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보다 더 참혹할 순 없다 - 예술과 나날의 마음

그리고 이보다 더 솔직할 순 없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이야기)
글 입력 2020.05.05 21: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민낯을 숨기려 한다.


 

적나라한 자신의 민낯을 제대로 마주하기는 보통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민낯이란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자신의 콤플렉스, 과거, 혹은 단점을 모두 일컫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어두운 단면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며 대다수는 그것을 포장하고 덮으며 살아간다. 세상에 완벽한 이는 없기 때문이다. 숨기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언젠가 나의 약점으로 다가올 소지가 있으며, 평생에 거쳐 숨겨야 하는 문제라면 이는 꾸준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일차원적인 ‘커버’는 건강하지 않은 사고를 가져오게 한다. 그렇기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거나 혹은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어 직면하는 자세를 가져 스스로가 당당해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스페인을 대표한 고야는 바로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법을 택한 화가이다. 그가 살고 있던 당시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많이 야기되었는데 그는 이것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작품에 드러내어 인간의 참혹한 모습과 끔찍한 시대의 현주소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인지 고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끔찍하고 기이한 그림을 좋아하는 화가’라는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솔직했을 뿐, 잔인한 것을 좋아한 변태는 아니었다.


 

131.jpg
<고야, 1746~1828> 스페인

 

 

 

끔찍한 그림의 대가로 불리게 된 속사정


 

저자는 ‘고야의 화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적이다 보면, 착잡한 생각들이 솟구쳐 오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현실을 이토록 섬뜩하게 바라보게 했는지, 왜 그의 그림에는 종잡을 수 없을 만치 기이하고 어두우며 잔혹하고 난폭한 사건과 인간들로 가득 차 있는지, 그가 살았던 당시의 현실은 어땠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자기 세계를 꾸려갔는지 궁금해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을 보면 광기 어린 군중의 모습, 기이하며 참혹한 미치광이, 악령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 등 결코 즐겁지 않은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섬뜩하다, 징그럽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그는 그저 ‘솔직했을 뿐’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1808년 스페인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전쟁이 발발하여 약 6년간 프랑스의 침공을 받는 암울한 시대가 이어졌다. 나폴레옹 군이 포르투갈을 공략하게 되면서 왕실은 영국에 모든 걸 맡긴 채 브라질로 망명하게 된다.

 


 

왕가를 바보처럼 그리다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은 그의 이러한 사회적 고발 성격을 잘 드러내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는 총 14명으로 모두가 세심한 사전 조사 속에 진행되었을 정도로 철저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등장하는 인물들 대다수가 못나고 멍청해 보이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 중앙에 위치한 마리아 루이사는 나이 들어 쭈글쭈글하고 못생긴 모습이며 얼굴을 돌리고 있는 페르디난도 7세의 약혼녀, 무능해 보이는 왕의 모습 등 일반적인 왕가의 초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가 많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왕가에서는 이 초상화를 매우 흡족해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왕족은 일반인들의 미의 기준이나 평가 항목에서 완전히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기에 그로 인해 생긴 강하고 자신감이 작용했을 거라 말한다.

 

이유야 어쨌든 고야의 이러한 미화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오히려 조롱하는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올 정도로 적나라한 그림을 보고도 개의치 않고 좋아했다는 왕가의 자존감을 높게 사고 싶다. 참고로 왕가를 조롱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해석은 정설은 아니며 고야의 강력한 후원자가 왕실이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고야는 정말 눈에 보인 현실 그대로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무능한 왕실의 현실을 고발하고자 용기를 낸 화가, 혹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개의치 않았던 왕실 중 어느 한쪽이 진실이든 간에 이를 통해 교훈을 얻을 부분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림2.png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1> 캔버스에 유채, 280x336,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권력의 학살 현장 속에서 항거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 그림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처참한 사회를 용기 내어 고발하였다는 의견과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을 때가 아닌 교묘하게 프랑스군이 물러나기 시작하며 페르난도 7세의 군대가 돌아오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회적 고발이 목적은 아니었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해당 그림은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데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인 조세프를 스페인 왕위에 앉히게 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이 폭동에 가담했던 자들 수 천 명을 프랑스 군대가 제압하며 총살하였는데 바로 고야는 이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희생자와 가해자의 상황적 묘사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그림의 의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속내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과 그의 행보를 미루어 짐작했을 때 현실에 대한 고발, 혹은 인간 본연의 추악함을 이야기하려 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비인간적인 실태를 드러내며 피하지 않으며 시대적 상황이 후대에까지 전달이 되었으며 이러한 악행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많은 이들이 얻을 수 있었다.


 

그림3.png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1814> 캔버스에 유채, 268x347,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현실에 직면하는 자세에 대하여


 

어지러운 시대에 살았지만 궁중 화가로서 사회적 지위는 충분히 누렸던 고야이기에 그는 양쪽의 성격이 담긴 스케치를 모두 가지고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중의적인 태도를 드러냈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 충분히 외면할 수 있었던 위치였으나 그러지 않았고, 격변 속에서 작게나마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 이 화가를 나는 높이 사고 싶다.


본격적인 계몽 화가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현실의 처참함을 본인의 작품 속에 녹여냈으며 특히 1700년대 후반 고야가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광기 어린 인물들과 폭력의 현장, 전쟁의 섬뜩함을 표현하며 그만의 소리를 점점 높여나갔다. 나는 고야의 작품을 통해 숨거나 도망치지 않는 현실의 직시, 그리고 그로 인해 얻어질 개선과 자존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자는 메시지를 제의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개인의 문제이던, 사회의 문제이던.

 


“우리를 몰고 가는 맹목적 힘의 실체를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하는 일이다…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이렇게 직시하고 묻고 돌아보지 않는다면, 기존 현실에서 그 어떤 가능성은 실현되기 어렵다. 생각이 없으면 악덕은 되풀이된다. 생각의 부재는 가능성의 부재다. 생각 없는 삶은 이미 있는 것 속에 자기를 가두는 일이요, 이런 자기밀폐 속에서 굳은 채 스스로 죽어가는 일이다. 참으로 살고자 한다면, 살아서 진실로 자유롭고자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삶의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50p)


 

 

예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도모하기


 

예술은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교훈을 던져준다. 책의 저자도 ‘예술을 통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가자’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나는 고야에 대해서만 언급했으나 책에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카라바조, 샤르댕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과 그 속에 담긴 미학의 개념이 서술되어 있다. 작품을 통해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마주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꾸미기][크기변환][포맷변환]예술과 나날의 마음_입체.jpg



책 소개


 

예술로 삶을 사랑하는 방식

 

이 책은 저자 문광훈이 예술을 통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한 미학 에세이다.


문광훈은 이 책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미학을 연구하며 아껴온 미술ㆍ음악ㆍ문학작품을 소개한다. 고야나 렘브란트, 카라바조나 페르메이르의 그림에 대한 해설이 있는가 하면 '형상'이나 '바로크' 또는 '숭고' 같은 미학의 주요 개념에 대한 논의도 있다. 그림을 통해 시와 철학의 관계를 성찰하고, 문학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말하기도 한다. 나치즘 체제에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뎌낸 루치지코바의 바흐 음악과 쳄발로 연주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다. 독자들은 예술가의 생애,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 작품에 대한 해석을 접하면서 익숙한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잘 알지 못했던 작품을 새롭게 마주하며 미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전수연컬쳐리스트.jpg

 

 

[전수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