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견된 범죄 [사람]

이제는 끝내야 한다
글 입력 2020.04.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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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범죄



올해 3월 초, 국민일보와 추적단 '불꽃'이 6개월간 텔레그램의 성 착취 방을 잠입 취재한 기록이 세상에 퍼졌다. 사실 처음 사건 관련 기사가 나왔던 것은 지난해 11월 경이다. 공론화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 셈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끔찍한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느냐고. 믿기질 않는다고.


그런데 정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범죄일까? 미투 운동의 시작에 불을 지핀 서지현 검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 사건은 '예견된' 범죄다. 이전에도 비슷한, 혹은 죄질이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디지털 관련 성범죄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다크웹'이 떠오른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 동영상을 유통한 '다크웹'. 이 사이트를 운영한 자에게는 어떤 벌이 내려졌는지 기억하는가? 겨우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그가 저지른 범행의 대가가 2년이라는 시간도 안 된다는 판결이 났다.


선고일로부터 짧은 시간이 지나 4월, 그러니까 이번 달에 그는 출소한다. 우리는 악질의 범죄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너무 간단히 허락했다. 물론 원하지 않아서 청원하고, 시위를 꾸린 국민도 많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 결과 n번방과 박사방이라는 거대한 범죄가 또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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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가입할 수 있지만, 서버가 국외에 있어 IP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 이곳에서 n번방, 박사 방, 그 외의 여러 '방'에서 여성을 상대로 온갖 범죄를 조장하고, 방관하고, 즐긴, 우리의 주위 어딘가에 존재하는 범죄자들. 신분 추적이 어려운 곳에서 방을 개설하고, 가상화폐로 돈을 끌어모으고, 성 착취 행위를 벌인, 지금 뉴스를 타고 있는 박사방의 남자만 범죄자인 것은 아니다. 그 방에 접속하기 위해 주소를 묻거나 방에 입장했거나 돈을 지불한 모든 행위자 또한 가해자이자 공모자이다.


다를 바 없다. 자신의 흔적을 거의 제거할 수 있는 텔레그램 채널에 접속했다는 것 자체가 범죄에 함께 했음을 입증하는 꼴이다. 법에 저촉되지 않은 것이라면 IP 추적이 가능한 공간에서 떳떳하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범죄자 본인들도 안다.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텔레그램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었을 때,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텔레그램 탈퇴'가 1위를 차지했겠지.




박사방 ≠ n번방



이슈가 된 후, 언론에서 많은 양의 기사를 내고 있다. 그런데 n번방과 박사방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오보 기사를 제공하는 때도 심심찮게 많다. 두 방의 운영자와 관리자들도, 범행 방식도 다르다. 아래 '추적단불꽃'의 명료한 설명을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N번방


N번방에 올라온 성 착취 영상은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갓갓’이라는 인물이 제작했습니다. 갓갓은 미성년자의 신상을 알아낸 뒤, ‘개인 정보를 유포하겠다’라며 그들을 협박했고 제작한 성 착취 영상을 N번방에 올렸습니다.


N번방은 1번부터 8번까지 총 8개가 존재했습니다. N번방에 올라오는 디지털 성범죄물은 개인 PC나 휴대전화에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N번방 번외로 ‘로리방’ ‘쓰레기 방’ 등이 존재했으며 로리방에는 해외의 아동ㆍ청소년 성 착취 영상물이 올라왔습니다. 대화방 가해자들은 어린아이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N번방을 홍보한 주요 인물은 ‘와치맨’입니다. 그는 ‘AV-SNOOP 고담방’이라는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였으며 고담방은 저희가 취재했을 당시 가해자 유입이 가장 많았던 방입니다. 이 방에서 와치맨은 N번방의 피해 사실을 묘사하고 피해자들 신상을 올리며 N번방을 홍보했습니다. 지난해 말 와치맨은 잡혔고, 갓갓은 수사 중입니다. N번방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기관과 단체의 모니터링으로 삭제 조처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확인해 본 결과 아직 삭제되지 않은 N번방이 있었고, N번방의 압축파일이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N번방은 주요 공급자가 잡힌다고 끝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정말 악질 중의 악질 범죄인 이유는, N번방 영상이 언제든 ‘N차 유포’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박사방


박사의 신상이 23일 ‘SBS 8시 뉴스’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박사는 2019년 9월부터 갓갓과 비슷한 범죄 수법을 사용하며 디지털 성 착취 물을 제작, 유포하며 활발하게 활동한 인물입니다. 제작 수법은 이렇습니다. 소셜미디어 등에 ‘고액 알바’ 모집 글을 올려 피해자를 유인한 후 개인 정보를 캐냈고,  “시키는 대로 영상을 찍지 않으면 개인정보, 이전에 보냈던 사진 등을 뿌리겠다”라며 협박을 합니다. 이렇게 피해자를 협박해 제작한 성 착취 물은 텔레그램 유료 대화방에 올렸는데, ‘모네로’라는 비트코인으로 금전적 이익을 취했습니다.


