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과 '실'의 여정을 탐독하며 - 총보다 강한 실 [도서]

인간이 있던 자리에는 언제나 '실'이 있었다.
글 입력 2020.03.2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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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어린왕자는 말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어린왕자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매일같이 실과 직물을 마주한다. ‘의(衣)’는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 생활 요소이며, 중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옷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진 편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거나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볼 뿐이었다. 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기술·가정 시간 때 파우치를 만들었을 때 종종 실을 사용해 보곤 했지만 최근에는 가끔 옷을 살 때 세탁하기에 좋은 질감인지를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깊게 생각해보거나 관심을 가져보지는 못했다. 가느다란 실이 우리 생활에서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옷의 디자인과 색감에 사로잡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실에 대한 호기심은 내가 이 책을 읽게 했다. 다양한 질문들이 금세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그 해답을 찾고자 <총보다 강한 실>을 펼쳤다.
 

 

다양한 '실'처럼 다채로운 13가지 이야기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작가의 책 <총보다 강한 실>. 역설법을 사용한 책 제목은 나에게는 굉장한 호기심을 끌게 했다. 총보다 실이 강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가능하지!”라는 말을 이끌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실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다.
 
직물이 세계와 역사를 바꾸는데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13가지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우리를 초대한다. 인간이 옷감을 짜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집트 미라를 감싸는 옷을 만드는 것, 산업의 발전, 과학의 진보, 인간의 한계에 도전에 새로운 직물 제작에 이르기까지 인류와 함께 이어져 온 실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만나게 될 것이다.
 

 

미라를 감싸던 천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소재를 두 가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 소개할 장은 2장에 ‘죽은 사람의 옷: 이집트 미라를 감싸고 벗긴 이야기’이다. 과거 이집트 문화에 대한 전시관을 가보았을 때 느꼈던 강한 기억 때문이다. 특히, 이집트 미라와 미라를 만드는 과정과 그들의 장례의식을 보여주었던 전시는 여전히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이 책은 사후세계와 영생에 대한 갈망과 믿음으로 만들었던 이집트 미라에 대한 발굴과정과 이집트 미라의 모습을 상세하고 세심하게 묘사한다.
 
작가가 바라본 이집트 미라에 대한 관심은 미라를 덮고 있던 리넨 천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 왕의 시신을 발굴하고 시신을 감싸고 있던 리넨 천을 벗겨내기 시작한 과정과 미라의 모습을 상세하고 세심하게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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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리넨에 대해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미라를 감싸기 위해 다양한 크기의 수십 겹의 천을 덮고 끈으로 동여매었던 과정은 오랜 시간과 정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카터는 미라를 감싼 붕대 같은 끈과 천에 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예컨대 미라의 발 양쪽에 동여맨 끈이 닳아 있었다고 기록했다. (...)

 

또 카터는 완성된 미라를 유인원 같은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상당한 정성”을 기울였으며, 미라 천은 “삼베처럼 아주 고왔다.”고 언급했다.


-62p


 
아이러니하게도, 리넨 천은 후대 사람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발굴과정에 있어서 고고학자들에게는 미라 근처에 있는 보석과 유물들 그리고 관 속의 미라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리넨은 방해물 취급을 받았고, 그로 인해 훼손되거나 분해된 채로 방치되어야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신성시되었을 리넨 보가 가진 의미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방치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레이스를 만들어야 했던 가난한 여성들의 속사정

 
다음으로 소개할 것은 7장, ‘다이아몬드와 옷깃: 레이스와 사치’이다. 이 장에서는 레이스를 뜨는 사람들과 레이스를 착용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레이스는 부와 지위를 가진 자에게 그들의 위치를 더욱 눈에 띄게 보여주는 사치품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권력자들은 평민들이 레이스를 착용하지 못하도록 막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은 레이스의 역사를 사치품의 역사로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레이스의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인 이야기와 레이스를 제작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 장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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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레이스의 역사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레이스를 뜨는 사람들에 관해서다. 유럽의 부유한 사람들을 그린 초상화에서 보게 되는 레이스 장식을 보게 된다. 레이스 장식이 무척이나 화려하기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화려함 반대편에는 그늘이 존재했다. 레이스는 가난한 계층 사람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레이스를 만드는 작업은 고되지만 이를 만들기 위해 촛불을 밝혀 한 땀 한 땀 손수 제작을 해야 했다. 책에서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문구를 보여준다.
 

 

1592년 9월 1일 암스테르담시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가난한 집의 여자들 중에서 레이스를 뜰 줄 모르거나 생활비를 벌지 못하는 여자들”은 매일 아침 6시 전에 무료 교습소에 모이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실 잣기를 비롯한 수공예를 배우면 빈민가로 굴러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208~209p


 
어느 누군가는 레이스가 부자들이 누리는 사치품이었다면 이것을 비싸게 팔아서 돈을 벌면 되지 않나?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조차도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레이스를 만드는 대다수의 여성 직공들은 협회나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받는 임금도 적었다. 여성은 바느질을 필수로 배워야 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들은 레이스 공장의 부품과 같이 기존 질서에 저항한다면 그 인력을 교체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러한 이유를 보니 노동력 대비 그들의 얻는 임금과 대우는 상당히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실에 대한 역사가 어딘가 한 편으로 미뤄짐과 동시에 실을 이용해 옷을 만들던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많이 남아있지 않는 점을 생각하니 여러 아쉬움이 밀려온다. 사실 그들이 없었다면 실과 옷의 역사도 계속될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역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인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함께 할 '실'과의 여정


 

이번 책 <총보다 강한 실>은 인간과 함께 해 발전해 온 실의 역사를 함께 따라가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실과 직물에 대한 기록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 실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서술하기 보다는 실과 직물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다양한 이야기로 소개하여 더욱 읽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하나의 장마다 각 소제목 아래에 본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 실과 관련한 다양한 문장들이다. 매 장마다 각 소제목에 어울리는 고전 문학에서 현대 문학까지 또는 유명한 인물의 격언이나 속담들은 읽는 재미를 더욱 높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책 구성이라는 점이었다. 책 속에 설명되어 있는 작품들을 찾아보기 위해서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옆에 스마트폰을 두고 보았다. 직접 찾아보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 즐거움도 분명 있겠지만 사진 또는 그림 자료가 글 중간 마다 첨부되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상당히 꼼꼼한 작가의 세심한 묘사 그리고 궁금한 용어들을 찾아볼 수 있는 용어 해설로 인해 글로만 읽더라도 상상이 간다는 점은 미리 말해두고 싶다. 인간이 나아갔던 역사의 순간 마다 실은 존재했고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질 실과의 여정을 보고 싶다면 <총보다 강한 실>을 추천한다.
 

 

*


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

 

 

지은이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옮긴이 : 안진이

 

출판사 : 윌북

 

분야

역사 / 세계사

 

규격

145*220mm

 

쪽 수 : 440쪽

 

발행일

2020년 02월 10일

 

정가 : 17,800원

 

ISBN

979-11-5581-258-7 (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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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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