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민들레 홀씨 같은 삶을 산 한 사람의 이야기 - 연극 '민들레 홀씨' [공연]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글 입력 2020.05.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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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어려운 그냥 박자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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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태어나기를 바라고 지은 이름인 ‘박자훈’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왠지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해묵은 나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있다. 내가 태어난 날, 남자아이이길 바랬던 친할머니는 울고 외할머니는 집안일 시키면 되겠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남자이길 바랬던 적이 없었는데도 태어나면서 어쩐지 남자였으면 하는 다른 누군가의 소망을 뭉개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원하지도 않을 일을 하리라는 누군가의 소망도 있었을 것이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렇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는 멋대로 실망하고 누군가는 멋대로 나의 미래를 점친다. 내 인생은 내 것이어야만 하는데, 나조차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게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와 대중교통을 타고 학교에 가 공부를 하고,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그 과정 동안 오로지 내가 원해서, 나의 의지로 한 일이 몇 개나 될까 하는 생각이 나면 문득 답답해진다.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누군가의 눈초리를 걱정하고, 대중교통을 타면서, 길을 가면서는 걱정해야 할 일 때문에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다.


자훈은 양장점을 차리는게 꿈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가 대학을 가고자 한다. 그런 자훈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괜한 고생하지 말고 그냥 여기서 집안일 배우고 시집가서 살라고. 누군가의 눈에는 그것이 안온하고 편한 삶처럼 보일 수 있겠다. 굳이 왜 어려운 길을 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왜 내가 원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아? 왜 나의 선택을 멋대로 평가해? 쉬운 길을 두고 왜 굳이 어려운 길로 가느냐고 말하면, 그것은 어려운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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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훈은 결국 양장점을 차리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엄마가 아프셨기 때문에 모아둔 돈은 전부 집으로 보냈다. 나는 이 서사가 어쩐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와 먹먹했다. 사실, 그 시대에 원하는 일을 하고 성공한 여성은 드물 것이다. 어쩌면 낙타를 바늘 구멍에 넣는 일보다 더더욱. 그 어려움을 겪고 성공하더라도 ‘여자치고’라는 말은 꼬리표처럼 달라붙는다. 그냥 대단한 게 아니라 여성 치고 대단하고, 그냥 질책 받는게 아니라 여성이어서 질책 받는다.


자훈은 박자훈으로 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박자훈이 아닌 여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가사일은 오로지 자훈의 몫이었으며, 회사를 가지 않는 주말에 남편이 친구들과 술 한잔 하러 나갈 때 조차도 아이를 돌보고 일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눈에 ‘집에서 편하게 있으면서’라는 것으로 비친다. 선택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 일을 떠맡아야 했고, 잘하면 당연한 것, 못하면 어떻게 이렇게 당연한 것을 못하냐는 질책을 받아야 한다.


나는 자훈이 그냥 자훈의 삶을 살길 바랬다.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여자가 아닌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 선택에 있어 나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 자신을 가장 우선적으로 존중하며 살고 싶다. 그러나 자훈처럼,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냥 나로 살고 싶은 것은 큰 욕심이 된다.


어쩌면 나도 10년, 20년 후에는 이름이 지워진 체 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발버둥 치는 이유는, 결국 내 인생의 끝에 나라는 사람이 오로지 나로서 남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가 죽고 태어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당연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민들레 같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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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훈의 어머니는 민들레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의 삶에 있다고 한다. 민들레는 그 자리에서 피어나 한 철을 살고, 부숭 부숭한 털 같은 씨앗들이 되어 다시 어딘가로 날아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삶의 끝자락에서 태어났던 본연의 모습인 씨앗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원해왔던 타임머신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 삶을 살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기대감 넘치는 기회이다. 후회 없이 사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소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연 한번 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끝나고, 한번 흘러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 순간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 지나온 시간은 다시 겪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립고 아리는 것이다. 한번 뿐인 삶이라는 것은 때로 고통스럽고, 후회 가득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거름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보잘것 없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거름이라니, 누가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름은 거름이기 이전에 다른 무언가의 삶을 살았고, 그 끝에 거름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피워낸다. 거름이 있어야 씨앗이 발아 하고 꽃이 필 수 있는 것처럼. 삶을 살아낸 뒤 씨앗이 되어 날아가 또다른 새 삶을 사는 것보다, 한번 뿐이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의 삶에 꽃을 피워주는 삶을 살고 싶다.

 

 


행복 기계는 왜 불행 기계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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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훈의 아버지는 어느날 행복 기계라는 것을 만든다. 그 안에 들어가면, 과거의 어느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고,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자훈의 아버지는 기계에 행복 기계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행복 기계를 처음 사용했던 자훈의 어머니는 이것은 행복 기계가 아니라 불행 기계라고 한다. 떠나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이미 끝나고 흘러가 버렸는데, 잊고 살았던 추억만 남아 그것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한다. 돌아갈 수 없는데 그리우니까 그것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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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것이 그렇다. 흘러가버리는 세월 속에 많은 것들을 얻기도 하고, 흘려 보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 아름다운 것을 모른다. 그렇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시간을 보내다 어느 순간 흘러가버린 것을 보고는 느끼는 것이다. 그 때 그 시절이 아름다웠구나, 하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기계가 마냥 불행 기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떠나가버린 시간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깨닫는 건 슬픈 일이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재를 더 가꾸며 살 수 있다. 흘러가 버린 시간이 아름답다는 건, 지금 흘러가는 이 시간도 아름답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좀 더 현재를 음미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 현재를 또렷이 살아내고 그리하여 언젠가, 인생의 끝에 다다라 더 이상 흘러갈 시간이 없고 흘러가 버린 시간만 남았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과거의 추억들이 아름답게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

민들레 홀씨
- Dandelion Spore -


일자 : 2020.05.14 - 2020.06.07

시간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 7시 30분
일요일 오후 3시
 
*
화/수 공연 없음

장소 : 보광극장

티켓가격

전석 20,000원

  

주최/주관

창작예술집단 보광극장


관람연령
만 12세 이상

공연시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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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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