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인 찾기가 아니라 ‘나’ 찾기 - 썸원 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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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도 않은 줄 알았던 내 연인. 5미터 옆 당신인가요?”
지금 당장이라도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문구지만 아쉽게도 5미터 옆에 내 연인이 있어도 연애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내가 불면증을 앓고 있고 연애할 정신이 없다면 더욱더. 잠들지 못하는 멜라니와 레미는 같은 날 약국에서 약을 구매한다. 바로 옆 건물로 창문을 나란히 두고 5m 거리에서 살고 있지만,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두 사람. 그들은 오늘도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소심한 연애 세포를 가진 남자 ‘레미’, 구 남친 극복이 과제인 여자 ‘멜라니’. 썸세권에서 만난 두 파리지앵을 소개합니다.”
레미는 “소심한 연애 세포를 가진 남자”이기 전에 로봇에게 밀려 일자리를 잃고 밤마다 잠들지 못한다. 관객은 레미의 ‘소심한 연애 세포’를 만나기 전에 세상에 치여 공허하게 걷고 있는 남자를 만난다. 멜라니는 단순히 “구 남친 극복”을 하지 못한 여자가 아니다. 헤어진 연인을 놓지 못해서 울고 극복하기 위해 SNS로 가벼운 만남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무언가 계속해서 비어 있는 기분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의사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의사 앞에 앉은 레미는 묻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하죠? 그냥 이렇게 아무렇게나 말하는 건데 치료가 되나요? 어색해하다가도 레미는 점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말로 내뱉다 보면 자신의 우울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가게 된다는 의사의 말을 미심쩍어하면서도 꾸준히 방문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들어주고, 환자가 생각해봐야 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상담을 받는 인물들을 보며 관객은 커다란 질문 두 개를 가지게 된다. 멜라니는 왜 헤어진 연인과의 관계를 끝맺지 못하고 있을까. 레미는 왜 자신이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도시의 사람들
미묘하게 엇갈리는 두 사람의 두근두근 로맨스를 기대하게 만드는 홍보 덕분에 두 사람이 언제 마주치게 될까 기대했는데, 실제 영화는 상당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썸세권’ 속 두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였다. 이 관계는 멜라니와 레미의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 감내해야 할 이별과 마음의 상처다.
멜라니와 레미는 자꾸 한 프레임에 같이 잡힌다. 하지만 서로를 인식하진 못한다. 멜라니의 담배 연기가 레미의 베란다로 침범하기도 하고, 커다랗게 틀어놓은 노랫소리가 서로에게 들리기도 한다. 분명 바로 옆에 살고 있는 누군가. 항상 같은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고 같은 다리를 건너고 같은 사고를 공유하면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두 사람은 파리라는 도시에서 혼자 살면서 각자의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지만 시간은 무색하게 흐르고 있다. 맡게 된 중요한 발표를 끝마쳐야 하고, 기계에 밀려 얻게 된 새로운 일자리에도 적응해야 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집에만 박혀 있을 시간이 없다. 집 앞의 기차는 사람들을 태우고 계속 어딘가로 향한다.
시간은 흘러서 연말도 지나고 멜라니의 발표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끝났다. 발표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멜라니는 전화를 건다.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이별 앞에 담담하게 서 본다.
옆 건물에서 난 화재 사고를 기점으로 레미 역시 잊고 살았던, 잊고 싶었던 이별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제 무의식에 거부했던 길로 걸어 들어간다. 가지 않았던 길로 들어서고, 가고 싶은 길을 찾아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마음을 치료하는
레미는 편협한 사고의 시골에서 벗어나 파리로 왔다. 보수적인 부모님에게 정신과를 다닌다고 고백한다. 그냥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처럼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맞다.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 역시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마음의 병이 덧나지 않도록 빠르게 치료해줘야 한다.
정말 귀여웠던 너겟.
영화를 봐야할 이유 중 하나다.
관계가 끝나는 건 항상 힘들다. 가장 친밀한 관계였던 연인과 하루아침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동료와 멀어질 수도 있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정을 준 반려동물이 사라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은 항상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세상이 나의 의도와 상관없는 다른 영향을 끼쳐와 나를 힘들게 한다.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 속에서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그러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뒤따라간다. 우울을 모른 체하고 불면을 겪는다. 이제 우리는 거리낌 없이 정신과로 가서 마음을 치료할 필요가 있다.
멜라니와 레미는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춤을 추러 나온다. 좋아하지만 하지 않았던 춤을 이제는 시도해본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몸을 맞대고 춤을 추며 영화는 끝난다. 수업에 나온 멜라니와 레미의 모습에 안도가 된다. 드디어 서로 마주 보고 자기소개를 하는 두 사람. 이제 서로 친밀해지며 공통점을 찾아갈 미래가 그려지고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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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연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을 내 진정한 연인을 찾아가는 것 같은 포스터와 다르게 내면을 파내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 헤맸다. 묵묵히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며 담담하게 극복해냈다. 단순한 로맨스물로 오해해서 좋은 영화를 놓칠 뻔했다. 도시의 사람들에게, 이별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아직 자신이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진수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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