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 밤도 굶고 자지는 못할지언정 [도서]

글 입력 2020.04.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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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2019년 한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인 박상영 작가가 에세이집을 냈다. 『오늘 밤도 굶고 자야지』.


좋아한다는 표현에 인색한 편이다. 완벽하게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좋아한다고 하는 게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후 언젠가 찾아올 공허함이 무서워 괜히 그 어떤 것에도 열정 없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국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니,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라고 부정하지만, 다른 일들을 미뤄두고 그것만 하루종일 본다든가,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그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든가.


나에게는 박상영 작가가 그랬다. 특히 작가에 대해서는 함부로 좋아한다고 말하기 꺼려진다.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감히. 그 작가의 최신 근황도 다 따라잡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작가의 인터뷰도 다 읽지 않았으면서, 관련 비평들도 읽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내가.

 

이제는 단언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한다.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처음 접하고 『대도시의 사랑법』을 단숨에 읽었을 때도, 우연찮게 애인의 집에서 첫 단행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찾아 홀린 듯이 읽다가 빌려갔을 때에도, 그 후 망설임 없이 『오늘 밤도 굶고 자야지』를 결제했을 때도, 이미 나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상영 스티커’를 받고 기분 좋아하고 있었고, 유튜브에서 그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렇다. 이건 리뷰를 빙자한 팬의 글이다. 평소 에세이라면 치를 떨던, 그 어떤 자기계발적인 요소나 교훈적인 메시지에 염증을 일으키던 자의식과잉 비관적 독자가 10년 만에 에세이집을 정가로 구매하고 쓰는 리뷰이다. 그리고 다행히(인지 혹은 당연히인지) 박상영 작가의 첫 에세이 모음집 『오늘 밤도 굶고 자야지』는 ‘좋아하는 작가니까 참겠어’라는 감상이 아닌, ‘이러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지’하는 감상을 낳았다. 그래, 나는 그를 이러니까 좋아했었다.

 

 

 

1.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오늘 밤도 굶고 자야지』에는 작가 박상영의 직장 생활, 다이어트, 연애, 가족, 20대의 추억들이 담긴 스무 편의 에세이가 묶여있다. 매 에세이는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마무리 되곤 한다. 그리고 이 “오늘 밤은”에 붙는 ‘은’이라는 보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다짐은 늘 지켜지지 않는다. 그가 이 다짐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게 있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다짐이 단순히 ‘속이 더부룩하니 굶어야 겠다’나 ‘살이 좀 찐 것 같으니 굶어야 겠다’ 정도의 가벼운 결정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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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적 있지 않은가. 일상 속의 사소한 다짐 하나 지키기 어려운 일상을 살아갈 때. 그리고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혐오가 물밀듯이 찾아와서 견딜 수가 없을 때. 다이어트를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더 와닿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지금 온전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누군가라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패배감이다. 오늘은 분명히 굶고 자기로 했는데, 오늘은 분명히 공부를 어디까지 하고 자기로 했는데, 오늘은 분명히 열심히 살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그 다짐이 사소하면 사소한 것일수록, 그것조차 지키지 못한 한심한 자신의 인생 전체로 패배감과 실패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간다.


우리라고 지키고 싶지 않아서 지키지 않았겠는가.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은 다짐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바로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건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러니까 곧 삶을 버틴다는 건 너무 많은 변수를 안고 있다. 꼭 유난히 비극적인 날이 아니었더라도, 그날따라 누군가가 나를 푹 찌르는 상처주는 말을 했을 지도 모르고, 그날따라 지금도 생각하면 울컥하는 옛 기억이 떠오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해로운 순간이 찾아와 버리고야 만다. “넓은 세상, 긴 인생 속, 완벽히 홀로 남겨진 기분”(29쪽).


공허, 우울감, 자기혐오 같은 감정은 내가 아무리 최대한으로 하루를 살아냈다 하더라도 그 빈틈을 굳이 찾아내 헤집고 들어온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있었는데,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는데, 채워질 수 없는 어떤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꼭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그런 우울에 빠질 때마다 순간적으로나마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우리가 꼭 통제하고야 말 것이라 매일 다짐하는 사소한 다짐들일지도 모른다. 배달 앱을 켜서 시켜버리고야 만 야식, 공부 대신 택한 넷플릭스 등등……


