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택장애가 아니라 좀 더 신중한 거예요. 영화 '배심원들' [영화]

내 망설임이 세상을 바꿀지도 몰라
글 입력 2020.06.0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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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틀다가 우연히 본 영화들은 가볍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끔씩 그렇게 만난 영화들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 '배심원들'이 나에게 그랬다.

 

2019년 5월에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은 2008년 처음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국민 참여 재판이 이루어졌던 당시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영문도 모른 채 배심원들로 선정된 8명의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들의 형별을 심의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재판 진행 과정에서 피고인의 유무죄가 불확실해졌고 배심원들은 갑자기 피고인의 유죄 여부를 가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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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정황이 피고인의 유죄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심원단의 의견도 유죄 쪽으로 한 번에 모이는 듯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무언가 계속 꺼림직함을 느꼈던 권남우(박형식 배우)는 쉽게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든 게 명백한 상황에 뭘 그리 고민하냐고 타박하는 와중에도 8번 배심원 권남우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투표하지 못하겠다며 다시 사건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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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이 바쁜 배심원들은 시간을 끄는 8번 배심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권남우는 배심원으로 선정되어 판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물음에 대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작성했던 질문표에는 "잘 모르겠다",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라는 애매한 답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판사들의 질문에도 갈팡질팡하면서 뚜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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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8번 배심원 때문에 배심원단의 토의는 새벽을 넘겨버린다. 심지어 처음에는 별 의심을 가지지 않던 다른 배심원들까지 피고인의 무죄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결국 8번 배심원 권남우가 쏘아 올린 의구심 그리고 망설임은 재판의 결을 바꾸기 시작한다.

  

짜여 있는 관행과 요구되는 효율성에 맞춰 살다 보면 우리에게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은 사치가 되어 버린다. 또 빠르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정 장애'라는 새로운 낙인이 붙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쌓여가는 콤플렉스에다가 새삼스러운 장애까지 붙어버린 것이다.

       

사회에서 "똑 부러지지 못하다", "답답하다"라는 평을 듣고 살았을 권남우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어딘가 통쾌했다. 또 진짜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효율이 새로운 생각과 진실을 낳는 과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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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중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비서 최영재(조한철 배우)는 처음에 판사, 변호사들의 의견을 내세우며 왜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그에 7번 배심원 오수정(조수향 배우)은 그 사람들 말고 아저씨의 생각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5번 배심원 최영재는 자신의 생각을 묻는 말에 멍해지며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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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사소한 선택을 남에게 미루고 확신 없는 결정에 자신 없어 하던 내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동안 배려, 아니면 효율을 핑계로 내 진짜 목소리를 외면해 온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보호할 힘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해지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태도는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아닐까.


국민 참여 재판과 그에 얽힌 사건을 그린 영화 <배심원들>은 나에게 오랜 기다림과 고민이 선택 장애가 아니라 신중함이었음을 알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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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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