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La La Land)>의 제목은 촬영지인 LA(Los Angeles)를 뜻하기도 하지만, 낭만을 좇는 자들을 다소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꿈꾸는 자들의 도시 LA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꾸고 사랑한다. 영화의 끝에서 이들은 꿈을 이루지만, 사랑을 계속 함께하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엔딩을 두고 꿈과 사랑을 동시에 이룰 수 없는 현실적인 삶을 그렸다고 평했다. 하지만 나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꿈과 사랑 모두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고,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랑
미아와 세바스찬은 마치 운명처럼 우연한 기회에 자꾸 마주친다. 그 마주침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진정으로 바라봐준다.
세바스찬이 레스토랑에서 주인이 지정해준 셋 리스트를 따르지 않아 해고당할 때, 그 연주를 들어준 유일한 사람은 미아였다. 역사 깊은 재즈 클럽이 삼바와 타파스 가게로 바뀌었다는 세바스찬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 누나와 달리, 미아는 삼바와 타파스의 이상함을 하소연하지 않아도 알아채고 공감해준다.
세바스찬도 마찬가지로 미아의 꿈을 존중해준다. 집 앞 도서관에서 이모와 하루 종일 영화를 봤었다는 것까지 기억할 정도로 미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1차 오디션에 붙었다는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연구를 위해 <이유 없는 반항>을 보러 가자고 권하기도 한다. 또 오디션만 보지 말고 스토리텔러로서 자신만의 극과 역할을 만들어 보라는 조언도 해준다.
아름다운 경치가 아까울 정도로 아무런 가망이 없다고 말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꿈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사랑을 쌓아간다.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서로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는 비유 그대로 스크린 위에 구현된다. <이유 없는 반항>의 촬영지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한 두 사람은 구름 위에서, 별이 가득한 우주로 날아올라 춤을 춘다.
사랑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꿈
그렇게 본격적으로 사랑을 시작한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했고, 꿈의 방향을 결정한다. 미아는 세바스찬의 조언에 따라 1인극 대본을 쓰고, 무대를 만든다.
세바스찬은 미아와 함께 하는 미래를 위해 안정적인 수입을 찾아 대중적인 밴드에 들어간다. 커피숍을 그만두고 극장을 계약하는 미아의 모습과 밴드 계약서를 쓰는 세바스찬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사랑이라는 동기는 같았으나 각자 선택의 방향은 달랐음을 보여준다.
세바스찬의 밴드가 성공해 투어를 다니면서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미아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거절한다. 미아는 계속 앨범을 내고 투어를 다닐 것이라는 세바스찬에게 그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인지 묻는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기 시작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자신이 백수일 때 우월감을 느꼈냐는 말을 내뱉는다.
그렇게 그들의 꿈이 길을 잃자, 사랑에도 균열이 생긴다.
하지만 다시 길을 찾는 것 또한 사랑을 통한다. 그렇게 다툰 상태에서 미아는 1인극을 올렸고, 세바스찬은 밴드 일 때문에 공연에 오지 못한다.
공연을 실패한 미아는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자신의 재능을 비관하며 고향 집으로 내려간다. 그런 미아에게 캐스팅 소식을 전해주고, 재능이 있다고 북돋아주고 오디션을 보게 한 사람은 세바스찬이었다. 그리고 세바스찬 또한 그런 미아를 통해 자신에게 명확한 꿈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오디션이 끝난 후 두 사람은 그리피스 천문대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묻고, 세바스찬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고 대답한다. 아마 그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랑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기에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음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나는 항상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 말한다.
현실이 된 꿈, 완성된 사랑
그 후로 5년이 지나 미아는 꿈꾸던 모습의 배우로 성공했고,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뤘다. 세바스찬은 미아가 지어준 이름대로 ‘셉스’라는 재즈 클럽을 연다. 미아는 남편과 함께 우연히 셉스에 들어가게 된다.
미아를 발견한 세바스찬은 그들의 테마곡을 연주하고, 그 연주에 따라 영화는 환상적인 공간에서 함께 춤을 추는 모습과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연주가 끝나자 다시 현실의 자리로 돌아오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미소 짓는다. 짧은 미소 뒤에 미아는 남편과 함께 클럽을 나서고, 세바스찬은 연주를 계속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환상적인 사랑을 통해 그저 환상이었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곁에 남아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는 장면을 상상해볼지언정, 마주 보는 눈빛에 후회는 없는 듯하다. 모든 사랑의 끝이 결혼과 행복한 가정일 필요는 없다. 영원한 사랑도 있지만, 영원하지 않은 사랑도 있다. 그런 사랑도 사랑이다. 그들의 사랑의 시작에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사랑을 마쳤다. 그들의 사랑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 아닐까.
세바스찬은 미아와 사랑을 시작할 즈음에 홀로 ‘City of Stars’를 부르며 이 사랑은 ‘이루지 못할 또 하나의 꿈일까’ 묻지만, 사랑을 시작한 후엔 미아와 함께 ‘City of Stars’를 다시 부르며 ‘어디로 가게 되든 이 사랑의 느낌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셉스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아름다웠던 사랑을 떠올리면서 후회 없이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의 사랑은 ‘이루지 못한 꿈’이 아닐 것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환상 같은 꿈을 꾸었고, 환상 같은 사랑을 했다. 꿈은 현실이 되었고, 사랑도 현실이 되었다. 이들의 꿈, 그리고 사랑은 아주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현실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