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 오백이면 할 수 있는 불륜 [TV/드라마]

불륜의 현실과 책임의 무게
글 입력 2020.05.23 14:1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311.jpg

 

 


1. 부부의 세계와 불륜 담론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종영했다. 방영 초기부터 배우들의 연기력과 스토리의 흡인력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마지막회에는 30%가 넘는 비지상파 시청률 최고 기록까지 경신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 ’그러게 남의 물건은 함부로 손대는 게 아닌데 ‘ 등의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사람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부부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부부의 세계가 다루는 '불륜'은 한국 드라마에서 낯선 소재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평범한 소재였다. 하지만 불륜이라는 소재를 앞으로 내세우고, 불륜을 중심으로 인물관계와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은 기존의 막장드라마와 달랐다. '불륜'이라는 단어는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배우와 연기뿐만 아니라 극 중의 불륜관계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부부의 세계‘ 덕분에 불륜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사람들이 이 소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는 부부관계가 모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극 중 인물의 불륜에 분노했고, 반면에 일부 시청자들은 이해는 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나라면, 우리 부부였다면 어땠을까?’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부부의 세계’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고, 멀지 않은 이야기였다.


연합뉴스 이정현 기자의 <부부의 세계'를 함께 보는 부부들에게 물었습니다.>에서는 드라마를 보는 사회의 시선을 담아냈다. 기자는 30대 회사원부터 60대 자영업자까지 각양각색의 부부에게 감상평을 물었다. 남편들은 이태오의 불륜에 ‘이해는 하지만 해선 안 될 일’, ‘난 몰입은 별로 안 했다’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며, 아내들은 불륜에 대처하는 극 중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공감하기도 했다.


‘부부의 세계’는 사회적 맥락과 함께한 작품이었다. 상상 속으로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었고, 모두에게 있을법한 일을 약간의 픽션과 과장을 통해 풀어냈다. '부부의 세계'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불륜의 무게와 책임을 극으로 다뤘다.




2. 법에서 사회로



‘부부의 세계’의 배경에는 불륜의 법적인 처벌을 없앤 ‘간통죄 폐지’가 있었다. 2015년 이전 간통행위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있었지만, 위헌 법률 결정에 따라 효력을 상실했다. 그 이유는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야 한다는 점, 간통죄로 처벌되는 비율이 상당히 낮고, 사회적 비난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낮아져 형사처벌의 기능을 잃었다는 점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로써 형사 처벌 대상에 속하던 불륜은 범죄가 아니게 되었다. 여전히 정신적 손해배상과 간통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었지만 형사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불륜의 책임은 징역 2년이 아닌, 이혼 위자료와 손해배상 금액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렇게 불륜은 '돈만 있다면' 저지를 수 있고, 책임을 피할 수 있는 행위가 되었다.


불륜의 법적 책임이 사라지고 나서 자칫하면 전국 가정이 파탄되어 이혼소송이 증가할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1년이 지난 2016년의 이혼소송 건수는 4.0% 감소했다고 보도되었다. 간통죄 폐지가 실제로 사회의 불륜을 조장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던 몇몇 불륜의 입장은 달랐다. 일부는 간통죄 폐지를 다르게 해석해 사라진 불륜의 법적 책임을 무한한 자유처럼 누렸다. 불륜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책임감을 최소한으로 가져갔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불륜은 더욱 대담해졌고, 그 대가는 더욱 가벼워졌다.


 

KakaoTalk_20200514_0753497133.jpg



'부부의 세계'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실제보다 더 심하진 않았다. KBS 다큐멘터리 '제보자들'은 5월 13일 방영된 '현실판 부부의 세계의 민낯을 추적하다'에서 현재 대한민국 불륜의 실태를 취재했다. 방을 따로 구해 외도하던 남편, 출산 당일 외도한 남편, 항암치료 도중 외도를 한 남편, 자전거 동호회 모임에서 외도를 한 아내까지 다양했다.


요즘 불륜의 수법은 대담했다. 불특정 기혼 남녀가 외도를 목적으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이용했다. '기혼', '기혼 썸', '기혼 만남'과 같은 키워드로 손쉽게 불륜 모임방을 검색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혼 방'에서 공공연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심지어 이 방들은 기혼임을 입증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이들에게 불륜은 너무나도 당당하고 즐거운 행동처럼 보였다.


