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들을 비껴간 욕망의 파도 그 한가운데, 보이지 않는 정원 [도서]

김유진 소설가의 소설집 보이지 않는 정원에는 파도가 있다
글 입력 2020.05.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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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무언가가 결핍되었을 때 사람은 그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필요를 기반으로 욕구가 생기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욕구는 욕망이 되어 뻗어나간다.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욕망이 발현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삐딱한 선을 그리며 비껴가기도 한다. 그럴 때 욕망은 사람들의 속내에 머물며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다.


실현되지 못한 욕망은 이미 일어난 사건 혹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과 연결된다. 가끔 뒤돌아보면 그 사건들은 눈을 가늘게 떠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내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뒤돌아보는 그 순간 알지 못하는 기운이 엄습하며 무엇도 돌이킬 수 없는 그곳으로 나를 잡아 이끌 수도 있다.


돌연 뒤를 돌아본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일상적인 감정들 속을 비껴간 이름 모를 욕망들 때문이다. 김유진의 소설집 보이지 않는 정원은 이 순간을 포착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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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소설가의 소설집 보이지 않는 정원은 8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책이다. 소설 비극 이후, 공원에서, 믿을 수 없는 얼굴, 보이지 않는 정원, 음의 속성, 파도, 대지의 노래, 글렌이 소설집을 구성하고 있다.


이 소설집의 모든 소설에서 깊게 내면을 파고드는 등장인물은 한 사람씩 뿐이다. 그들은 언제나 곁에 있는 외로움에 주목한다. 이들의 욕망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현되지 않고 이들은 혼자 욕망의 전초를 싹틔우며 무언가에 대한 결여를 뼈저리게 느낀다. 이들에게 외로움은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감정이 아니다.

 


수인은 문득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안개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던 버스 주변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을 열고 손을 뻗어보았다. 차고 습한 안개가 피부 위에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사라지고 태어나는 안개의 감촉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수인은 섬뜩했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 줄곧 머릿속에 흐릿하게 맴돌았던 생각이, 수인의 가슴을 새처럼 뛰게 한 불안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죽은 게 아닐까. 수인은 생각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는 사실 추락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한없이 가깝게 다가오던 바다는 허상이 아닌 실재가 아니었을까. 수인은 자신의 실존을 확인해줄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정원, 김유진, 문학동네, 2018, 31-32쪽)


 

수인과 같은 등장인물들에게 외로움은 결실을 맺지 않은 욕망들이 이뤄낸 세계가 등 뒤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등장인물을 비웃는 웃음이다. 외로움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의 징그러움을 등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어딘지 모르게 뒤가 켕기는 듯한 기시감의 산물이다. 때로 기시감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무관심한 타인의 진심일 수도 있고 소리굽쇠의 진동수처럼 항상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명백한 것이었지만 본인만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욕망을 뒤로 한 채 타인의 관계 속 더 이상 깊어지지 않고 비스듬히 비껴가는 순간 타인의 진실을 알아버린다면 그것은 뿌연 창가에서 경치를 구경하다 ‘이중창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같은 책, 127쪽)에 화들짝 놀라는 기분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은퇴한 건 후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 시간가량 걸리는 조율 작업 동안 오줌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은퇴하기 전 몇 달간 송선생은 매번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집주인에게 화장실 사용을 허락받았다. 이영은 그가, 자신이 세운 규칙과 어찌할 수 없는 생리현상 사이에서 무력감을 느꼈으리라 짐작했다. 오십 년 가까이 이어온 생업을 중단시킨 것은 오랫동안 앓았던 건초염 따위의 질병이 아니라 작은 수치심의 반복이었다. (같은 책, 134쪽)


 

내면 깊숙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독백으로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각 소설에서 수인과 이영과 같이 한 명씩이다. 하지만 소설들은 자신이 지나쳐버린 욕망이 하나의 사건, 무지막지하고 근사한 사건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가능성을 돌아보는 심정은 보편적인 것이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때 진은 여기 참석한 모든 사람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온 힘을 다해 어색함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책, 229쪽)


 

타인이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타인의 관계를 관망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놀라운 일이다. 주인공들은 지난 사건과 인생과 욕망을 돌아보며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소외감을 느낀다.


그토록 외로움에 휩싸여 자신의 실재를 확인받기를 욕망하는 주인공들은 마침내는 자신의 감정이 타인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타인의 진실을 확인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조금 더 과감한 사건 속에 휘말리고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파도 속에서 욕망들과 뒤섞이게 된다.

 

김유진 소설가의 소설집 보이지 않는 정원은 외로움과 일어나지 않은 사건, 일어난 사건, 그것들의 주축이 되는 욕망을 중심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면서 인물들의 씁쓸하고 불안정한 마음을 보듬는다. 그 동안 인물들은 사건과 욕망의 파도 속에서 바다를 향해 움직이는 다른 인물을 환영한다. 어서 오라고, 어서 와서 뒤돌아보지 않고서도 자신을 마주 보라고. 심지어 바다가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혀 있을 때도 말이다.

 


선은 작별을 고하듯, 두 팔을 크게 휘저으며, 춤을 추듯 과장된 몸짓으로, 콘크리트 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같은 책, 201쪽)


 

 


김수연이다.jpg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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