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직 더 할 이야기가 많은, '굿 윌 헌팅'(1997) [영화]

글 입력 2020.04.0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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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굿 윌 헌팅>(구스 반 산트, 1997)이라고 대답해왔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그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천재 얘기?” 도스토예프스키와 나보코프를 좋아하면서 <굿 윌 헌팅>을 좋아한다니. 그런 ‘감동적인 성장 스토리’를 좋아하다니.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수많은 세련되고 화려한 영화들을 모두 제치고,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굿 윌 헌팅>을 꿋꿋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널리 알려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MIT의 청소부로 일하면서 재학생들도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천재 소년 ‘윌 헌팅(맷 데이먼)’이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교수를 만나 성장하게 된다. 네이버 영화 소개는 윌 헌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불우한 반항아”인 그가 ‘위대한 스승’을 만나 위로를 받으며 점차로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게된다고.


정말 영화를 볼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요약이다. 천재, 스승, 마음의 문… 진부하고, 교과서적이고, 무엇보다 내가 아닌 ‘천재’의 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어쩐지 삐딱한 윌 헌팅의 행동을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 탓으로 돌려버리는 해석에도 반대하지만, 그 이야기는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 하도록 하겠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같이 영화나 볼까하고 물을 때마다 내가 내민 <굿 윌 헌팅>이라는 선택지는 번번이 돌려돌려 거절당하곤 했다. 물론 삐까번쩍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90년대 잔잔한 영화를 들이미는 것이 썩 센스 있다고 말하긴 힘들 수도 있겠다.


뻔한 ‘성장 스토리’, 나도 싫다. 그래서 <굿 윌 헌팅>의 가장 명장면으로 꼽히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반복하는 숀의 대사도, 사실 썩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데 짚어야할 것이 있다. 이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천재의 성장 스토리’라는 요약 뒤에,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명장면 뒤에 가려진 <굿 윌 헌팅>의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 이야기들을 주의깊게 보고 넘어간다면 <굿 윌 헌팅>을 뻔한 ‘성장 스토리’로 요약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주목해야할 <굿 윌 헌팅>의 장면들과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1. Sorry, I had to go see about a girl.


 

영화 속 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에는 그의 ‘위대한 스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친구 ‘척(벤 애플렉)’, 새로 사귄 여자친구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 역시 숀 못지 않게 이 시기 윌의 삶에 있어 중요한 사람들이다. 스카일라와의 관계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큰 축이 된다. 나는 <굿 윌 헌팅>이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좋다. 둘도 없을 행복한 사랑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도,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두려움과 그로 인한 방어적인 모습 등 현실적인 감정들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계산하고 재는 피곤한 연애가 아니라, 서로에게 완전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갈등을 겪는 <굿 윌 헌팅>의 따뜻함과 순수함이 좋다.

 

“그럼 전화해, 로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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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 어떤 것에도 가볍고 냉소적일 것만 같은 윌에게도 관심이 가는 사람은 생기곤 한다. 우연히 놀러간 하버드 대학가의 바에서 윌은 스카일라를 만나고, 데이트를 한다. 데이트는 너무 재밌었다. 이야기도 잘 통하고, 스카일라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데이트가 끝난 후 윌은 스카일라에게 전화(혹은 애프터 신청)를 하지 않는다. 스카일라가 마음에 들면서 왜 전화를 하지 않느냐는 숀의 물음에 윌은 지금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스카일라가 좋다며, 괜히 전화를 했다가 그녀가 “똑똑하지도 않고 재미없는 여자란 것만 알게”될까봐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다소 궤변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지금 그대로가 완벽하다고요. 이미지 망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윌에게 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대로 완벽한 네 이미지를 망치기 싫어서겠지. 정말 대단한 인생철학이야. 평생 그런식으로 살면 아무도 진실되게 사귈 수 없어.  (중략) 남들은 그걸 단점으로 보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너도 완벽하진 않아. 기대를 망치게 해서 미안하지만 네가 만났다던 그 여자애도 완벽하진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하냐는 거야.



