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머리 위에서 당신의 손바닥을 치워주세요 - 영화 '야구소녀'

태양이 모든 당신들을 감쌀테니
글 입력 2020.06.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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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여성의 조합은 신선하다. 흔히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야구소녀>가 제 24회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초청받아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제 45회 서울 독립영화제에서 주연배우 이주영이 독립스타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런 희소성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최윤태 감독은 야구를 하는 소녀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기사를 접한 부인 분이 ‘여자는 프로선수를 못한다’를 전제하는 것을 보고 영화로 만들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시나리오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
 
포스터에는 ‘던져봐, 그 벽이 깨지도록!’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스포츠계에서도 극명하게 보이는 유리천장이 연상된다. 이전에 여성 주연의 스포츠 영화가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보니 떠오르는 건 2007년에 개봉했던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었다. 무려 13년이 지났다.
 
다시 포스터를 한참 들여다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인형의 집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욕망하면서 자란 나의 신세에 한탄을, 여성이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영화가 조금은 많아진 시대에 태어난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을, 이런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현재에 환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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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단점

 

최초 고등학교 야구부 여성 선수 주수인(김주영 분)이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릎을 꿇으며 학교 측에 애원했던 아버지가 있었다. 다음 단계는 프로구단 입단이었다. 1996년에, 무려 내가 태어난 그 해에 의학적 남성만 프로야구에 참가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폐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프로’남성’야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고정관념과 유리천장은 그런 것이다. 명시적이지는 않으나 확실하다.

 
프로구단 자격시험(이하 트라이아웃)에서 ‘남성’이라는 자격에 미달인 수인이 ‘트라이아웃 명단에 과연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서사가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수인이 남성이었다면 결코 없을 사건이다. 불필요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출발선에 서기 위해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마라톤 출발선의 흰색 줄이 구색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우 직접적이고 사실적이다. 여성이 도전을 발언하면 느껴지는 순간의 정적과 주변의 만류, 조롱까지. 고등학교 야구단의 코치 최진태(이준혁 분)는 “너 그렇게 뛰고 싶으면 혼자 뛰어.”라고 말한다. 감독과 코치, 동료 선수들까지 전부 남성일 때, 여성인 수인이 혼자 운동장을 뛰는 모습은 특히 압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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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으로도, 한 문단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내 삶의 장면 장면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런 시비들에 못 견뎌 나는 체육관을 일찍이 그만뒀고, 남동생이 축구단에서 열심히 뛸 때 입단을 거부당한 채로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했다. 그런 나를 초등학교 남자 친구들은 골키퍼로도 끼워주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스쳐간 이야기는 비단 스포츠와 관련된 일 뿐만이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했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었다.
 
수인에게 던져지는 말 한마디가 전부 내 가슴에 박혔다. 이주영 배우는 이 “여자라서 안돼”라는 신을 촬영할 때 실제로도 위축되었다고 한다. 주변 모두가 안된다는 말만을 반복했고 앞으로 나아갈 뚝심과 끈기를 가져가기가 힘들었다고. 프로입단을 시도하겠다는 것만으로 여성 수인이 들어야 했던 말은 “장난해?”, “타협할 줄도 알아야지.”, “어차피 그만 둘 건데 부상까지 뭐하러 신경 써?”, “야구가 무슨 서커스냐?”, “그런 걸로 발 벌어먹고 살 애들은 정해져 있어.” 따위의 것들이었다.
 
