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색을 잃지 않도록 -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도서]

글 입력 2020.06.0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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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길다. 그렇기에 서점을 기웃거리던 독자에게 ‘나를 잡아줘! 궁금하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간다. 그렇게 뒷표지 요약을 보면 써 있는 문구.

 

 

 

1.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있습니까?’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제목과 매력적인 요약이 합쳐 나는 이 책을 들고 펼쳤다. 이후 어느 작가를 좋아하냐 물으면 서슴없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외친다. 작가는 도입부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차근히 풀어나가는 방식을 사용하며 어느 순간 흐름을 타고 쉽게 읽히도록 한다.


이번 작품 역시 초반의 주인공은 무덤덤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그가 형성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더 이상 너와 함께 할 수 없어.’라는 한마디 때문이다. 과거 그는 활기차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조화를 이루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룹에서 쫓겨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10대는 친구들이 가치관의 상당 비율을 차지한다.


자아가 형성되고 가치관을 확립시키는 시기이다. 그런 중요한 시기를 함께 경험했던 소중한 친구들, 어쩌면 그의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 시절을 한순간에 부정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학을 가며 친구들과 잠시 떨어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도 모른 채, 그는 생사를 오가는 5개월을 보냈다. 어떤 이유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던 모임에서 쫓겨난 것일까. 남녀 사이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연애감정조차 갖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조화를 이루어냈던 완벽한 그 모임에서.

 

둥글둥글하고 무난했던 쓰쿠루는 사람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마르고 생기를 잃어갔다. 여러 번의 자살 시도를 하고, 겨우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고, 음식을 먹으며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쓰쿠루가 아닌 새로운 ‘다자키 쓰쿠루’ 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어떠한 관계도 아닌 오로지 역을 만들고자 했던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과거를 외면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NEW LIFE' 가 아닌 그저 살아갈 뿐인 삶을.

 


 

2. 인물의 이름


 

‘사라’ 는 쓰쿠루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왔다. 그녀와 연애를 하며 진정으로 이 여자를 잡고 싶어졌고, 서로를 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체한 듯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있었다. 쓰쿠루는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생각했고, 그저 살아갈 뿐인 그에게 사랑은 진실 되지 않은 것이었다. 사라의 권유로 쓰쿠루는 과거를 찾아 떠났다.

 

‘아카(빨강)’, ‘아오(파랑)’, ‘시로(하양)’, ‘구로(검정)’

 

네 가지 색을 가진 친구들은 각기 이름처럼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아카는 지적이고 뚜렷한 자기주장을, 아오는 덩치만큼이나 호쾌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가졌다. 시로는 예쁘장하게 생겼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하얀 백설공주 같은 친구였고, 마지막으로 구로는 여자임에도 호쾌하고 당당한 성격을 가졌다.


하지만 다자키 쓰쿠루는 색이 없었다. 친구들과 다르게 어떤 특징도 없고 개성도 없는 그저 개성 강한 친구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런 자신이기에 더더욱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했다. 오히려 쓰쿠루가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색이 충돌하지 않고 균형을 이룰 수 있었을 수도 있다.

 

16년이 지나고, 어쩌면 묻어둘 수도 있었을 의문을 들고 친구들을 찾아갔다. 자신은 어떠한 잘못도 한 기억이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들에게서 추방 된 이유를 찾아서말이다. 충격적이게도 하나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정말 모르는거야?’ 와 같은 반응이었다. 그렇게 듣게 된 사실은 쓰쿠루가 ‘시로’를 강간했다는 것이었다.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실이 없는데, 그룹의 모두가 나에게 어떠한 질문도 없이 그룹에서 추방시켰다는 것인가. 누구 하나 진위를 묻지도 않고 만장일치로 쓰쿠루를 그룹에서 추방시켰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를 변호하거나 단 한번이라도 쓰쿠루에게 진위여부를 물어봤다면 그의 삶은 나락으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의 일관된 행동 때문에 쓰쿠루라는 인간은 이미 죽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서 모두의 반응은 충격적이게도 ‘쓰쿠루 네가 그럴 리 없다 생각했어.’ 와 같은 반응이었다. 언제는 한마음으로 화살을 꽂더니 이제는 그게 아니란다. 오로지 그룹의 평화를 위해서 누구보다 멘탈 좋은 쓰쿠루를 탓한 것이다. 그것도 추측으로. 정작 진실을 확인해줄 시로는 살해당해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일까, 시로가 죽었기 때문에 쓰쿠루는 친구들을 찾아가 과거를 물어볼 수 있었다 생각한다.

 

 

 

3. 색


 

이 책은 제목부터 ‘색’를 사용하며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는 기분 좋은 색깔이 있는가 하면 보기 괴로운 색깔도 있어. 즐거운 색깔이 있는가 하면 슬픈 색깔도 있지. 빛이 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엷은 사람도 있고...”