스카일라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게 두려워서 그녀를 피하려는 윌. 숀은 논리적인 척 허세를 부리는 윌의 말 속에서 그가 실제로는 겁을 먹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관계를 시작하는 일은 윌에게 너무도 어렵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들킬까봐, 실수해서 그만 마음을 준 상대를 자신의 손으로 놓쳐버릴까봐, 그럴 일이 차라리 일어나지도 않게 시작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지독히 외로울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지나치게 높은 역할의 뒷편에는, 스스로의 손으로 관계를 망쳐버릴까봐 두려워하는 나약한 모습이 있다. 그런 윌에게 숀은 입에 발린 말로 그를 치켜세워 용기를 주려 하지 않는다. ‘너 충분히 괜찮으니 전화해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그 여자애도 완벽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숀. 서로 완벽해야만 하는 관계와 서로가 있어 완전해질 수 있는 관계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날 두려워하잖아. 내가 사랑해주지 않을까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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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워하는 건 자기면서 괜히 내게 퍼붓지 마!

- 두려워해? 대체 내가 뭘 두려워한다는 거야?

- 날 두려워하잖아. 내가 사랑해주지 않을까봐서! 하지만 나도 두려워! 하지만 노력은 해보고 싶어. 하지만 적어도 너에게는 정직하고 싶어!



연인 사이가 된 윌과 스카일라. 얼핏 행복한 연인 같아 보인다. 스카일라는 곧 졸업을 앞두고 있고, 스탠포드로 갈 예정이다. 어느 날, 스카일라는 윌에게 캘리포니아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지만, 윌은 도리어 화를 낸다. 중요한 문제인데 잘 생각해본 거냐며, 어차피 자신은 버려질 것이고 돈 많은 부잣집 아들과 결혼할 것이 아니냐며 쏘아붙인다. 갈등은 점차 거세지고, 서로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던 비밀들이 홧김에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자격지심을 느끼는 윌은 스카일라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아직까지 스스로 완벽해야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 윌은 스카일라에게 자신을 계속해서 숨긴다. 자신을 숨기면서 동시에 사랑을 받기 원하는 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불안은 점점 커져, 스카일라로부터 버림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어느새 윌의 미래에 확정돼있는 사건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윌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스카일라의 탓으로 돌린다. ‘사실은 다 알고 있다’는 확신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스카일라가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믿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이 커플은 가망이 없는 상황은 아니다. 스카일라는 매우 현명하고 안정적이다. 그는 윌의 이런 불안을 (비록 적잖이 당황은 하더라도) 공감해준다. 그녀는 당장의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어떤 미래 상황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도 않고, 그저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윌과 함께하고 싶어 캘리포니아에 가자고 한다. 스카일라는 함께하는 순간을, 불안해 하는 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윌과 스카일라는 숀이 말한, ‘서로가 있어 완벽해질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인다.


 

 

2. 진짜로 똑똑한 게 뭐냐고?



윌은 천재다. 그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은 후 그 내용을 그대로 머리에 집어넣을 수 있다. 무슨 책의 몇 쪽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기억한다. 몇 십 명의 MIT생들이 일주일 동안 못 푼 문제를 청소하러 지나가다가 쓱쓱 풀어낼 수 있고, 하버드생 스카일라가 하루종일 쩔쩔 매는 화학 과제를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명문대 학생들을 비웃을 수 있을 정도로 아는 것이 많다.