일부 동호회에서는 불륜 당사자가 아니어도 불륜을 도우며 조장하는 분위기였다. 불륜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외도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에서 아무런 만류도 하지 않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완벽할 정도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불륜 피해자의 인터뷰 중 '천오백만 원만 있으면 불륜을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은 가벼워진 불륜의 무게를 보여준다. 불륜의 증거를 어렵사리 모아 소송에서 승소해도, 천오백만 원 정도의 위자료가 불륜의 대가이자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의 전부였다. 돈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파탄의 책임은 더욱 가벼워지고 있었다.


과거엔 결혼생활을 지킬 책임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 책임을 지지 않기로 생각만 한다면, 불륜을 통해 파괴된 관계는 위자료의 액수로 치환되고, 이혼의 책임은 돈으로 지불되었다. 불륜의 책임은 개인의 판단으로 결정되었다. 다큐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대한민국 '불륜의 세계'의 현주소였다.




3. 지워지지 않는 책임과 고통



그렇다면 '부부의 세계'가 '불륜의 세계'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이태오는 개인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불륜을 저지르고, 지선우는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불륜의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불륜을 저지르고, 피해자들은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부부의 세계'는 이러한 사회에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먼저, 불륜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태오는 불륜을 은폐해 책임을 피하려 했지만, 불륜을 알아챈 지선우에 의해 실패했다. 또한, 관계의 책임을 버리고 떠난 이태오는 결국 새로운 관계도 망가트렸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이태오는 그의 사랑이 허상임을 인정해야 했다. 드라마는 그의 책임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마지막화의 내레이션은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부각한다. "삶의 대부분을 나눠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일이라 내 한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그 고통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인 가해자도 정말 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또 다른 메시지는 피해자에 대한 위로다. '부부의 세계'는 끊어지고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현실 속 사람들을 위로하려 했다.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서 화끈한 복수를 보여주거나, 더 막장으로 치닫게 할 수는 없었다. 사회를 반영한 드라마는 그 사회의 무게와 함께해야 했고, 담담하고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야 했다. 그것이 불륜을 다루는 '부부의 세계'의 책임이었다.


이 역시 마지막화의 내레이션과 함께 전달된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아프게 곱씹으면서 그 아픔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매일을 견디다 보면, 어쩌면 구원처럼 찾아와 줄지도 모른다"


부부 사이는 칼로 무 베듯 간단히 끊기지 않았다. 단순히 '끝내자'라는 말로 정리되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어진 관계에는 지울 수 없는 책임과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남았다. '부부의 세계'는 드라마 내내 그 책임과 고통에 무게를 실었다.



주석 2020-05-22 131017.jpg



현실은 드라마보다 무겁다. 앞서 소개한 영상의 댓글에는 민간조사기업의 증언이 달렸다. 댓글은 약소하게나마 불륜의 현실을 보여줬다. 남겨진 피해자들은 새로운 삶을 찾거나 배우자를 기다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끊을 수 없는 자녀들이 있었고,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미련이 남았다. 이것이 '부부의 세계'가 다룬 현실의 책임과 고통이다.


'부부의 세계'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이야기가 끝나도, 현실 속에는 아직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드라마 이후의 현실 속에서 섣불리 끊을 수 없는 책임과 고통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4. 책임



사람은 모두 각자의 책임을 지고 산다. 일이 주어지고 완수해내야 하는 책임 말이다. 책임(責任)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책임은 '할 일'이다. 할 일이 있고, 일에 대한 결과를 만들 약속이 있다. 이후에 결과에 따른 보상과 제재까지,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책임을 진다'라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책임이 있다. 아침에 출근해 일하는 것은 책임이다. 돈을 받았으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것 또한 책임이다.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서로 함께한다는 약속이다. 이 책임은 혼인신고와 결혼식을 통해 확인되고 이어진다.


하지만 모든 일에 명확한 책임이 주어지진 않는다. 어떤 일은 구두로 계약되거나, 서로의 신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신뢰를 통한 책임은 무책임하게 깨지기 쉽다. 심지어 명확한 계약으로 이루어진 결혼이나 보증도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 마음이 변했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약속들이다.


책임은 주관적이지만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책임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 무게를 알고 있는 것이 책임의 시작이다. 좀 더 무겁게 생각하지 못한 관계에 대해 부끄러움이 올라오는 것, 그 지점이 '부부의 세계'가 말하는 책임일지도 모른다.


 

 

김용준.jpg

 


[김용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