 

미도리카와의 말이다.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 하면서 자신은 사람의 색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루키 작품세계에서 사후세계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죽음? 그 뒤는 생각하지 않아. 오로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중요한거지’

 

이러한 마인드를 전해주는 듯하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미지의 세계이다. 잠을 자듯 눈을 감고, 다시 뜨지 못하는 그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가? 밤에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 되듯 기억의 단편이 사라져버린다. 죽음을 영원한 잠에 비유하는 것이야말로 죽음을 정의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여러 종교에서 사후세계를 다룬다. 불교의 윤회, 기독교의 천국처럼 각 종교는 사후세계를 표현한다. 사실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후를 믿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기 위함이다. 사후세계는 공통적으로 ‘심판’을 다룬다. 생에 어떤 일을 했는가, 옳고 그름을 따져 사후세계에서의 삶이 결정된다.


쓰쿠루는 16년 전 통보로 인해 움직이기만 할 뿐인 상태로 죽음을 준비하고 시도했다. 결국 살아남았지만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닌 한 번 죽음을 겪은, 자신의 색채를 잃어버린 전혀 다른 쓰쿠루가 되어있을 뿐이다. 쓰쿠루는 자신도 모르게 응어리 진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데, 이는 진실을 찾고 심판을 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 때 이후로 바래진 색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진심과 진실을 들으며 그는 색채를 찾아간다.

 

그렇다면 친구들은 어떨까.

 


“우린 더 이상 순진무구한 고등학생이 아니었지. 그래도 예전에는 소중한 의미를 지녔던 무엇인가가 점점 색이 바래고 소멸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슬픈 일이야.”


 

아오를 찾아가 이야기를 하던 중 그가 내뱉은 말이다. 시로가 죽고, 그녀의 장례식에서 하염없이 슬퍼했지만 소중한 의미를 지녔던 ‘무언가’의 색이 바라고 소멸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환상의 균형을 이루었던 5인의 그룹은 서로를 지탱하고 이어주던 색의 조합이 있었다. 하지만 쓰쿠루를 퇴출하면서 서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어 왔던 것들이 하나 둘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연애 감정이나,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않는 상대의 행동이나 생각 등등이 금이 가고 결국에는 깨져버린 것이다.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던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색을 강렬히 뿜어내며 자신만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설령 완전하지 않더라도, 역은 완성되어야 해. 역이 없으면 전차는 거기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맞이할 수도 없으니까. 만일 뭔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필요에 따라 나중에 고치면 되는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16년 전 그룹에서 쫓겨난 것은 쓰쿠루지만 16년 후 그들을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쓰쿠루이다. 시로의 주장으로 쓰쿠루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친구들의 예상이 적중했던 것인지, 쓰쿠루는 죽음 직전에서 스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 순간부터 흩어졌다. 아오는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을 직업으로 삼은 것이 아닌 ‘렉서스 딜러’ 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 파이팅 넘치던 성격과 성실함에서 비롯되는 신뢰는 고객에게 아주 잘 먹혔고, 우수 사원으로 선정되어 해외로 나갈 정도의 엘리트가 되었다. 아카는 아버지가 교수로 계신 대학에서 공부하며 수석 졸업을 했다. 이후 은행에 취직했지만, 적성과 맞지 않았는지 잠시 대부업체에서 일을 하다 창업에 성공하였다. 무려 신입, 중견 사원을 교육하는 분야였는데, 애초에 아카는 누구 앞에서 이야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구로는 영문과를 다니다가 우연한 기회로 도자기를 접하고, 공예를 공부하게 되었다. 시로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오직 쓰쿠루만이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쓰쿠루만 제외하고 고등학교 때 꾸었던 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각자의 개성이 색이라는 형태로 뿜어져 나왔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색이 옅어졌다. 오히려 고등학생이었기에 뿜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4. 색을 잃지 않도록


 

'당신이 서 있는 역은 어디입니까?'

 

우리는 이제 막 인생을 시작했다. 100세 인생에서 겨우 5분의 1밖에 지나지 않았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사람으로서 살아가기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지 20년이다. 20살 이후부터는 내가 배운 것들을 경험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실패도 많이 할 것이고, 일어나기 힘들 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색을 찾아가면 된다.

 

그저 열심히 나만의 색으로 그림을 그려나가자. 역을 만들 듯이 형태를 만들고, 구조를 짜고, 기능을 넣자. 지금은 부족해도 나중에 채워 넣으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기능이 필요하다면 추가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나의 색으로 칠해나간 내가 서 있는 '역'이, 내 손으로 만든 '역'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쉼이 되기를 소망한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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