그러나 <굿 윌 헌팅>에서는 진짜로 똑똑한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통념을 부순다. 윌은 잘난척쟁이 하버드생에게 일침을 날리지만, 숀은 도리어 그런 윌에게 “지적이고 자신감있다기보다 오만이 가득한 겁쟁이 어린애”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똑똑한 것인가?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인가, 많은 책을 읽고 자기 견해를 세울 수 있는 것인가? 혹은 다른 어떤 것인가? 아니, 일단 똑똑하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15만 달러를 그 잘난 교육에 탕진하느니 차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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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스의 저서 ‘에식스 카운티의 작업’ 98쪽을 인용한 거지, 안 그래? 나도 읽어봤어. 계속 도용할 생각이었나? 이 문제에 대한 네 견해는 없는 거야? 아니면 혹시, 술집에만 오면 희귀한 책만 골라서 자기 것처럼 떠들며 여자들 앞에서 잘난척하고 내 친구를 망신주는 게 취미인가? 서글픈 일이지만 너 같은 녀석은 50년쯤 지나야 겨우 두 가지를 자각하게 될 거야 첫째, 그러지 않을 것. 둘째, 15만 달러를 그 잘난 교육에 탕진하느니 차라리 1달러 50센트 내고 도서관에 가는 게 이익이라는 거!



윌이 스카일라를 만난 바로 그 하버드 대학 근처의 바.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스카일라에게 먼저 다가간 건 윌이 아니라 윌의 절친한 친구 척이었다. 하버드 대학생인 양 아는 체를 하며 스카일라와 그녀의 친구에게 말을 거는 척. 누가 봐도 이 대학 재학생은 아니다. 이 때 그녀들의 지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척에게 다가가 비아냥거린다. 정말 하버드생이 맞는지, 어떤 수업을 들었는지, 역사 문제에 관한 척의 입장을 물으며 그에게 망신을 준다. 그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순 없다. 윌이 그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견해인 양 장광설을 펼친 그 주장이 사실 책에서 베낀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비난한다.


이 긴머리 하버드생이 똑똑하지 않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는 자기가 책에서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18세기 미국의 정치와 경제 문제를 연결시켜 설명해낼 수 있다. 그런데 윌이 말한다. 그렇게 똑똑하면서도, 자기 견해 없이 남의 의견을 자기 것인양 말하는 네가 한심하다고. 중요한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를 토대로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견해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여 고작 그 정도의 지식을 갖고 남을 망신시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책 따위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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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똑부러지는 윌에게 도리어 지적이지 않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숀이다. 숀과 윌의 첫만남에서, 윌은 숀이 그린 그림을 보게 되고 감상을 말한다. 선이 어떻다느니, 인상주의와 비슷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숀이 마치 “폭풍 속의 항구처럼 위태위태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추측을 시작한다. 어쩌면 숀이 힘든 현실을 피하려 정신과 의사가 된 건지도 모르며, 잘못된 짝과 결혼하지 않았냐고 말을 던진다. 숀의 얼굴이 굳는다. 윌에게 나가라고 말한다. 일주일 후 다시 만난 윌에게 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넌 그저 어린애란 거야. 넌 네가 뭘 지껄이는지도 몰라. 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댈걸?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 볼까? (중략)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성적 취향까지도 말이야. 그렇지?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걸? 한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중략)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타인을 너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누구를 그렇게 사랑한 적 없을걸? 내 눈에는 네가 지적이고 자신감 있다기보다 오만이 가득한 겁쟁이 어린애로만 보여.


 

물론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실제로 보는 것은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썩 정당한 비유같지는 않아보인다. 윌의 여건상 불가능한 것에 대해 부족하다고 지적하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어쨌거나 숀이 윌을 비난하는 맥락은 ‘진정한 경험 없이 다 아는 체 하는 오만한 태도’에 있다. 어떤 그림에 진정으로 감동이나 전율을 느끼지 못하고 보고 들은 것으로 분석하려는 태도, 사랑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사랑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태도. 윌이 잘난척쟁이 하버드 학생에게 스스로의 견해 없음을 지적했다면, 숀은 윌에게 경험,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스스로의 감정 없음을 지적한다. 이어서 숀은 덧붙인다.



