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터넷과 사회 참여 예술 [시각예술]

인터넷에서 일어난 <장난감 전쟁>. 이토이(eToy) vs 이토이즈(eToys)
글 입력 2020.04.22 16:3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핵티비즘’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자신과 노선이 다른 정부나 기업 단체의 웹사이트를 해킹하는 행위를 말하는 단어로, 해커(hacker)와 행동주의(activism)의 합성어이다.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국제 해킹 그룹인 어나니머스(Anonymous)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들은 인터넷 검열을 반대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표현의 자유, 정의를 위한 해킹이라고 정의한다.


예술 분야에서도 핵티비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술에서의 이런 행동주의자들은 작품을 통해 감상자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그에 따른 어떤 실천을 필요로 하도록 독려한다. 특히 기존의 시각 예술을 넘어 웹 아트 또는 넷 아트와 같은 뉴미디어 예술은 인터넷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무대로 하므로 정치·사회·문화에서 더 자유로운 경향을 보인다.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바탕으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끌어내는 모습의 다양한 작가들이 있지만, 그중 재미있는 예시가 하나 있다. 바로 1999년에 일어났던 온라인 장난감 판매 업체인 이토이즈(eToys)와 스위스의 예술단체 이토이(eToy)의 트레이드마크 소송 사건이다. 이토이(eToy)는 스위스 합작 주식회사로 등록된 예술단체로, 1994년에 설립했다. 그들은 “LEAVING REALITY BEHIND”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활동하는 디지털 아트 그룹이었다.



이토이와이토이즈.JPG

▲이토이(eToy)와 이토이즈(eToys)의 로고

 

 

당시 이토이즈는 신생 인터넷 기반 소매 업체였고, 연말과 명절 쇼핑 성수기를 맞아 좋은 매출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객이 실수로 이름이 비슷한 이토이의 웹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었다고 불편함을 호소한 것으로 사건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도메인 주소는 's' 한 글자가 추가된 수준으로 달랐기 때문에 충분히 잘못 들어갈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이토이즈는 이토이에게 50만 달러 이상의 현금과 주식을 제안하며 도메인 이름을 포기할 것을 제안했다. 이토이즈의 대변인은 “시장의 혼란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술과는 상관없이 상표권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토이의 미술가들은 거절하였고 이에 이토이즈의 소송으로 사건이 진행되었다.


사실, 이토이즈보다 이토이가 2년 먼저 웹 주소를 등록했다. 이토이는 미국 법에 따라 운영되지 않는 비영리 예술 단체였고, 1994년에 설립 후 1995년에 사이트를 등록했다. 이토이즈는 1997년에 사이트를 얻고 미국 상표권을 얻었다. 여기서 법적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판사는 예술가들의 사이트를 폐쇄하는 예비 명령을 내렸다. 이토이는 부지를 철거하거나 하루에 1만 달러의 벌금을 내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토이워.png

 

 

소식을 들은 이토이의 팬들은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반(反)이토이즈 사이트가 생겨나고, 회사의 임원들에게 수백 통의 성난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이토이는 여기서 소송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장난감 전쟁>이라는 넷 아트 작품이자 웹사이트를 발표한다. 이는 이토이를 지키기 위한 정교하고 효과적이면서 장난기 가득한 저항 시스템으로, 이 작품을 통해 이토이는 이토이즈에게 대중적으로 반격한다.


이제 인터넷은 전쟁터가 되었다. <장난감 전쟁>은 이토이의 편을 드는 사람들을 포함한 넷 아트 관련 단체들이 이토이즈를 공격해 이토이즈의 주식 가격을 떨어뜨려 점수를 올리는 온라인 게임이었다.


참가자들은 온라인에서 이토이즈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온라인 채팅과 토론에서 이토이즈를 비판하거나 잘못된 서버 로그를 파괴했다. <장난감 전쟁>은 온라인에 접속한 첫 이틀 동안 700여 명의 자원자를 확보했다고 한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인터넷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 소송은 이토이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캡처.JPG


 

이 전쟁은 약 2년간 지속되었다. <장난감 전쟁>은 이토이의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결론적으로 총 1,798명의 참여자가 이토이를 방어했고 이토이즈 주식의 가치는 약 45억 달러 감소했다. 물론 이토이즈의 자본이 떨어진 이유가 오직 <장난감 전쟁> 때문이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터넷 기반 예술을 이용해 핵티비즘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장난감 전쟁> 사건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기업과 예술 그룹 간의 논쟁이 여러 차례 발생했는데, 이제 싸움은 기업만이 우세한 대결이 아니게 되었다. 이는 이토이의 긍정적인 영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토이는 자신도 모르게 예술 그룹을 위한 어떤 넓은 길을 뚫어준 것이다.


*


이토이 외에도 여러 미술가 그룹이 정치와 기업을 상대로 한 도전적이고 사회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예술은 이제 정말 우리 옆에 가까이 와있고, 대중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점을 찾을 수 있다. 한편 그들의 ‘핵티비즘’적 작품과 실천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다. 사이버 불링과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요즘의 세상이 정말 인터넷과 떨어져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온-오프라인을 구분하고 가상과 실재를 구분하고 있지만, 이제는 이 경계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가상과 현실을 나누지만, 인터넷 속이 정말 현실이 아닐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PC를 넘어 스마트폰까지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공급되었다. 인터넷 세상은 우리가 사는 또 하나의 세상이 되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질문에 이제 아이들은 ‘어느 세상’을 물어보는 거냐고 되묻기도 한다.


가상공간이 영원히 ‘가상’으로 남아있지 않는 지금, 이와 관련된 논의와 관련 법안들이 필요하다.

 

 

[진수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