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승의 날 맞이, 다시 보는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존 키팅 선생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글 입력 2020.05.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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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문득문득 학창 시절 선생님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교무실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학생이었고 그만큼 내 학창 시절에서 선생님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던 나에게 선생님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들은 합법적인 휴식시간이었고 걸릴 일 없는 일탈이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을 더 많이 만나기 위해서 질문을 일부로 만들어 간 적도 많았고, 방과 후 수업 신청에 성공하기 위해서 새벽 늦게까지 새로 고침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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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선생님들을 좋아하던 내가 장래희망으로 선생님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던 적이 없었던 이유를 지금에 와서야 돌이켜 보니 아마도 매년바뀌는 제자들에게 새로이열정을 가지고 애정을 줄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는데, 누군가의 삶의 지침이 된 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는 많은 스승이 있고 제자가 있다. 스승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제자를 가르친다. 제자들도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스승의 신념을 따르거나 또는 흘려버리거나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성장기의 소년, 소녀들에게 스승의 몇 마디는 큰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힘과 영향력은 보이지 않는 사이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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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취사선택할 수 없다면 적어도 교단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려 했던 영화가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졸업생의 75퍼센트 이상이 아이비리그로 입학하는 미국의 웰튼 아카데미에 존 키팅 선생님이 새로 부임한다.


그는 수업 중 교과서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하고 갑자기 책상에 올라가 버리기도 한다. 별거 아닐 수 있는 이런 행동들은 웰튼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키팅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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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수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닐과 토드가 토드 아버지의 선물을 땅으로 내던져버리는 장면이 큰 여운을 남겼다. 아버지에게서 작년과 똑같은 선물을 받은 토드를 보며 닐은 단번에 토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아버지의 압박, 자동화된 공부 그리고 누군가의 꿈을 사는 삶. 닐과 토드는 어차피 내년에 또 받으면 된다고 하면서 필기구 세트 선물을 힘차게 던져 버린다. 이런 그들에게 존 키팅 선생님의 수업은 무슨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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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팅 선생님이 하는 말을 열심히 받아 적다가 이런 내용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필기한 내용을 지우고, 이상한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에게 "저런 게 시험에 나올까?"라고 하는 캐머론을 보면서 또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지금도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할 줄 알지 내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하는 데는 아주 서툴다. 여러 시도를 해 보아도 자꾸만 익숙한 길을 걷게 된다. 아무래도 알을 깨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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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닐이 자살하기 전 날 밤, 아버지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닐은 아버지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아이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차분하게 부모님께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고 결과물로 보여주면 된다고들 하지만 그것이 힘들기에 청소년이고 학생인 것이다. 더 배려하고 들어줘야 할 쪽은 좀 더 많은 삶을 살아온 어른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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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공부를 강요하면서 어른들이 내세우는 약속은 "대학가서 너 하고 싶은 거 해"라는 말이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정말 폭력적인 말 중에 하나였다.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의 지시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이미 주체적인 선택을 할 능력을 잃은 상태에서 뜬금없는 자유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나는 물론 누구보다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그 당시에 대학입시가 아닌 것들에도 진지했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존경스러운 생각이 든다.

 

웰튼 아카데미의 교장은 키팅 선생님의 잘못된 지시로 닐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닐은 과연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또 아버지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게 된 것일까? 이 모든 것의 원인은 키팅 선생님일까? 사람은 결코 단 한 번의 자극으로 변하지 않는다. 단지 키팅 선생님의 생각이 닐의 생각과 같았던 것이고, 닐은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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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곳에 있고 또 긴 시간 동안 어른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라나는 가장 진취적이어야 할 곳이 가장 보수적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변화 없는 생각을 경계해야 하는 공간에 키팅 선생님 같은 분이 존재하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 큰 행운이어야 한다. 웰튼 아카데미는 결국 변한 것이 없지만, 영화마지막 장면에서 책상 위에 올라간 학생들은 이제 다른 시각에서 남들 보다 더 멀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오 캡틴, 나의 캡틴", 키팅 선생님이 자신을 캡틴이라고 부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자신이 앞장서서 방패막이 되어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죽은 시인과 함께 고민과 고통을 나눌 스승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스승의 날 때에는 꼭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야겠다.

 

*

 

사진 출처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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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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