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을 사랑한 마로나 - 환상의 마로나

영화 '환상의 마로나' 리뷰
글 입력 2020.06.10 11: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4.jpg

 

 

얼마 전에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밖에서 키우는 게 좋을 거라 생각되는 큰 개들도 사람이 있는 실내에서 기르는 게 좋다는 강형욱 씨의 말이었다. 개 자체가 사람과 함께하도록 진화한 종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사람은 흔히 개의 관점에서 마당처럼 뛰놀 곳이 있는 바깥에 있는 게 더 행복할 거라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 곳곳에 퍼져 열심히 환경을 오염시키는 오늘날,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이 사라진다면 더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다. 반려동물로 흔히 기르는 고양이조차 인간 없이 홀로 살아갈 수 있는데, 개만은 예외다. 거기다가 단순히 인간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 강렬한 감정적 교류까지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개는 인간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이다.

 


1.jpg

 

 

<환상의 마로나>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동물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깊이 생각해볼 일은 드문, 개의 이야기다. 영화는 개 한마리가 차에 치여 죽으면서 시작된다. '마로나'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맞이한 개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자신의 견생(犬生)을 되짚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견생에서 언제나 중심에 자리한 것은 마로나 자신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인간들이다. 거의 모든 순간에 인간이 있고, 마로나는 그들의 곁에서 행복을 느낀다. 외로움을 주는 것도 그것을 거둬 가는 것도 인간이다. 하지만 마로나는 그들을 찾아가거나 선택한 적이 없다. 개는 그저 기다린다. 자신에게 다가와 이름을 지어줄 인간을.

 

살면서 마로나가 했던 몇 안 되는 선택들은 모두 인간을 위해서다. 한밤중에 몰래 마놀을 떠나는 이유는 그가 자신에게 얽메이지 않고 꿈을 좇아 행복해지길 바라기 때문이고,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넌 것은 솔랑주의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다.

 

마로나는 자신의 인간을 지키는 것이 개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무정한 주인을 두고도 그런 말을 하는 마로나는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보는 '인간'들을 숙연하게 한다. 작디 작은 마로나가 자신의 인간에게 베푸는 무한한 사랑과 헌신은 어릴 적 동화를 읽을 때 느끼던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7.jpg

 

 

<환상의 마로나>의 감상을 말하며 작화를 빼놓을 수 없다. 다소 뻔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제목처럼 환상적인 그림들이다. 마치 초현실주의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같은 다채로운 장면들과 화면 전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이라는 장르의 폭을 크게 넓힌다.

 

독특한 그림은 인간이 아닌 개가 바라보는 세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명확한 형체 없이 일렁거리던 세상은 마로나가 자신의 인간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그 인간을 중심으로 형체를 갖춘다.

 

곡예사인 마놀을 만날 때면 세상 모든 것이 곡선으로 울렁거리고 물건들은 하늘을 날아다닌다. 건축가인 이스트반을 만날 때 마로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엄격하게 제도된 곳이다. <환상의 마로나>는 이처럼 인간을 벗어나 존재하기 힘든 견생을 개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표현해낸다.

 

 

8.jpg

 

 

마로나의 엄마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최초의 개가 인간과 함께 살기를 선택한 까닭은 그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은 가축이, 개는 다른 야생동물로부터의 안전한 장소와 먹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개는 기꺼이 이 낯선 종의 손을 잡았고,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개에게는 인간이 전부이지만, 인간의 삶은 개보다 길다. 인간의 삶에 개가 머무는 시간은 인간의 삶 전체를 생각해보면 길지 않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개 말고도 중요한(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일들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와 인간의 관계가 언제나 개의 짝사랑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개에게 영향을 받는다. 개와 함께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환상의 마로나>를 보며 저마다 떠오르는 어떤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우연히 개를 한 마리 기르게 되면서 채식주의자가 된 나의 이모를 떠올렸다.

 

 

5.jpg

 

 

그렇지만 개들이 그것만으로 행복할 거라 말하기엔 역시 개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개를 가만히 바라보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인간인 나는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개의 중심은 인간이지만 인간의 중심은 개가 아니므로.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는 정도는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정도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마지막의 냄새'를 그들은 맡지만 우리는 맡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리뷰도 어쩔 수 없이 인간 이야기로 끝맺게 된다. 개의 행복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말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풀기는 불가능한 방식의 사랑을 개는 아무렇지 않게 인간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불확실하고 복잡한 삶 속에서 드물게 명쾌한 행복으로 반짝인다.

 

이해할 수 없고 단지 느낄 수만 있는, 맹목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거기에 있다.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