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4등은 영웅이 될 수 없나요 [영화]

영화 <4등>을 통해 본 관심 가질만한 주제들
글 입력 2020.04.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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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인기를 얻었던 유행어이다. 이 말이 유행했던 이유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가 아닌 지금에 와서 보더라도 인기를 끌만한 말이었다. 모든 것이 점수와 등수로 매겨지는 세상. 어떤 것에서든지 손가락에 꼽히는 등수 안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행복하고 완벽할까?


영화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여러 편의 영화들 중 하나이다. 영화는 '수영'을 소재로 수영선수인 준호와 준호를 1등으로 만들고 싶은 엄마, 그리고 그것을 도울 코치 광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누군가가 '영웅'이라며 선수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말에 "에이, 4등이 무슨..."이라는 반응의 말과 함께 시작된다.

 

 

 

스포츠와 재능의 본질


 

올림픽은 축구, 야구, 농구 등의 몇몇을 제외한 스포츠 종목 전반에 있어서 가장 큰 축제이자 경쟁이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쿠베르탱의 말이 무색하게도 많은 이들은 대회의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승리에 기대를 걸고, 목표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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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서두에서 시작된 4등이라는 등수. 준호의 엄마는 4등이라는 등수에 진절머리를 낸다. 심지어는 연달아 4등을 하는 아들을 향해 '꾸리꾸리한 인생'이라며 4등이라는 등수를 폄하한다.


그렇다면, 4등은 '재능 있다'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걸까. 영화에서 준호의 엄마는 누군가에게 준호를 소개할 때 항상 '수영에 재능이 있다'라고 말하고, 코치 광수 역시 준호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눈에 재능이 있다고 인정하며, 심지어는 준호 자신도 자신이 수영에 재능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4등은 재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4등은 좀처럼 축하받지 못하는 등수다. '조금만 더 팔을 크게, 빨리 젓지. 조금만 더 열심히 하지.'라는 핀잔을 끊임없이 듣는다. 그렇다면 만약 순위를 따질 때, 1-2-3등이 아닌 1-2-3-4등을 기준으로 메달을 받았다면 반응은 완전히 달랐을까?

 

준호는 광수의 체벌과 혹독한 훈련 뒤, 꿈에 그리던 '순위권'에 들게 되고, 대회에서 2등을 기록한다. 4등에서 3등을 뛰어넘고 2등으로의 눈부신 도약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2등 그 자체를 기뻐하고 축하해 주기보다는 '거의 1등'이라며, 이제는 1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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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반, 준호와 광수가 훈련 중 갈등을 빚는 장면에서 광수의 뒤로 보이는 현수막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 속에서 따로 포커스가 잡히거나 이목을 집중하는 현수막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경축'이라는 문구 사이에 쓰인 각각 2등, 3등을 차지한 두 사람의 이름. 정말 이 수영장에서 같은 대회를 나갔던 이들 중, 축하를 받을 기록을 남긴 것은 저 둘뿐이었을까. 집 앞 초등학교에 붙어있던 현수막이 떠올랐다. 정말 축하를 받을 아이들은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상을 받은 그 아이들 뿐이었을까.


영화는 체육계의 고착화된 관습인 '체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체벌을 묵인하는 준호의 엄마와 혹독한 체벌 후 "너 잘 되라고" 그런 것이라며 선수를 타이르는 코치. 준호는 맞지 않기 위해서 '잘'하려고 한다. 진짜 1등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맞지 않으려고 1등이 되려는 것이다. 후에 준호는 체벌을 거부하며 "때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으면서 메달을 따야 진짜 잘하는 거고,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도 알고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왜 알지 못하는 걸까.


이야기의 끝에서 준호는 대회에 나가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1등을 거머쥔다. 대회에는 목이 터지게 응원하던 엄마도, 거세게 몰아붙이며 코치를 해주던 광수도 없었다. 그러나 준호는 자신의 빛을 따라 헤엄을 쳤고, 자리에 없는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1등을 거머쥐었다.


준호는 대회장을 벗어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마주하며 씩 웃어 보인다. 1등이라는 순위에 만족하는 웃음이 아닌, 누구의 지시 없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결국 된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어린 천재, 천재보다는 어린이라는 것에 집중할 것


 

영화는 어린 천재의 부담감을 잘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재능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최고로 만들 수 있을까에 집착하는 부모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천재를 키워내려는 선생님. 그리고 재능이 있지만 어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고 어린 천재. 어린 천재는 정말 자신의 욕심만으로 1등에 이르려 노력하는 걸까.


물론 부모도 아이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삶은 뒤로 한 채 노력한다. 매일 새벽 네시에 훈련을 하는 아이와 선생님도 고달프지만, 그 뒤에는 천재보다 더 일찍 일어나 식사를 챙기고 매일 픽업을 하는 엄마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이가 먼저 요구하고 바랐던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체벌이 있을 것을 알고도 엄마는 광수와의 훈련을 선택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준호는 전혀 알지 못했다. 본인의 선택과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는 삶에서, 과연 아이가 천재로 거듭났다고 한들 결과는 좋다며 그 과정을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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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체벌을 당한 당사자는 준호이지만, 준호의 체벌을 원치 않던 체벌을 강행하고, 묵인하고, 분노함으로써 갈등을 빚은 이들은 어른들이었다. 어린이인 준호가 코치로부터 체벌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받는 것까지도, 강자인 어른들 사이에서의 결정이 필요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의 권리에 대해, 강자인 어른들의 관심을 통한 보장과 발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

 

<4등>은 가장 주제에 대해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운동 종목, '수영'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운동이 아닌 어떤 분야든지 해당될 주제를 담고 있다. 영화의 진행 내내 준호의 편이었던 나조차도 경기 중 빛을 따라가는 준호를 보며 마음을 졸였고, 1등이라는 결과를 보고 안심했지만 이내 그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꼭 1등, 4등과 같이 순위를 매기지 않아도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것의 가치를 깨닫는 것의 중요함이었다.


여담으로, 무엇을 보고 있느냐는 동생의 질문에 인권 영화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어떠한 배우가 나온다고 설명했을 때, 동생은 다소 놀라며 외국 영화가 아니었냐고 물었다. 자극적인 주제가 아닌 '인권'영화라는 말에 자연스레 외국 영화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인권 영화가 세상에 나오고, 더 많은 이들이 인권 영화에 대해 관심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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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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