 수많은 차이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시작된 유닛 경연이 모두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슬릭도 효연 덕분에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효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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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가 새롭다며 말을 잠시 잇지 못했던 슬릭의 정적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가 마주했던 편견과 어색한 눈초리들, 공기를 타고 흐르는 시선과 그 시선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 과거 참여했던 공연에서 혼자 화장을 하지 않고 짧은 머리로 있는 나를 그 어색하다는 듯, 신기하다는 듯 스쳐 갔던 시선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슬릭도 그런 순간들을 견뎠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굿걸을 통해 페미니스트가 사는 작은 사회를 보았다. 물론 현실은 그보다도 매섭지만, 그 오묘한 편견과 넘지 못할 것 같은 선과 벽들 틈으로 슬릭과 효연의 무대는 작은 불씨를 피워냈다.

 

굿걸에서는 ‘여자’라는 딱지가 필요치 않다. 여자 래퍼, 여자 보컬, 여자 아이돌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그들은 굿걸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여성 출연진으로 구성된 예능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굿걸의 앞으로의 무대가 더욱 기대된다.


 

[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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