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스승의 날

그때 감사하다고 말할 걸
글 입력 2020.05.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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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다. 누군가는 은사님을 찾아뵙는다는데 나는 찾아갈 분이 없다. 매년 다른 선생님에게 같은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며 자라왔으니 대체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스승은 중학교 3년 선생님으로 한정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다시 또 3년간의 선생님이 스승으로 한정된다. 대학에 들어가 교수님과 학부생이 되면 기존의 스승-제자 관계와 다른 사제지간이 된다. 대학이라고 과에서 교수님을 챙기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나는 과에서든 개인으로든 스승의 날이라고 교수님을 챙긴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스승의 날 떠올릴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초중고 통틀어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도 있고, 타 전공 교수님이나 교양과목 외래교수님도 떠오른다. 초중고와 대학교 십 수 년을 돌이켜보면 나는 제법 스승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촌지 문화가 남아있었고, 스승의 날 선물을 챙기는 게 자연스러웠다. 어릴 때는 내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기에 부모님이 고마운 마음에 선생님을 챙겨주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까운 곳에서 선물을 받고 태세 전환한 선생님의 사례가 있었다. 90년대 후반에는 촌지를 받으려고 의도적으로 학생에게 트집을 잡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좋아 일부러 저학년을 맡는 베테랑 선생님들이 공존했던 시절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촌지 문화는 거의 사라졌고, 선생님들도 대놓고 촌지를 거절했다. 하지만 정말 안 챙겨도 되는 것인가 고민하던 몇몇 학부모는 케이크 상자에 봉투를 숨겨 보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절대 뭘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 시작했다. 과도기를 지나 깨끗한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한 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케이크를 사고 풍선을 붙여 스승의 날 선생님을 축하했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하지 왜 돈을 걷어? 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축하하는 게 대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소하고 귀여운 마음인데 그 때는 조금 귀찮기도 했다.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는 김영란 법 시행으로 교수님들이 선물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입학할 때만 해도 과에서 스승의 날 챙긴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작은 선물을 들고 와 '오다 주웠어요'하면서 장난스럽게 두고 가곤했다. 난 스승의 날을 챙긴 적은 없고, 도움을 받은 교수님께 다과를 선물로 드리거나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리는 정도로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스승의 날 선생님을 찾아뵌 적도 있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적도 있지만, 이미 옛날 일이고 스승의 날은 남의 일이 되었다.


*


어릴 땐 사람들에게 저마다 은사님이란 존재가 하나씩 있는 줄 알았다. 그냥 은사님이란 단어가 익숙해서 세상에 많이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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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때 담임선생님은 젊은 분이었다. 연차에 비해 담임을 빠르게 맡았다고 했는데, 젊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생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이 덜했다. 어른이지만 우리와 가까운 어른이라고 할까? 나에게 그 선생님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과 달리 선생님의 담임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나만해도 사춘기였고, 어른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이 있어서 선생님에게 마음을 다 열지 않고 얌전하게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신경써준 선생님이 고마워서 언제 한 번 스승의 날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날따라 학교가 빨리 끝나 즉흥적으로, 음료수를 사서 졸업한 중학교로 향했다. 그날 선생님에겐 무슨 일이 있었고, 선생님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계셨다. 텝스 이야기를 하는데 고작 고등학생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화제였다. 어린 선생님이란 것도, 선생님에게 대학원이란 것도 무슨 의미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겐 큰 어른인 선생님에게 어려운 일이 있다는 것에 놀라기 바빴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그때 참 큰일을 하고 계셨다. 나 하나도 벅찬 20대에 수 십 명의 어린 학생들을 케어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당시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은 지금의 나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은 일인데. 그걸 알았더라면 그 때 선생님께 따뜻한 말이라도 전하는 건데, 선생님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다. 선생님도 우리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고마운 마음에 죄송한 마음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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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면, 생각나는 교수님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교양, 다른 한 분은 타전공. 전공에 애착이 없었던 건 아닌데 여기저기 관심이 많았을 때라서, 좋아하는 교수님들의 강의 위주로 시간표를 짜곤 했다. 교수님들은 모르시겠지만, 그 당시 나는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던 시기라 좋아하는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이 나에겐 의미가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아껴먹듯, 나는 매주 좋아하는 강의를 아껴 들었다. 뒷자리에 앉으면 집중이 되지 않으니까 늦지 않게 들어가 앞쪽 자리를 놓치지 않고 강의를 들었다. 잘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알고 싶은 욕심에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께 질문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열의를 내뿜었다. 그게 교수님들께도 느껴진 건지, 관련된 서적을 추천 받거나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책을 선물해주는 사람에게 많은 호감을 느꼈는데, 좋아하는 강의를 하는 교수님들이 책을 주시니 이래도 되나 싶게 좋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선물을 드리고, 연락이 닿는 분께는 졸업하고도 한 번씩 근황을 전했다. 연락을 더 하고 싶었는데 교수님께는 어떻게 연락을해야 하는 건지 몰라서 어영부영하다가 때를 놓쳤다.


이 글을 쓰면서 고마운 분들이 생각났는데 감사의 말을 전할 방법이 없다. 그때 스승의 날을 챙겼으면 지금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까. 기회가 있었을 때, 남들이 하는 일을 나도 좀 따라하고 살 걸. 스승의 날이라고 감사하다고 할 걸,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도 드릴 걸. 시간이 너무 흘러 마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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