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의 속사정을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도서]

끝없이 항해하는 클래식 음악, 그 바다로 함께하는 글 속의 여정.
글 입력 2020.04.13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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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그들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다.


예술 중학교에서도, 예술 고등학교에서도, 음악 대학교에서도 목차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적어도 10년이 넘게 알아온 그들은 나에게 그 이름으로서 진부했고, 당연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그들을 ‘알아온‘것이 맞나? 그저 ‘배워온’것 아닐까. 이것이 바로 전공자의 아이러니다. 그 누구보다 익숙하나, 그 누구보다 모른다. 이채훈 칼럼니스트의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는 단어 하나마다, 문장 한 줄마다 진정한 사람으로서의 그들을 설명하고 애정과 존경을 표한다. 먼 음악가로서의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아니라, 이전 세대를 살다간 '음악을 했던 사람들'로 시야를 옮겨 잠깐은 측은하기도,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존경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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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칼럼니스트는 클래식 음악을 아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중학교 1학년 때 누나가 듣던 LP 판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을 너무나도 동경한 나머지 티켓도 없이 공연장 앞을 서성였다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는 30년 가까이 MBC의 PD로 활동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모차르트, 천 번의 입맞춤>, <비엔나의 선율, 마음에서 마음으로>, <정상의 음악 가족 정 트리오>, <21세기 음악의 주역 장영주> 등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였다고 말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깊고 방대한 지식과 그보다 큰 사랑이 만나 쓰여 진 문장이 그의 책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에 모두 담겨있다.
 
본 책의 묘미는 시각과 청각 모두에 있다. 시각이라 함은 당연히 책의 문장들을 눈으로 접하는 것이며, 청각이란 문장들 중간중간에 자연스레 끼어있는 QR코드를 뜻한다. 이를 인식하면 그 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늘 강조하는 클래식 음악의 매력 중 하나인 ‘문장’과의 어우러짐이 아름답다.

그뿐만이 아니라 총 7악장으로 이루어진 본 책에는 <소년, 클래식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이채훈 자신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다. 이 또한 인간적인 매력을 문장으로서 내보이며 내용의 풍부함을 더한다. 그 풍부한 이야기들 속에 유명한 음악가들과 지휘자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그중 본인이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음악가는 베토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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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베토벤‘이야기를 다룬 ‘제3악장’에 푹 빠져 책을 다 읽고도 그 부분을 또 읽었다. 본래도 베토벤 음악을 좋아했고, 그 특유의 고전과 낭만의 어우러짐에 늘 감탄하며 그의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음악보다 ‘베토벤’ 그 자체에 빠졌다. 그는 상처가 많고 음악가로서 청력을 잃는 불행을 얻었지만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을 감상해보면 ‘대작’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그의 처절함이 뼈저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던, 아니 배워왔던 베토벤은 딱 여기까지였다. ‘힘들고 기구하지만 그의 재능으로, 처절함으로 음악을 탄생시킨 사람‘.
 
그런데 그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넓은 포용력으로 본인의 상처까지 끌어안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보통의 사람들은 찾을 수 없는 본인만의 행복을 해탈의 경험 끝에 찾았고, 이는 베토벤 심포니와 같은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고뇌를 넘어 환희로“ 어쩜 이렇게 딱 맞는 표현이란 말인가. 그는 음악으로 그가 깨달은 삶의 이치와 ‘인간‘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불행한 사람들이여! 한낮 그대와 같이 불행한 사람이, 온갖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자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으라.”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123p>


 
결국 그의 음악은 위로였고, 그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사실 본인은 예술 중학교, 예술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 입시 곡으로 모두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했는데, 그 본질이 위로임을 알았다면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도). 더불어 대학 입시를 위한 연습 일지에 적었던 ‘지겨워, 진짜 완전 지겨워 베토벤!’의 문장에도 뒤늦은 반성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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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악장 베토벤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챕터가 많다. 한 번씩은 들어봤을 슈베르트, 쇼팽, 멘델스존, 슈만,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말러, 그리고 윤이상이 등장한다. 특히 한국음악사에 슬픈 눈물과 같이 깊은 자국을 남긴 윤이상을 이야기한 제7악장은 한국인으로서 남겨진 음악들과 그를 다룬 문장들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유명한 지휘자들의 이야기 또한 등장하여 추상적인 음악세계에서의 뚜렷한 신념을 보여준다. 책에 등장한 모든 음악가들의 신념은 그들의 음악에 너무나도 선명히 남아 그들이 현재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 무엇보다 오래 항해하는 배에 함께 올라있는 것만 같았다.
 
이채훈 칼럼니스트는 말한다. ‘모든 언어가 멈췄을 때, 음악 한 줄기가 남았다.’ 그들의 실제적 언어는 멈춰서 들을 수 없지만, 그들의 강렬한 언어를 담은 음악은 남아있다.
 
이채훈 칼럼니스트는 허락한다. ‘음악이 이야기를 만나 만들어 내는 풍경, 그 속에서 당신은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좋다.’ 그 허락 하에 여정을 즐기며 음악 한 줄기로 남은 그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아, 난 정말 많이 반성했다. 그들의 음악을 연주했으면서, 훨씬 이전에 알았어야 했을 그들을 이제야 마주하다니! 사실 전공자인 나는 그들에게 불평과 불만을 퍼부었다 (과거형이다). “손도 작은데 왜 이렇게 어렵게 작곡했나!” “손가락도 잘 안 굴러가는 곡을 대체 어떻게 연주하라는 거야!” 조금 변명을 하자면 3개월 동안 매일 5시간씩 한 곡만 연습하면 저절로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이 곡을 대체 어떻게 쳐야 내가 실기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지부터 생각을 하게 되니까.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 몇 가지 입시 곡들 중 쇼팽 에튀드 25-3을 연습했는데 너무 지겨운 나머지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리듬을 내 마음대로 바꿔서 연주하기도 하고 왼손 연주를 내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며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에서 이런 대목을 만났다.


쇼팽은 자신의 에튀드를 리스트가 멋대로 화려하게 연주하자 “그따위로 칠 거면 차라리 안 치는 게 낫겠다”며 화를 냈다. 리스트는 당황했지만 쇼팽이 직접 연주하는 걸 듣고서 “자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네.”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고 한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218p>


 
‘리스트도 혼이 나는데, 나는,,’ 호되게 혼이 난 기분이었다. 쇼팽에게 뒤늦은 사과를 또 한 번 전한다. (잘은 몰라도, 피아노를 전공했거나 오래 연주한 사람들 모두가 이 대목에서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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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그들의 속 사정을, 어떤 심정으로 그 곡들을 작곡했는지를 진즉에 알았다면 (직접 만나지를 못하니 짜증은 여전히 낫겠지만) 그들의 험담으로 내 다이어리를 가득 채우진 않았을 거다. 이제라도 그들을 마주했으니 사과의 의미로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들이 남긴 한 줄의 음악을 온 마음을 다해 연주하기 위해.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Story of The Classic -


지은이 : 이채훈

출판사 : 혜다

분야
서양음악(클래식)
예술에세이

규격
145*215

쪽 수 : 356쪽

발행일
2020년 04월 10일

정가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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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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