하지만 넌 천재야. 그건 누구도 부정 못해. (중략) 그런데 달랑 그림 한 장 보고는 내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내 아픈 삶을 잔인하게 난도질했어. 너 고아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뭘 느끼고, 어떤 애인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너를 다 설명할 수 있어? 솔직히, 그따위 난 알 바 없어. 어차피 너한테 들은 게 없으니까. 책 따위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윌이 가진 오만한 태도가 사람을 향할 경우, 그것은 아주 큰 잘못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알기 위해선 배경지식에 기댈 것이 아니라, 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일침한다. 숀이 그린 그림 한 장에 대한 제멋대로의 분석에 기대 숀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 그것은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숀은 윌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그의 지식은 절대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그는 지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저 겁쟁이 어린애라고 말한다.




3. 국가안보국(NSA) 모놀로그 씬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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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게 아무도 못 푼 암호 해독이 맡겨진다면 저는 해독하려 들 겁니다. 성공한다면 정말 기쁘겠죠. 내 본분을 다한 거니까. 하지만 그 암호가 북아프리카나 중동의 반군 위치였다면 정보부는 반군이 위치한 마을에 폭격하게 될 테고 내가 얼굴조차 모르는 1500명의 주민이 죽겠죠. 정치가들은 해병을 보내 지역 보안을 명령할 거예요. 어차피 총알받이가 되는 건 자기들 자식이 아니거든요. 기껏 불려 가봐야 국내 방위뿐이겠죠. 총알받이가 되는 건 빈민층 애들뿐이라고요. (중략)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요? 더 나은 게 있는지 기다려보려고요.



미국 국가안보국(NSA) 면접에서의 윌의 모놀로그는 압도적이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윌이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는 원테이크씬은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다.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공부를 하던 윌은, 내키지 않지만 그의 제안으로 국가안보국의 면접을 보게 된다. 그가 억지로 면접장에 왔음을 아는 면접관이 “국가안보국에서 일하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윌은 어마어마한 대답으로 하기 싫은 이유를 댄다. 만일 그가 국가안보국에서 일하게 되어 어떤 암호를 해독했을 때, 그것이 연쇄적으로 초래할 한 빈민층 병사의 불행한 미래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 설명한다.

 

그가 이런 대답을 한 것을 듣고 이후 숀은 “세상에 너 혼자만 사는 것 같냐”며 “모든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본다”며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지만, 어쨌거나 윌이 순간적으로 떠올린 이 대답은 감탄스럽다. 일단 이 모든 과정을 거침없이 빠르게 이야기하기에 따라갈 수 없어서 감탄스럽고, 한 사건이 초래할 나비효과에 대해 떠올리는 그의 놀라울 정도로 거시적인 시야가 감탄스럽다. 윌의 대답이 얼마나 터무니 없든지 간에 이 모놀로그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스스로 어떤 문제의식을 설정하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세울 수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랜 고민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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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국가안보국 모놀로그 씬에서 보여진 <굿 윌 헌팅> 속의 사회적 비판이 매우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윌의 재능은 꼭 발휘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가 청소부로서의 일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한 논의가 더 진전되지 못하고, 마치 당연스럽게 윌에게는 중노동보다 학자로서의 삶이 더 어울린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쉽다. “모든 직업은 고귀하다고요!”라고 외치는 윌에게, 아무도 제대로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

 

이외에도 <굿 윌 헌팅>에는 주옥같은 장면들이 많다. 윌의 천부적 재능을 어떻게든 키우려는 랭보 교수와 윌의 관계, 윌에게 "문을 두드렸을 때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친구 척, 숀과 랭보의 오래된 이야기들 등 <굿 윌 헌팅>을 단순히 '윌 헌팅'의 진부하고 뻔한 성장 스토리라고 요약하기에는 매 장면마다 버릴 수 없는 요소들이 아른거린다. 진부한 고전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아직 <굿 윌 헌팅>에는 해야할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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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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