박상영 작가는 말한다. “알아. 안다고. 누가 몰라.”(30쪽). 우리는 그저 너무 버티기 힘들었고, 버티기 위해서 오늘의 다짐을 또 저버리고 말았고, 다시 끝도 없는 자기혐오에 빠지고야 만다. 삶이 버텨야만 하는 것이라면, 휴식의 순간마저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자책에 시달려야만 하는 것이라면, 당장의 야식이 나의 이 고달픈 일생의 한 순간을 달래줄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 속 배달 앱을 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중이다. 지금 음식을 시키면, 한 시간은 더 늦게 자야 하고, 보나 마나 밤새워 위산이 역류할 테고, 어쩌면 회사에 지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럼 분명히 내일 하루를 완전히 망칠 것이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나는 또다시 억지로 눈을 감는다. 오늘 밤은 기필고 굶고 자야지 마음먹으며. (31쪽)


 


2. “살아있음의 거지 같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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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사람의 특징인지, 자기혐오로 점철된 하루를 티내지 않고 버티느라 온 노력을 기울인 사람의 특징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못돼먹은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배가 아파 힘들다. 넘치는 자신감와 자기애로 충만한 자아, 그게 어떻게 가능한 지도 모르겠거니와 미래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공감할 수도 없고 배알이 꼴린다. 그래서 오랜 시간 에세이라면 염증을 일으켰던 것 같다. 나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이 삶이 불확실한데, 마치 삶의 흐름이 완성된 어딘가로 수렴된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배려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 내가 알 만한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대개 1부터 100까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에세이라면 치를 떨던 내가 『오늘 밤도 굶고 자야지』는 꼭 다 읽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한 건, 불과 두 페이지를 넘겼을 때였다.



빙하처럼 추운 욕실로 들어가 건조한 몸에 미지근한 물을 끼얹으며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살아있음을 거지 같음을. (8쪽)



그리고 분명해졌다. 아, 내가 박상영 작가 이래서 좋아했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는 나만큼 ‘살아간다는 것’을 힘들어 했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의 특수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한때 지옥철을 뚫고 열정 없는 직장에 출근하던 직장인이었다는 데도, 다이어트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는 데도 완전히 탓을 돌릴 순 없다. 박상영 작가 자신에 따르면, 그는 “그 어느 순간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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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이 엄청나게 핫한 작가에게는 행복 말고 다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그는 나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회사에 다니면서 지난 3년간 단행본 두 권을 내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는 나와 다른 영역의 성실한 사람인 것만 같다.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을 것 같고, 지금은 전에 없던 부와 명예를 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겠다. 이런 오만, 동시에 열등감에 찌든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듯이 박상영 작가는 말한다.

 


그렇게 공허한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위해 누우면 천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천장뿐만 아니라 하늘이, 세상이, 나아가 내가 견뎌야 하는 내일이, 나의 인생이 내 온몸을 통째로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26쪽)



나의 성실성이나 의지 같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보며, 심지어는 나로 인해 반성까지 하게 됐다는 댓글을 보며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나는 성실하지 않으며 내 생활은 건강하지 않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나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멍하니 넷플릭스나 텔레비전을 보다 잠든다. (중략) 다만 나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99-100쪽)



그가 진정으로 “공허한 하루를” 보냈으며, “성실하지 않”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지도 모른다. 내가 믿는 것은 내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나만큼이나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실제로 성실할 수도 , 게으를 수도 있다. 그게 남이 볼 때는 전혀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어떤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만이 나에게는 남아있다.


그의 상황이 우리보다 특별히 나아서도 나빠서도 아니라, 그냥 그 스스로 이 삶에 발딛고 서 있는 것 만으로도 힘들어 했다는 것이다. 박상영 작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나보다 나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조언을 하는 것보다, 나만큼 삶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나도 그래!’라고 외치는 것, 그게 그렇게 다행스럽다. 그 사실이 박상영 작가와 나의 힘듦을 덜어내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세상에 홀로 선 기분은 들지 않게 해준다. 어차피 힘듦은 누군가 덜어내줄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아주 깊은 곳에 뿌리 내린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냥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마지막 에세이 ‘하루가 또 하루를 살게 한다’에서 박상영 작가는 말한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겠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감정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때때로 나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어떤 순간은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게을렀지만 마음 속은 언제나 전쟁터처럼 치열했다. (253쪽)



그러니까 당신,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다.

 

 

 

3. “무슨 (좆같은) 말씀이신지.”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문학동네, 2018, 179쪽)


 

그래서. 박상영 작가는 우리 못지 않게, 혹은 우리보다 더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다. 인생의 굴곡이 많았다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저 일상을 사는 게 그도 우리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그것이 힘들다는 감정인지, 슬픔인지 고난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박상영 작가가 (아마도 추상적으로) ‘힘듦’을 말하는 방식이 좋다. 그는 절대 절절하지 않다. 그리고 가라앉아 있지 않다. 조금은 가볍고, ‘자기객관화’라는 명목 아래 스스로를 조금은 자조하는 방식으로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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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렇게 편안하다.