절정은 “여자라는 게 그동안은 단점이었을 지 몰라도 이 일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어요.”라며 수인을 우회하도록 설득하는 장면이었다. 수인이 나를 대신해 말해준다. “여자라는 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에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패널티를 받은 채로 살고 있는 세상 인구 절반에게 위로와 시원함이 쏟아진다. 동시에 모두의 고정관념과 제도와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혹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비난받고 발언권조차 무시당하는 현재를 이토록 가슴 아프게 자근하게 따라온 영화가 있었는가? ‘우리들의 ○○ 이야기가 펼쳐진다.’라는 시놉시스로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리고 처음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한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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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함께, 무한동력

 
감독과 배우진이 동시에 꼽는 최고의 장면이 있다. 바로 수인과 코치가 갈등관계를 종료하는 시점인 버스 신이다. 수인을 연기한 이주영 배우는 ‘수인에게 나아가는 동력이 된 기점’이라고, 코치를 연기한 이준혁 배우는 ‘연기한 본인과 많은 실패가 당연해진 최코치가 주수인이라는 자극제를 만나 모두가 성장했던 장면’이라고 회상했다.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라고 손을 내미는 코치, 프로 입단에 좌절했던 코치에게 수인은 “내가 대신 프로 가 줄게요.”라며 그 손을 굳게 잡는다. 재밌게도 극 중 코치의 이름 ‘최진태’와 이름이 비슷한 최윤태 감독은 수인의 말이 자신에게 하는 것 같아 힘이 되었다고 한다. 멸시당했던 수인이 에너지를 주는 전환, 모든 도전을 단념해 버렸었던 코치의 전환은 시야를 넓히고 같이 걸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시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수인의 입체적인 모습을 비춰주며 각자의 성장을 통해 극의 에너지를 돋군다. 트라이아웃에 나온 또 다른 여성 야구 선수가 등장한다. 무려 미국 아마추어 리그 출신이지만 타석에 오른 이 선수를 보고 이제 막 첫 트라이아웃을 겪는 고등학교 출신 남성 선수들은 “오~ 꽤 하네~?” 라며 조롱한다. 마치 국민은행을 포함해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 차별 채용의 문제를 보는 것 같다. 배경, 능력과 관계없는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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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침묵하던 여성 선수는 마운드에 오른 수인이 같은 형태로 무시당하는 걸 보고선 응원의 박수와 외침을 홀로 보내기 시작한다. 그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그저 한마디가 아니라고 장담한다. 세월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윽고 무시하던 남성 선수들도 동참하게 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성별 양분의 문제에서 단체적인 해결법으로 끌고 나간다. 모두가 의식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참여를 독려한다. 여성의 성공이 아니라, 청춘의 성공, 사회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마음을 권유한다.
 
관객인 나와 최초의 고등학교 야구부 여성 선수 수인은 다른 여학생의 고등학교 야구부 입학지원서를 보게 된다. 주수인의 ‘최초’는 모두의 ‘최초’이고, 극복의 모든 과정이 그도 모를 누군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에너지는 순환한다.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그러하다. 그것이 무한동력을 생성해 사회를 달굴 수 있다. 안개를, 구름을 헤쳐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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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지였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었던 영화가 끝난 직후 나에게 찾아온 것은 공허감도 일정부분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다시 수인이 보고 싶은 이유는, ‘여성 최초’가 ‘여성’이라는 화제성에만 그쳤던 역사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할 수 있게 마중물을 부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성 감독만이 여성 주연을 고려했으며 그마저도 독립영화였던 날들보다 한 층 성장한 시대임을 영화 <야구소녀>를 통해 보았다.
 
사회는 모두에게 힘들다. 에너지를 나누는 동반 상승은 속도는 느릴 지 언정, 선순환적인 어깨동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삶의 무게를 가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위로 뛰어오르려는 누군가의 머리 위 쪽으로 본인이 정한 높이에 본인의 손바닥으로 막고 있지는 않은가? 그 손바닥은 타인의 머리만 누르고 있지 않다. 셀 수 없이 많은 손바닥에 지구는 고슴도치와 같다. 자양분인 태양이 지면에 닿기를 막고 있다.
 
여성 주연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뻔한 서사라는 당신들이 있다면 그것은 남성들이 이미 밟아온 전차를 여성의 이야기는 이제서야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미 누군가는 익숙한 그 길을 ‘여성’의 이름으로는 개척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수인은 오히려 본인이 위로가 되고 싶어 한다. 꿈을 쫓는, 도전에 좌절한, 지쳐서 메어버린, 현실에 순응한, 그런 모든 당신들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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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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