- 추적단불꽃의 영상 '텔레그램 N번방과 박사방 구별' 더보기란 전문 중 일부



이 밖에도 '추적단불꽃'의 채널에서는 오보 기사에 대한 정정, n번방과 박사방 외의 다른 방에서 벌어진 성범죄들 등을 설명하는 영상도 있다. 9개월 간 경찰의 공조 수사 요청을 받아 쌓아온 데이터들로 디지털 성범죄 문화의 뿌리까지 제거하려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추적단불꽃'의 구성원인 두 여성은 자신들을 향한 응원보다는 이 변화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한다. 우리가 발맞추어 나갈 때, 휩쓸리지 말아야 할 몇 가지 '물타기'가 있다.




본질을 흐리는 그들


 

범죄, 특히 성범죄가 발생하면 이상한 물타기가 생긴다. 유난히 피해자에게 집중하는 일부 사람들. 피해자의 인권 보호나 정신적·신체적 치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순수성'을 확인하려고 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피해자의 말이나 행동이 모두 청렴하고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렇지 못한지. 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검증한다. 그런데 어떤 성범죄든 피해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간단하다. 가해자의 범행으로 피해자가 생겼다. 그러니 가해자는 벌을 주어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고, 피해자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보호하고 돕는다. 만약 피해자가 여럿이라면,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피해자의 과거가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잘못의 화살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피해자를 욕하려는 것은 아닌데'라는 말로, 혹은 그 말도 없이 2차 가해를 하는 그들.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주범이다. 안타깝기도 하다. 그들은 사건의 경위와 주안점은 알아볼 노력도, 생각도 없이 무작정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욕하기 바쁘니 말이다.


주안점을 흐리는 다른 수법도 있다. 바로 숫자에 주목하는 것.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훌쩍 넘는 26만 명이라는 거대한 숫자이니 사건이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260,000명이라는 수치는 사실이 아닌 추측이다. 맞을 수도, 이보다 적거나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숫자에 따라 죄의 경중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죄의 경중은 피해 규모에 따른다. 모든 가해자를 추적하여 처벌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 그 숫자에 파묻혀 사건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로



이번 n번방•박사방 사건, 다크웹 사건 이전에도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범죄자들은 들끓었다. 터무니없는 솜방망이 처벌처럼 가해자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체계의 합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는 미룰 때가 아니다. 여성이 한국에서 인간 취급을 받으며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고, 무엇보다 당사자성을 가진 여성에게 집중하며 마땅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중전화에서 피처폰, 피처폰에서 스마트폰,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는 지금, 2020년. 기술은 끝도 없이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하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접하기는 너무도 쉽다. 이로운 발전이라고 한들 빠른 변화에는 언제나 문제가 따른다. 기술의 수준과는 달리 특정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같은 지점에 다다르지 못했다.


우리는 기술의 수준에 미달하는 자들을, 같은 선에 설 수 있도록 끌어야 한다. 개인의 생각이나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배움으로부터 생긴다. 학교, 가정, 친구 등 주변인을 통해 배우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는 사회가 있다. 특히 법과 도덕이라는 가상의 체계로부터 우리는 배우고 자라난다. 그렇다. 개인이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정립되었다면, 법을 도구로 그것이 틀렸음을,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책임질 기회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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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과 박사방 관련 엄격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들에 동의한 인원이 500만 명 정도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최근 '성폭력처벌법 개정 법률안'이 의결되었다. 문제는 개정안이 '딥페이크'의 제작•배포자를 처벌하는 것에 그친 점이다. 디지털 성 착취 및 성범죄를 아예 근절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조치다. 성 착취 영상물 제작•유포자는 물론 소지자들에 대한 신상 공개와 교육 의무 부과할 필요가 있다.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여 금전적인 배상 또한 가해자들이 짊어질 몫이다.


*


n번방 사건 피해 여성들을 위한 변호인단이 지난 25일에 출범했다. 111명의 여성 변호사가 한국여성변호사회를 통해 지원 의사를 밝혔다. 성범죄 근절을 위해 법률•치료•상담 지원에 나선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은 직접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란 어렵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모든 가해자가 잡힐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추가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디지털 성범죄 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 사람다운 삶을 얻을 때까지 해결책을 좇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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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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