사람이 슬픔이나 힘듦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그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너무도 절실한 일이라는 것을 믿지만, 이따금 이미 스스로 침체된 우울 속에서 더 이상의 침체를 겪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 내가 가진 우울의 무게 만으로 충분한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격정적인 감정’의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가 피곤한 이 세상에서, 최대한으로 발현되는 나의 부정적 감정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사하고 싶지는 않을 뿐더러, 굳이 내가 받고 싶지도 않을 때가 있다. 충분히 가볍게 얘기해도 나는 그에게 눈물을 쏟으며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너도 나도 힘들다.


박상영 작가는 그것을 잘한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특정한 부분에 밑줄을 치기가 힘들다. 나는 책을 읽다가 조금이라도 인상깊은 구절에는 펜을 찍찍 그어대며 나의 흔적을 남겨야만 직성이 풀리고 마는 소유욕 강한 독자인데, 박상영 작가의 책은 그에 비해 상당히 깨끗하다.


대개의 소설에서는 사건의 서술과 가벼운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이어진 후에 무거운 상황 정리가 오곤 하는데, 박상영의 소설에서는 그 경중의 차이가 비교적 적은 것 같다. 밑줄을 친다는 것은 앞뒤 문단과 구별되는, 상황과 감정을 압축적으로 정리하는 ‘멋지고 위대한 문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에게는 ‘나 멋있는 문장이에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없다. 그는 무게를 잡는 법이 잘 없다.


모든 문장이 가볍다. 그 내용이 가볍다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가진 발화의 태도가 가볍다. 그는 우리에게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어 넘기라는 듯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썩 재미가 있다. 타인의 시선을 매우 의식하는 성격을 가진 나로서는 절대 누군가의 (의아하다는) 시선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함에도, 책을 읽다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이 정도의 자조와 이 정도의 비관적 개그가 애초에 작가의 삶의 태도였던 것 마냥,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사로잡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한 말이 뭔 줄 알아?”

“모르지.”

“‘너 왜 이렇게 살쪘니’였어.”

“내 일상에 온 걸 환영해.”

“나, 정말 그렇게 심하게 살쪘어?”

“맨날 보니까 난 잘 모르지.” (라고 말한 후 김의 눈을 피하기 시작한 나.)

“아, 진짜 죽고 싶어.”

아직도 몸무게가 두 자릿수인 주제에, 고작 몇 킬로그램 찐 것 같고 죽고 싶다느니 오두방정을 떨어대는 김이 가소로웠지만,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우아한 현대인의 자세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215쪽)



그럼에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아, 이 사람, 좀 힘들었구나. 이렇게 가볍게 얘기하니 멋대로 얼마나 슬펐냐며 오두방정을 떨 수는 없겠지만, 티내지는 못하더라도 통하는 사람들에게는 통하는 감정이 있다. 이따금 어떤 맥락 속에 위치한 가벼운 말은 너무나도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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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박상영 작가 헌정 글을 써야지, 하고 일주일 전부터 생각했음에도 나는 이 글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야 말았고 또 결국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쓰게 되었다. 어쨌거나 써 냈지만, 찾아오는 자괴감. 이것 하나 미리미리 쓰지 못하나.


성공했든 실패했든, 해내든 해내지 못했든 나의 하루는 늘 자기혐오로 가득차 있었다. 하나를 해내더라도, 해내지 못한 다른 것에 대해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모든 것을 해냈을 때에도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시간에 글을 썼더라도, 야식을 먹지 않았더라도, 운동을 했더라도, 일정 시간 공부를 했더라도 하루가 ‘실패했다고’ 말할 거리는 넘쳐났다.


‘오늘은 꼭 써야해, 쓰고야 말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멍하니 앉아있기만 30분, 어차피 한 자도 쓰지 못할 거라면 박상영 작가가 인스타그램에서 하루종일 홍보하던 오디오북이나 듣자 해서 난생 처음 오디오북도 찾아 들었다. 그의 여는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설사 오늘 밤도 굶고 자지는 못했더라도,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또 폭식을 했더라도,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저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잘 살고 있다고, 정말 잘 살아내고 있다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해 주는 건 어떨까요.

 

저처럼 매일매일 실패하며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통해 꼭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잘 버티고 있고, 잘 살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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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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