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연극 '고기 잡이 배' - 작은 배 위의 사건으로 보는 인간의 권리와 잔혹성이 뒤섞인 우리 사회의 참상 [공연]

그날 그 고기 잡이 배위의 사건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글 입력 2020.05.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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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공연 사진

 

 

1996년의 어느 여름날, 광활한 남태평양 위를 항해 중이던 조그맣고 낡은 배 한척에서 일어난 일이다. 항해에 익숙하지 않았던 교포선원들은 수차례에 걸친 작업 설명에도 손이 느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를 답답하게 여기고 있던 갑판장에게 구타를 당한다. 배 안에서는 이로 인해 이미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언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역곡절 끝에 이 낡고 조그만 페스키마호는 조업을 시작한지 55일만에 처음으로 투승한다. 그동안의 고생에 보답이라 하듯, 놀랍게도 평소의 열 배나 되는 참치가 낚시대에 달려 올라왔고, 태풍이 몰려오기 전, 서둘러 양승을 해야 했기에, 배 위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달뜬 분위기였다. 그때, 교포선원이 낚시에 걸린 참다랑어 한 마리를 바다에 떨어뜨린다. 이에 격분한 선장이 교포선원을 구타하자, 맞은 선원은 처음으로 선장에 반격하여 맞서 뺨을 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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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공연 사진

 

 

이 일로 순식간에 칼과 흉기를 든 한국선원과 교포선원들이 갑판 위에서 대치하게 된다. 그동안 쌓여왔던 은근한 무시와 핍박에 대한 교포선원들의 설움, 굼뜬 교포선원들의 행동거지로 인한 답답함과 불평을 쌓아왔던 한국선원들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며, 배 위에서는 이루 말하지 못할 참상이 벌어진다.


이 연극은 1996년 8월 남태평양에서 실제로 조업을 하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키마 호’에서 조선족 선원 6명이 선상반한을 일으켜 한국인 선원을 포함한 11명이 선원이 살해된 실제 사건을 다루었다.


광활하고 끝 없는 바다로 참치를 잡기 위해 출항했던 그 배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라는 궁금증에서부터 출발한 이 연극은 21명의 등장인물들이 출연하여 연극적인 마법과 같은 장면들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에게 당시 그 갑판 위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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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공연 사진

 

 

이 무참하고 잔혹한 이야기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에서 시작된다. 값비싼 참다랑어 한마리보다도 못했던 값어치에 매겨져 선상위에 떠밀리게 된 교포선원들에게도 인권이 있었던 것일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혹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등등 각자의 사연으로 이 배 위에 모여든 이들이지만. 그들은 좁은 배 위에서도 각기 다른 계층으로 나뉘어 생활해야 했다.


어쩌면 이 조그마한 배는 우리 사회의 사이즈를 줄여 놓은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노예제도도, 신분제도도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는 ‘돈’이라는 재화를 중심으로하여 알게 모르게 계급과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 그 계급세계 앞에서, 흔히들 말하는 ‘인권’이라는 최소한의 존중도 포기한 체 살아가는 이들이 정말 많다.


1996년으로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러한 풍조는 아직도 여전하다. 몇몇 이들이 부의 대부분을 독식한 체, 아무 걱정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영위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세상 전부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것일 수도 있는 세상. 아직까지도 바뀐 것 없이 고여 있는 이 계층 체계를 이 연극은 작은 배 위의 사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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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살아온 자신의 고향인 육지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와 생전 처음 가보는 광활한 바다 위에서 이해하지 못할 언어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손이 서투르다는 이유로 갖은 모욕과 비난을 받아야 했던 교포선원들은 그 배위의 계층 체계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터트릴 수 있는 설움을 누르며 하루하루 살아갔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지켜보는 다른 선원들은 현저히 다른 작업량으로 같은 월급을 받아가는 그들에 대한 불만을 키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의 그 날은 이 모든 것이 한번에 터지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행운과도 같은 기회에 들떠 모든 선원들과 갑판장은 흥분된 상태였다. 이번 일만 잘되면, 어쩌면 당분간은 이 지독하고 갑갑한 배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그 아래 깔려 있었을 것이다. 선장 마저 내려와 작업을 했던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이 기회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 때 교포선원이 놓쳤던 참다랑어 한 마리는 단순히 참다랑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동안의 교포선원들에 대한 다른 선원들의 불만을 터트리는 다이너마이트이자, 그로 인한 폭력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리라 생각한 교포선원의 반란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이들에게는 그 참다랑어 한 마리조차 절실했다.

 

*

 

실제로 일어났던 이 사건을 다룬 연극에서 나는 우리 사회를 짙게 물들이고 있던 계급 사회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낯선 이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해결되지 못할 딜레마 속에서 결국엔 반란까지 일으켜야 했던 이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어간 이들. 이들의 설움에 대한 대가가 누군가를 살인하는 것으로 표출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연극 ‘고기 잡이 배’는 이러한 딜레마에 쌓인 우리 사회의 상황을 갑판 위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재조명을 통해 생생히 풀어내고, 우리에게 다시금 질문한다.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까지이며, 그럼에도 인간의 권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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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 배
2020 한국문화예술위윈회
올해의 레파토리 선정작품


일자 : 2020.06.05 ~ 2020.06.28

시간
화, 수, 목, 금 오후 8시
토, 일 오후 4시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제작

극단 드림시어터컴퍼니

LP STORY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8세 이상

공연시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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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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