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와이 우먼 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들의 결정 [TV/드라마]

Q: Why Women Kill A: Why not?
글 입력 2020.06.0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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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게 세상은 갈수록 광기로 가득 차는 것 같다. 약자는 생판 모르는 남의 분풀이 도구 정도로 인식되고, 시민의 지팡이는 강자의 이쑤시개밖에 되지 않는다. 흔드는 대로 휘둘러지는 세상에서, 손잡이는 기득권자에게만 부여되고 다수는 별 탈 없이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소수자와 약자만이 손잡이를 제 방향에 고정하기 위해 정신을 붙들고 있을 뿐이다.

 

물론 대다수가 정의로운 의견을 통일할 때가 존재하기도 한다. 흔들림을 고정시키려는 시도는 수십 번의 시도를 해야만 시선을 얻지만, 흐름을 거스르는 사건은 한 번만 발생해도 많은 이들을 정의감으로 불태운다. 매일 나오는 남성 살인자보다 가끔 등장하는 여성 살인자가 더 큰 이목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이런 변종 사건은 하도 특이하게 다뤄지기에 맥락보다 발생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며, 보다 엄격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된다. 발생 빈도와 발생 가능성이 혼용되는 것이다. 발생 빈도가 낮더라도 발생 가능성은 높을 수 있다. 이 높은 가능성을 실현시킬지의 여부, 즉 빈도를 결정짓는 것이 상황의 맥락이다. 하지만 종종 실질적 맥락은 간과되고 대신 빈도는 그 자체가 맥락으로 정의된다. ‘어떤 상황이 해당 결과를 발생시켰다’가 아닌, ‘어떤 상황이건 해당 결과는 드물게 발생된다’가 사건의 문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와이 우먼 킬>(Why Women Kill, 2019)은 제목, 그리고 시즌 초반부터 이 드라마에서는 세 명의 여성이 살인을 주도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결말의 일부를 사전에 공개한 뒤에 차차 상황을 전개하여, 사건들의 맥락이 발생 사실의 자극성에 감춰지지 않을 수 있도록 플롯을 설정한다. 여기에 더해진 짜임새 있는 전개는, 이미 드러난 결말의 윤곽 앞에 수많은 그림자를 드리워 완성도를 높이고, 사망자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

다음의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와이 우먼 킬>의 세 가지 살인 사건은 각각 1963년, 1984년, 2019년에 모두 같은 공간, 패서디나의 한 대저택에서 발생한다. 살인은 모두 각 가정의 아내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각자의 남편에 의해서 시작된 불행한 사건이 누군가 죽음으로써 일단락된다는 공통점도 갖는다.

 

1963년의 주인공, 베스 앤(지니퍼 굿윈)은 헌신적인 가정주부다. 그는 가부장의 결정체인, 하물며 외도 중인 남편을 두고도 그를 향한 희생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는 남편의 내연녀, 에이프릴(사디 칼바노)과 진심 어린 친분을 쌓는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상황이 뿜어내는 부조화의 공기는 화면 속 그득한 햇살, 그리고 시대의 색감이 주는 따사로움과 대비되며 강조된다.

 

1984년의 시몬(루시 리우)는 별다른 흠 없이 과시만이 남은 인생의 시기를 보낸다. 남편이 실은 게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기 전까지 말이다. 이혼을 계획하고, 남편 대신 20살가량 어린 애인과 쨍한 사랑을 즐기던 시몬에게 이혼보다 더 한 위기가 닥친다. 그런데 시몬은 남편의 거짓말이 싹 틔운 위기 속에서도 남편을 주도적으로 책임진다. 여러 가치가 함축된 위기이기 때문일까? 서로를 향한 사랑의 결은 다른 곳을 향해도, 둘은 손을 놓지 않는다.

 

앞선 둘에 이어 대저택의 주인이 된 2019년의 테일러(커비 하웰-밥티스트)는 남편과 합의하에 다자연애 관계를 맺는다. 부부는 각자의 애인을 따로 두곤 했지만, 원래 테일러의 애인이던 제이드(알렉산드라 다다리오)가 부부의 관계에 포함되고 나서부턴, 셋이 서로의 애인이자 가족이 된다. 다소 생소한 이 관계는 남편이 테일러의 믿음을 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적절히 나뉜 분량으로 모든 에피소드에서 뒤섞이는 세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고, 뒤섞임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매 회 세 이야기가 자르고 붙여지는 포인트 때문이다. 이 포인트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를 완벽하게 잇는다. 매 회, 각 시대의 발단은 발단끼리, 절정은 절정끼리 이어지며 몰입감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빈틈없이 꽉 채우며 몰입감을 강화한다.

 

또 재미있는 점은, 드라마가 수미상관을 끊임없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출은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스토리 자체로 봤을 땐 동떨어진 세 이야기의 연관성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수미상관은 매 회에 국한되어 적용되지 않고, 전체 시즌, 심지어는 포스터에까지 적용된다.

 

이렇게 잘 정돈된, 재미를 갖춘 구성 속에서 상황의 맥락은 확실하게 전달된다. 이해되고, 공감된다. 그중에서도 퍼즐이 가장 쉽게 맞춰지던 시대는 1963년, 베스 앤이 가꾸어 간 부조화의 시대이다. 가장 오래된 스토리가 가장 가까운 스토리라는 아이러니는 아직 고여 있는 시대의 흐름을 다시금 실감 나게 한다. 자극성에 함몰되지 않고 맥락에 집중했을 때의 쾌감은 ‘왜 죽이냐’는 질문에서 ‘왜 안 죽이냐’는 대답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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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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