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자 출입증이 생기면 놀이 기구를 공짜로 타고 싶었어 -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미국 괴짜 소설가의 일상 엿보기
글 입력 2020.05.1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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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인 저자의 산문을 엮은 책이다.


미국 동부 지역 잡지사로부터 취재 요청받아 바라왔던 기자 놀이를 하며 방문한 미국 중부 일리노이 축제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경험과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를 감상한 후 적은 에세이 등 다양한 주제가 교차하며 책장이 넘어간다.


글을 읽다 보면 가끔씩 저자의 괴짜적이고 시니컬한 사고관을 엿볼 수 있는데 필력이 좋아서인지 심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나 표지의 자유로워 보이는 인물화는 실제 작가의 느낌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가볍게 전철에서 읽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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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기자 신분이었던 적이 없다. 내가 기자 출입증을 갖고 싶은 주된 이유는 공짜로 놀이 기구 등등을 즐기기 위해서다.”

- p.009


 
도입부부터 저자의 괴짜스러운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치 한국인들이 ‘수험생 혜택이 필요한데 수능시험 원서 접수나 한번 해볼까? 물론 고사장에는 들어가지 않을 거야’라며 농담하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다.

저자는 이렇듯 가벼운 농담거리를 던지며 글을 시작한다. 잡지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문가인척하며 취재거리를 찾아 나서지만 결코 그 과정과 결과물의 깊이는 얕지 않았다. 오히려 먼 나라의 나에게도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켜 두세 번 읽어보고 싶은 구절들이 꽤 있는 편이다.


“내가 아직도 그리워하는 몇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내가 중서부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이상하고 망령된, 그러나 굳은 확신으로서 내 주변의 모든 게 다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기묘하고 묵직한 기분을 정말 나만 느낀 걸까? 내 외부의 모든 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을? 모든 게 어른들의 신비한 활동을 통해서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되었다는 생각을? 이런 기억이 있는 사람이 또 없을까?”

- p.020


 
영화 <트루먼쇼>를 연상케 하는 재미있는 발상이 나왔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즐거운 망상이다. 저자는 본인이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확신에 상당히 편집증적’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는데 순수한 어릴 적의 사고관과 성인의 시각으로 분석한 서술이 흥미롭다.

나 역시도 나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는 건 아닐까 상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우연히 <트루먼쇼>라는 영화를 접한 후 깨달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도 그 영화를 함께 본 가족들도 본인도 저런 생각을 어릴 때 가끔 했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지만 어릴 땐 앞뒤 상황 고려할 것 없이 마냥 그런 의심을 품곤 했다. 참으로 유아기적에나 할 수 있는 순수하고 맑은 상상이었던 것 같다.


“돼지도 털이 있다! 나는 돼지에게 털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 p.028



지역 간의 감수성 차이와 핵심 가치관에 대해 친구와 논하면서 진지한 이야기로 접어드나 싶더니 갑자기 돼지 타령이다. 그런데 이 부분마저 심히 공감이 되어 웃음이 난다.

사람은 가끔씩 이렇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개체의 모르는 점을 발견하게 되어 놀라는 경우가 간혹 있다. 저자의 경우는 돼지로 표현하였지만 대상만 바꾸어보면 자신의 경험과 맞대어 떠오르는 기억들이 많이들 있으리라 생각한다.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혹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의 색다른 이면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놀라움이란! 잡지사의 기고를 위해 시작한 취재가 어느덧 인생의 깨달음으로 발전해나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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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독자라면 더 읽기 쉬운 책이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사실에 근거한 산문이다 보니 아무래도 저자의 고국인 미국에 대한 문화 이야기가 곳곳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단순 묘사라 보일 수 있으나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그만큼 치밀한 현실 반영 서술과 또 그 상황을 이용해 삶에 대해 빗대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현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문학비평, 글쓰기 창작 수업, 에세이 등 다방면의 문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지라 문장들이 잘 읽히는 편이다. 날씨 좋은 날 창가에서 탐독할 도서로 추천하고 싶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 David Foster Wallace Essays -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옮긴이 : 이다희

출판사 : 바다출판사

분야
문학>에세이

규격
138*214mm

쪽 수 : 288쪽

발행일
2020년 04월 17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89932-53-4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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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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