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이 녹아있는 전쟁의 선율 - 영광의 깃발 [영화]

글 입력 2020.05.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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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영광의 깃발(Glory, 1989)》이다. 《영광의 깃발》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미국 남부전쟁 당시 북부연방 최초의 흑인 부대인 54연대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당시 흑인 노예였던 이들이 자원해서 부대를 결성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또 패배하는 모습을 그려낸 역사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당시 아카데미 3관왕,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와 수상을 이루어낸 작품이다. 물론 이러한 수상의 배경에는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 했다는 점과 미국적 애국심을 다루었다는 부분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매력이 거시적인 역사 관점으로는 주목하기 힘든 전쟁 당사자 개개인의 사정을 세심하게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루할 수 있는 타국의 역사에서 오는 깊은 감동을 공유하고자 한다.

 

우선 영화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미국 역사를 간략하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영화 내에서도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서술될 수도 있고, 영화를 감상한 나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 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 위주로 소개한다.


북부 연방과 남부 연방의 전쟁에 남부 주(州)들의 흑인 노예들이 북부 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선포하는데, 이에 남부 연방은 북군(北軍) 소속인 모든 흑인 노예들에게 자신의 일터로 돌아올 것을 명령하며 돌아오지 않을 경우 남부 사회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북군 소속의 흑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쟁을 계속한다.


북군의 이러한 흑인 군인들을 모아서 54연대가 창설되고 쇼(Shaw) 대령이 이들의 연대장으로 부임한다. 그러나 54연대는 다른 백인 부대와도 차별을 받으며 연방으로부터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쟁에 투입되기보다 잡역이나 약탈 업무에 투입된다. 쇼 대령은 상사와의 대담을 통해 가까스로 전투기회를 얻어낸다.


그들의 마지막 전투는 와그너 전투(Fort of Wagner)로 알려져 있는, 탁 트인 해변에 위치한 남부군의 요새를 함락해야하는 작전이었다. 특유의 악천후와 불리한 전장 때문에 모두가 꺼리던 전투에 쇼 대령의 자원으로 54연대가 이 전투에 투입된다. 결국 이 전투로 인해 54연대 600여 명 중에서 120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을 입게 된다. 쇼 대령과 은 이 전투에서 사망하고, 기수(旗手)였던 카니(William Harvey Carney)는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전투는 패배로 끝나지만 54연대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전국 흑인노예들이 북부 연합에 자원해서 참전하게 되고, 훗날 링컨 대통령은 전쟁 승리의 공을 54연대의 주역들에게 돌린다.


 

[크기변환]Ft.Wagner.jpg

 

 

단순한 역사적 사실과 수치의 나열로는 파악할 수 없는 부대원 개개인의 사정이 영화에서 섬세하게 그려진다. 처음에는 북군에 흑인이 많지 않았고, 그 입소문을 통해 차차 흑인들이 늘어난다. 이들 중에는 가족을 잃어 혼자 노예로 지내던 사람도 있었고, 북치기 소년도 있었고, 책벌레도 있었다. 이들은 일반 가정의 노예로서 살아야 했던 억압적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군인으로 생활하는 것은 노예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다른 백인 부대와 차별받는다. 흑인들은 전투력이 더 낮을 것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잡역에만 투입되기도 하고, 백인 군인들의 조롱에 맞서야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전투에 투입될 수 있게 되고 영광을 얻는다. 패배의 그림자가 짙은 와그너 전투에 두려움을 감수하고 투입할 수 있었던 것도, 군인이 됨으로서 되찾은 자존감과 스스로의 명예 덕에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와그너 전투 전날 밤 54연대 부대원들이 모여서 마지막으로 출정식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 출정식은 식순이 있는 마냥 딱딱한 출정식이 아니다. 그들은 숙영지 주변에 바닥에 모여 앉아서 바이브가 살아있는 즉석 음악회를 벌인다. 전쟁 직전의 긴장감과 재즈 리듬이 섞여서 묘한 숭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모두들 비트를 깔아주고 각자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포부를 밝힌다. 이 중에서 한 명의 대사가 특히 인상 깊었다. 그는 전투에 나가기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가족도 없어서 전쟁이 끝나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자기한테 가족은 54연대 부대원들인데 전투 때문에 자신의 가족을 잃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전쟁이라는 거시적인 정치-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삶에 대한 것으로 치환해버리는 장면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연방 헌법 해석에 대한 각 지역 간의 차이, 그밖에 노예제와 지역감정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북부와 남부 연방은 각각 자신의 군대를 창설하여 전쟁을 이어갔다. 그런데 정작 개인의 삶 속에 연방 헌법이라는 키워드는 내제되어 있지 않다. 노예제의 경우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긴 하지만, 젊은 사람들을 전장으로 불러온 것은 노예제 타도에 대한 정의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600명 흑인의 부대는 600개의 삶을 짊어지고 있었다. 노예제 폐지와 지역갈등 청산 이전에, 600개의 삶을 일으켜야하는 과제를 지닌 공동체로 작동하는 것이다.

 

백인 군인들이 (같은 북부 연방 소속이면서도) 잡역을 하는 54연대 군인들을 조롱한 것도 이유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진흙탕 속에서의 전쟁이 계속되고 어떠한 형이상학적인 사고도 발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백인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피부색을 토대로 흑인들을 깎아 내린 것이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피부색을 토대로 비겁하게 우위에 오르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정당화될 수 없는 이 비겁한 조롱은, 가진 것 없이 전쟁에 투입된 처지의 사람으로서 할 수 있었던 가장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크기변환]glory.jpg


 

와그너 전투 전날 밤에 울려 퍼진 이들의 54연대의 노래는, 600개의 삶을 안고 달리는 한 군부대의 비가(悲歌)이다. 이 노래는 슬프고 재치있고 결연하고 숭고하다. 온갖 모욕과 고난을 겪은 54연대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상연한 이 음악극에는 역사와 개인의 사정이 녹아있다. 《영광의 깃발》을 보게 된다면 이 장면을 놓쳐선 안될 것이다.


역사영화를 비롯해서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주제의식을 토대로 서사의 추동력을 얻는 영화들이 있다. 그러한 영화들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영광의 깃발》 역시 큰 기대 없이 보게 되었다. 물론 《영광의 깃발》의 모든 장면들이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해는 《영광의 깃발》을 더 자세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전 지식 없이도 이 영화가 제공하는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전쟁통에 녹아 있는 개인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구슬프고 재치있는 선율을 느껴보길 바란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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