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펜스가 있던 나이 [사람]

글 입력 2020.04.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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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투표다. 스무 살 이후로도 여전히 나는 우리 동네를 지키는 중이고, 때문에 역시나 나의 투표소는 여전히 집 바로 옆 고등학교. 내가 다녔던,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첫 번째 선거권을 얻고서 갔던 당시에는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신기했었다. 무려 대선이었다. 17년도에 졸업한 나는 분명 얼마 전까지도 '내일 모레 선거다'라는 이유로 교실에 있던 책상과 의자를 다 밀고 청소를 하던 학생이었는데, 그런 내가 어엿한 선거권자가 되다니. 복도도 교실도 또 책걸상이 어디론가 치워진 어수선한 분위기도 모두 그대로였지만, 내 손엔 손걸레 대신 투표용지가 들려있었다. 당장 선거일에 학교를 가지 않는 기쁨을 누리는 내가 아니라 선거일에 학교를 가 선거를 하는 기쁨을 누리는 내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 빼곤 모든 것이 익숙한 이 상황이 신기했던 그 날은,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연이어 2018년도에도 역시 모교에 가서 투표를 했었다. 학교는 졸업했지만 아직까지 고등학생 티를 못 벗어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서였던지, 학교가 마냥 반가웠었다. 비록 책상에 앉기는 커녕 책상이 어디로 치워진건지도 모르는 외부인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모호한 경계선에 놓여있던 21살의 나는 고등학교에서 다시 익숙함을 느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찾은 제자리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2020년. 지난 2년 동안 집 밖을 나서서 모교로 통하는 오른 쪽 방향으로 걸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어졌고, 이젠 왼쪽 방향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 학교에 도착하는 기나긴 여정에 익숙해져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교복과 체육복, 대학교의 과잠을 거쳐 이젠 매일 같이 다른 옷을 찾아 입는, 그러니까 그런 집단 내지는 소속감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있었다.

 

아침부터 나갈 채비를 마쳤다. "투표하러 가는데 무얼 그리 입고 가냐"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어쩌다 보니 신경 써서 입게 되었다. 오랜만이면서도 이젠 어느정도 낯설어진 장소인 모교. 정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체육복만 덜렁 입고 자유롭게 들락날락했었는데. 정문에 들어서니 평소보다 0.8배 정도 느리게 걷게 되었다.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우리 때 새로 심은 화단의 꽃과, 매일 점심시간이면 식후땡 아이스크림을 먹던 정자, 매년 봄이면 여의도 공원이 따로 없었던 큰 벚꽃 나무. 그렇게 나는 투표를 마치고도 학교를 쉽사리 뜨지 못하게 되었다.

 

투표 후엔 학교 후문을 지나쳐 쓰레기 소각장과 매점이 자리한 학교 뒤편을 둘러보았다. 아마 익숙한 몇 개의 책걸상이 한 편에 놓여 있었고, 매점 바로 뒤 벤치들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분명 기억 속에 어느 벤치 위 새 똥은 그대로던데, 색깔이 새로 칠해져 있었으니 아마 그 벤치는 운명이 그럴 모양이었던 듯 하다. 학교 다닐 때에는 이 벤치의 이 각도를 좋아했다. 한 손에는 매점표 하드를 들고, 벤치의 등받이에 등을 대면 고개는 하늘로 향하게 되어있었던 이 각도.

 

그리고 우연히, 앉아서 하드를 아작 아작 씹어 먹을 땐 미처 신경 쓰지 않던 벤치 바로 뒤의 한 경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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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밖으로 던지지 마시오"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와 아이스크림, 과자, 빵, 이것 저것 사들고 신이 난 나머지 쓰레기 처리엔 신경 쓸 겨를도 없는, 철 없는 고등학생 무리들이 그려져서였을까. 또 대체 얼마나 통제불능이었으면 저 기본적인 사항마저도 저렇게 적어놨을까. 어쩌면 내가 교복을 입고 있었을 때부터 쭉 붙여져 있던 경고문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간만에 재밌었다. '--마시오'라는 경고성 문장을 제대로 본 게 언제였던지. 누군가의 통제 하에 살았었던 시절도 있었네. 역시 자유로운 지금이 좋아,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국 알아서 잘 해야하는 어른 신세라니. 그건 또 별로였다.

 

한참을 저 경고문을 바라보다, 그 경고문이 붙어있는 펜스까지 시선이 닿게 되었다.

 

펜스가 있었던가? 아마 계속 설치되어 있던 것이었을텐데, 경고문도, 펜스도, 이제서야 그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된 이 상황이 웃겼다. 고작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몇 년 차이일 뿐일 텐데, 이런 시선에의 차이가 있을 줄이야. 어릴 때는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 그러면서 괜한 고집 부리지 말라는 어떤 어른의 조언을 가장한 꾸중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그 말에 대해 이제 와 수긍하진 않았지만. 이래도 저래도 나쁠 건 없었다. 지금 내겐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것도 때로는 필요했으니까.

 

으이구, 그래도 쓰레기 잘 좀 버리면 얼마나 좋아. 하는 생각으로 펜스를 바라봤다. 쓰레기를 던져 넘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펜스는 낮아도 당장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을 쓰레기가 대신 넘어줬음 하는 바람으로 통쾌하게 던지는 것일까.

 

귀여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펜스를 넘기는 마음, 펜스를 넘어가고픈 마음. 당장 내가 다니는 대학교엔 이런 펜스가 없다. 그러니 이것도 결국 '알아서 잘해야 하는' 어른의 신세이다. 펜스 안에 숨어 안전하게 지내며 틈틈히 그 너머의 세계를 두드리게 될 교복 입은 아이들이 부러웠다. 막힘 없이 앞이 훤히 다 보여서, 되려 넘어가기는 커녕 뒤로 물러서기 바쁜 어른일 때가 많아서.

 

어딜가도 펜스가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아이들에게. 그래도, 쓰레기는 넘기지 않길 바라고, 혹여 정말로 땡땡이로 겸사 겸사 펜스를 넘다 크게 다치는 일도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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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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