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지적 메기 시점에서, 인간의 믿음과 의심에 대하여 '메기' [영화]

글 입력 2020.03.20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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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사랑병원의 병동에 메기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제 몸 하나 딱 들어갈 법한 어항 속에 살고 있는 메기는 제 몸보다 훨씬 커다란 병원의 이야기를 훤히 알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 허구적 경로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 그렇게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여느날처럼 흘러가던 어느 날, 병원을 발칵 뒤집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소 노골적으로 성관계 장면을 담은 엑스레이 촬영본 한 장이 병원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주인공이 누굴까 추측하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엑스레이실에 숨어 그 장면을 촬영하고 악질적으로 그것을 퍼트렸는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설사 엑스레이실에서 관계를 가진 것이 누군가의 과실이자 치부일지언정 그것이 타인들에게 폭로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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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현실의 사건이 있다. 1월 1일 연례행사처럼 이어지던 디스패치의 열애설 보도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올해는 별다른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신년마다 어김없이 밝혀지던 거물급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언젠가부터 대중들이 발표를 기다리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연말부터 각종 추측들이 난무하며 수많은 연예인들의 실명이 거론되었다.

 

익명의 공간에서 오고가는 말들 속에 '사생활을 공개하는 자'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디스패치가 어두운 곳에 숨어 끈덕지게 보내는 음흉한 시선이 대중의 시선으로 대체되어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켰고, 대중은 가십으로서 그 '사실'을 소비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팬덤을 거느리는 연예인 직업 고유의 특성은 그들을 피해자보다는 대중을 기만한 가해자 정도로 전락시키는데 일조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그들의 인기가, 그들의 사생활이 온 세상에 밝혀져야할 당위을 부여하지는 않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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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에서는 마리아사랑병원의 간호사 윤영이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 영화는 엑스레이 사진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믿을만한 '찌라시'(애초에 모순된 수식이지만)라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에서, A씨가 누구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라고 '말해지는가' 이기 때문이다.

 

결국 윤영은 복잡한 마음으로 퇴사를 고려하게 되는데, 병원의 부원장 경진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녀에게 직접적인 의심의 화살을 겨눈다. 그리고 다음날 또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둘 이외의 병원 직원들이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분명 엑스레이실 사건 때문일 것이라 확신하는 경진과 그녀의 맹목적 의심을 풀어주고 싶은 윤영. 그들은 아프다며 '변명'한 직원들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본다, 왕진가방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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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경진과 윤영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부터 윤영과 남자친구 성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또다른 사건들까지, 서로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일들이 엔딩의 순간까지 여러 차례 벌어진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아주 종종 타인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물론 그 의심이 사실인 경우도 적지 않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의심이 약이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관계맺는 이의 부정한 일을 의심했을 때,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의 경중에 따라 관계를 다시 판단할 것이며 사실이 아니라면 신뢰가 깨져 이전처럼 관계를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의심하지 않고 그를 믿어줬을 때, 사실이라면 마찬가지로 관계를 판단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면 우리는 조금 더 두터워진 신뢰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상대방을 의심했든 신뢰했든 그 어떤 일이 사실이라면 결국 판단은 우리의 몫이지만, 그 의심이 그릇된 의심이었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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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언젠가 메기는 말한다. "사실은 언제나 사실과 연관된 사람들에 의해서 '편집'되고 '만들어진다'고."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데 있어, 어쩌면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실된 정보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누군가 생각하고 누군가 이야기한 것일테니 말이다.

 

그 속에서 의심이라는 녀석이 피어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단발의 의심은 이리저리 널려있는 온전하지 못한 사실들을 조각내어 야금야금 먹어버린다. 잠깐 떨쳐버리지 못한 그 의심이 그렇게 기어코 관계를 좀먹고야 마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과 의심 사이, 그 언저리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한 마디 구절을 던진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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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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